지구에서 연애중
by. 복이






내가 원빈을 ‘발견’한 건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온도계의 수은주가 역대 최저를 기록하던 날이었다. 번화가의 술집들이 문을 닫을 새벽 다섯시 즈음. 아무리 좋게 쳐줘도 먹을만하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는 24시간 멸치국수 가게 안이었다. 내가 술인지, 술이 나인지 모를 정도로 만취한 밤. 멸치 육수의 깊고 그윽한 향 대신 오래된 멸치의 비린내가 가득 차 있는 낡은 가게의 구석 테이블에서 원빈은 막 다섯 번째 국수 그릇을 비워내고 있었다. 쑤셔 넣은 소면으로 불룩해진 뺨에는 굵은 고춧가루 하나가 말라붙어 있었다. 국수 삶는 수증기로  부옇게 김이 낀 가게 안에 보는 사람도 없이 켜져 있는 티브이에서는 커피 프린스의 재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니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이제 상관 안 해. 머릿속으로 종이 뎅, 울렸다.











원빈은 사랑을 찾아 지구에 왔다. 지구가 속해있는 은하계에서 두 은하를 더 건넌 수억 광년 너머의 별에서 우주의 시간을 거꾸로 거스르기도 하고 또 더 빠르게 지나기도 하면서. 사랑을 찾는 것이 왜 하필이면 지구였느냐고 원빈에게 물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있고 또 그 별들만큼의 수많은 생명체가 있을텐데. 원빈의 고향별 혹은 가까운 별 어딘가에서도 찾으려면 충분히 사랑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굳이 수억 광년이나 떨어진 지구까지 오는 수고를 감수할 만큼 간절했던 이유가 궁금했다.


지구인이 가장 예쁘거든.


원빈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장황하게 길었던 질문에 대답을 툭 내놓았다.


넌 모르겠지만 지구인만큼 예쁜 생명체는 없어. 그중에서도 너는 가장 예쁘고.


별 의미 없이 건넨 질문에 입이 터진 원빈에게 붙잡혀 내면의 아름다움이란 외면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에 대한 일장 연설을 한참이나 들어야 했다. 이따금씩 얼굴에 튀는 침을 닦아내면서.







원빈이 우주인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된 날의 온도와 습도, 공기의 흐름까지 나는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할 수 있었다. 그즈음의 나는 원빈이 조금 이상한 애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가 다른 느낌. 어딘가의 뭔가가 원빈에게는 빠져있었다. 남들보다 중력을 덜 받는 듯한 팔랑거리는 걸음과 공기의 저항 따위는 무시해 버리는 가벼운 웃음소리.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원빈이 외국에서 오래 살았었다고 말을 해줬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사실 너한테 말 안 한 게 좀 있어. 아니 이건 말로 하는 것보다 보여주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나올래?


원빈을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던 의심마저 장맛비에 눅눅하게 녹아버리던 어느 날, 동네 구석 인적이 드문 놀이터로 원빈은 나를 불러냈다. 종일 내리던 비가 그치고 빗물에 젖은 흙이 신발 밑창으로 걸음마다 들러붙고, 습기를 먹은 풀내음으로 코가 찡해지던, 가로등마저 졸고 있는 늦은 새벽이었다. 제 몸만 한 백팩을 메고 나를 기다리던 원빈은 어쩐지 약간 긴장한 듯한 표정이었다.


놀라지 말고 들어.

응.

사실 나 외국에서 살다 온 거 아냐. 아니, 어떻게 보면 외국인가. 정확히는 외계가 맞는 건가. 어쨌든 내가 엄청나게 멀리서 왔다는 뜻인데….


횡설수설 출신지에 대해 말하는 원빈은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입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둥굴려 뱉었다. 뭉그러진 단어들과 문장들로 나는 도대체 원빈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간신히 알아들은 몇 개의 단어의 앞뒤를 조립하느라 바쁜 나를 쳐다보던 원빈은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영 글러 먹었다 싶었는지 냅다 하늘로 손을 뻗었다.


그러니까 나는 저기에서 왔어. 우주인, 지구인들이 말하는 외계인 그거.


원빈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하늘에는 반짝이를 뿌려놓은 듯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서울 하늘에서 이렇게 많은 별들을 본 적이 있었나 싶게 많은 별이 뜬 밤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네가 믿기 힘들 것 같아서 보여주려고.


커다란 백팩을 어깨에서 내려놓고 원빈은 그 안을 뒤적였다. 고개를 갸우뚱대며 시커먼 가방 안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 결심한 얼굴로 꺼내놓은 것은 거대한 대가리가 달린 무식하게 큰 오함마였다.


지구에 있는 어떤 물체로도 나를 해칠 수 없어. 당연히 죽일 수도 없고. 나는 정해진 때에, 정해진 일로만 죽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원빈은 마동석이 나오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무식하게 큰 그 오함마로 제 머리통을 내려찍었다. 피가… 피가 정말 분수처럼, 아니 터져버린 소화전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때부터 나는 비명을 질렀고 원빈은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누군가의 자살 혹은 자해공갈을 생생한 라이브로 눈앞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야말로 패닉상태였다.


…나 안 죽는다니까.


웅덩이처럼 고여버린 피 안에서 벌떡 일어난 원빈은 손등으로 대충 피가 흐르던 이마를 닦아냈고 내 비명의 데시벨은 더 높아졌다. 내가 지르는 소리에 내 귀가 멀어 버릴 것 같았다. 장담하건대 인간이 낼 수 있는 데시벨의 한계치까지 오른 소리였을 것이다. 원빈은 차분하게 가방에서 물티슈와 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고 새옷과 신발을 꺼내 갈아입고 신었다. 피 묻은 물건들을 한데 모아 검정 비닐봉투에 집어넣고 다시 가방에서 핸디형 진공청소기(처럼 생긴 다른 무언가)를 꺼내 바닥에 고인 피를 다 치웠다. 그때까지도 나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가로등이 깜빡거리고, 잠들어있던 창문들이 하나둘씩 불을 밝혀가던 때 원빈은 손바닥으로 내 입을 막았다. 턱부터 코까지 덮은 원빈의 손바닥 안에서는 아카시아 모링가 향의 핸드크림 냄새가 났다.


그날 열어본 원빈의 가방 안에는 막 날을 벼려놓은 듯한 커다란 중식도와 손도끼, 사냥용 산탄총이 더 들어있었다. 머리를 내려찍고도 내가 믿지 않으면 팔다리나 아예 머리통을 날려버리려고 했단다. 그냥 손가락 끝에 약간의 피만 냈어도 나는 믿었을텐데.


이주 넘게 나는 밤마다 악몽을 꿨다. 원빈이 갖가지 도구로 머리통을 날리는 꿈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난 새벽마다 나는 손을 더듬어 옆자리의 원빈을 확인해야 했다. 팔다리가 제대로 붙어있는지, 머리에 움푹 파인 곳은 없는지. 원빈은 그런 나를 조금도 성가셔하지 않고 그저 꼭 안아주었다. 지구인과 다르지 않은 36.5도의 따뜻한 가슴을 확인하고 난 후에야 나는 다시 안심하고 잠들 수 있었다.




*




가을동화의 대사를 외울 만큼 많이 봤다는 원빈은 얼마면 돼, 얼마면 되니를 부르짖는 처연하고 애절한 얼굴에 반해 이름을 원빈으로 바꿨다. 그 전의 이름은 철용이었다. 강철용. 이름답게 부산 근교의 어느 철강공장에서 꽤 오랫동안 일했다는 원빈은 프로야구가 처음 출범하던 1982년, 공장 아저씨들에게 붙들려 납치당하듯 부산의 야구장으로 끌려갔다. 원빈의 별에는 없는 땀냄새나는 스포츠. 발로 뛰며 점수를 만들어내는 인간미 넘치는 야구에 순진한 우주인은 온통 마음을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세상에 그렇게 재미있는 것이 있는 줄 몰랐단다. 주간 근무를 마친 뒤 소주와 마른오징어를 옆구리에 끼우고 공장 아저씨들과 우르르 몰려가 야구장에 가서 살았다. 가끔은 먹던 오징어를 집어 던졌고, 더 가끔은 마시던 소주병을 집어던졌다. 아주 드물게는 야구장에 쳐진 그물을 타고 올라가다 끌려 내려오기도 했다. 만취한 상태로 야구장을 나서며 맡는 밤공기가 그렇게 좋았다고 원빈은 말했다. 얼레벌레 지나간 팀의 첫 우승 후, 진정으로 그 팀을 사랑하고 팀과 자신이 하나라고 느끼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던 1992년, 팀이 두 번째 우승을 했던 날 원빈은 태어나 처음으로 눈물이라는 것을 흘려봤다고 했다. 눈물과 소주를 섞어 밤새 취하는 줄도 모르고 마셨다고. 그러나 그것이 팀의 고점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팀갈을 해보려고 시도도 해봤지만… 이미 지구인과 거의 같아진 원빈의 피는 다른 팀을 거부했다. 그 덕에 원빈은 해마다 고통을 받고, 30년이 넘도록 분개해야 했다. 야구가 주식도 아닌데 고점에 물렸다고. 주식은 기다리면 오르기라도 하지, 도대체가 이건 언제 오르는 거냐고.

야구 중계를 틀어놓고 선수단 버스를 탈취해 취업 박람회에 드랍 하겠다는 둥, 방망이가 탕후루 막대도 아닌데 뭣같이 짧게 잡고 친다는 둥, 저따위로 헛스윙만 돌려대는 꼬락서니가 선풍기가 따로 없는데 L땡 전자에 선풍기 대신 세워놓아야 한다는 둥, 새롭고 살벌한 욕설을 쉼 없이 토해내는 원빈을 바라보다 문득 정확히 33년째 고통받고 있는 원빈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프로야구가 처음 출범하던 때부터 야구장을 찾고, 나보다 먼저 태어난 가을 동화를 아직까지 보고 있는 원빈의 나이가.


너 몇 살 이야?


나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원빈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일찍도 묻는다. 이제와서 그게 궁금해? 많이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궁금한 거였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모르겠어. 그런 거 세면서 살지는 않아서. 아마 백오십 년 정도 살지 않았을까? 지구로 오는데 시간을 많이 썼어. 엄청 헤맸거든. 네비게이션이 엉망이었어. 어쩌면 백오십보다 더 많을 수도 있으려나.

백오십 년…?

응. 대충 그쯤. 이제 궁금한 거 해결됐어?


백오십 년이면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아마 그보다 더.


…넵.


조상님 뻘 되는 우주인에게 반말이나 툭툭 할 수가 없어서 슬쩍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나는 유교보이니까. 동방예의지국 출신으로서 그럴 수는 없었다. 모아진 내 두 손을 보며 원빈은 웃겨 죽겠다고 배를 잡고 굴렀다.


그럼 몇 살까지 살아?… 요?


반말도 존댓말도 아닌 이상한 질문에 원빈은 내 팔뚝 어디께를 치면서 그만하라고 했다. 하도 웃어서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뺨이 한여름의 복숭아 같았다. 웃느라 흐트러진 호흡을 정리하고 원빈은 내 허벅지 위에 머리를 올려 누웠다. 까맣고 동그란 지구인의 눈과 꼭 닮은 나의 우주인의 눈동자가 내 눈을 향한다.


너는 몇 살까지 살 것 같아?


질문은 갑작스레 방향을 바꾼다. 지구인들의 기대수명은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지금은 백십, 혹은 백이십의 수명을 기대하고 있고 또 내가 나이를 먹을수록 과학기술은 발전해 갈 테니 정말 나는 백이십 살까지는 너끈히 살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때까지는 살고 싶지 않았다. 정년퇴직이 팔십, 혹은 구십이 되는 세상이라니. 그런 세상은 끔찍했다.


내가 구십까지 산다고 치면… 길면 칠십 년, 아니면 육십 년 정도는 더 살지 않을까?


원빈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표정을 하고 팔을 뻗어 내 뺨에 손을 얹었다.


나도 그 정도 살게 될 거야. 아마 너보다 조금 더.


이상한 말이었다. 단번에 이해하지 못한 내가 원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원빈은 눈을 접어 조용히 웃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짝을 잃으면 살 수 없어. 혼자서는 살 수 없게 만들어졌어. 너를 잃고 나면 아마 나는 죽을 거야.


나는 정해진 때에, 정해진 일로만 죽어. 원빈이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랑하던 생명체를 잃은 원빈의 종족은 그들이 태어난 별의 가장 구석지고 어두운 곳으로 가 스스로의 생을 끝낸다. 그들이 어느 우주 어느 은하계에 머물렀었든지 간에 그 끝은 정해져 있다. 그것이 그들의 운명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났다고. 사랑하기 위해 태어나 사랑 때문에 죽는 것. 그것이 그들이 가진 삶이었다. 자살 행성이라고도 불리는 그들의 별, 사랑밖에 모르는 그들을 누군가는 낭만적이라고 했으며 다른 누군가는 야만적이라고 했다. 낭만적이고 야만적인 그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억울하지 않냐는 나의 물음에 원빈은 고개를 저었다. 억울할 이유가 뭐가 있어. 나는 너 없이 살아온 시간이 더 억울하고 너 없이 살아야 할 시간이 더 억울해.


내가 그날 널 만나지 못했으면? 내가 널 사랑하지 않았으면?

…납치해서 어디 가둬놨겠지. 날 사랑할 때까지 밥도 안주고 물도 안주고. 원래 세뇌가 가장 강력한 거야.


원빈의 표정은 전에 없이 진지했다. 나는 이 얼굴을 안다. 지금 원빈은 순도 백퍼센트의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조금의 장난도 들어있지 않은 순수한 진심. 등줄기로 식은땀이 비죽 났다. 허옇게 질린 내 얼굴을 본 원빈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걱정 마. 네가 날 사랑하지 않는 건 불가능해. 너는 내가 선택한 내 운명이니까. 너는 내가 선택한 내 삶이니까.


웃느라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 원빈은 내 앞에 바른 자세로 앉아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성찬아. 다정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른다.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지구에 왔어. 너를 사랑하려고 왔어. 네가 없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널 기다리면서. 언젠가 만날 너를 생각하면서, 나는 한 번도 내 운명을 의심해 본적이 없어. 너를 사랑하게 될, 우리가 사랑하게 될 삶을.

…….

너를 사랑하기 위해 시작된 삶은 너에게서 끝날 거야. 그게 다야. 그게 나야. 다른 삶은 없어.


오로지 나뿐이라는 말을 이다지도 달콤하게 속삭여주는 이 우주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앞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일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기꺼이 우주를 건너온 나의 운명, 그건 눈앞의 원빈이었다.




*




사랑을 해서일까. 원빈을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니가 자랐다. 왼쪽 어금니 안쪽, 입 안의 가장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자라난 사랑니는 지독하게도 나를 괴롭혔다. 통증으로 밤새 잠 한숨 못 잔 채 퉁퉁 부은 뺨을 짚고 눈물을 글썽거리는 내 손을 잡아 치과로 앞서 걸은 것은 원빈이었다. 덩칫값 못하고 등 뒤에 숨어 발발 떨고 있는 나 대신 진료 접수를 하고 대기실 소파에 앉아 별것 아니라며 나를 달랬다. 진료실로 들어가기 전, 축축하고 따뜻했던 손 대신 털이 봉실봉실한 검은 고양이 키링을 쥐여주던 원빈은 본 중에 가장 단호했고 어른스러웠다. 오랜 세월 지구에, 대한민국에 살아온 이력은 이럴 때에 빛이 났다.



뽑은 사랑니를 꼭 챙겨 나오라고 신신당부하던 원빈은 핏물도 채 다 닦이지 않은 사랑니를 보며 몹시 기뻐했다. 보통의 사랑니는 수술실에서 개박살이 나서 뽑혀 나오던데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잇몸에 깊숙이 자리를 잡았던 나의 사랑니는 네 갈래의 뿌리 중 부러진 한 가닥을 제외하고 온전한 모양으로 세상에 나왔다. 희한한 일이었다. 발치를 했던 의사 선생님마저 본인이 만들어낸(…) 작품에 놀라워했을 정도였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오랫동안 홀로 자라온 나무의 뿌리처럼 비틀어진 세 갈래 뿌리의 사랑니를 바라보던 원빈은 입을 쩍 벌려 왼쪽 잇몸 가장 깊은 곳, 나의 사랑니가 원래 살던 그 자리에 그 이빨을 박았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원빈이 오함마로 냅다 머리를 박살 내던 날처럼 비명을 질렀고 원빈은 손바닥 대신 내 입속에 혀를 집어넣는 것으로 비명을 막았다. 만져봐. 목소리는 열린 입과 목구멍으로 전해져 들어왔다. 고른 치열 끝, 하나 더 박힌 사랑니를 혀끝으로 더듬는 느낌은 오묘했다. 혀끝에 느껴지는 단단한 치아, 이것이 나의 일부였다는 것이.

가끔, 아니 사실은 꽤 자주 나는 원빈의 사랑니를 만졌다. 입을 맞추고 혀를 섞으면서, 티브이를 보는 원빈의 몸을 내 앞으로 바짝 당겨놓고 엄지손가락을 집어넣어서. 드물게 악몽을 꾼 날에는 자는 원빈을 깨우기도 하면서. 그럴 때마다 원빈은 간지러운지 어깨를 움츠리고 목으로 웃음을 삼켰다. 나도 원빈의 일부를 내 안에 갖고 싶었다. 가장 깊숙한 곳, 보이지 않고 나만이 알 수 있는 비밀스러운 자리에. 하지만 굳이 원빈에게 무언가를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원빈은… 망설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뭐라도 하나 뽑아 줄 우주인이었으니까. 원빈의 기행에 매번 비명을 질러댔던 목이 아직 칼칼했다.




*




우리은하를 지나 넓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두 개의 은하를 더 지난 곳에 있는 원빈의 고향별이 어디에, 얼만큼이나 먼 곳에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그렇구나, 너는 먼 곳에서 온 거구나, 하고 생각만 할 뿐이었다. 우주 해적을 만난 원빈이 그들을 피해 도망쳐 나왔다는 우주의 개구멍을. 극지대의 크레바스처럼 숨겨진, 시공간이 멋대로 휘어지고 구부러진 블랙홀을. 아가미로 호흡하는 인어들이 살고 있는 바다의 별과 목소리 대신 바람의 파동으로 이야기한다는 나무들이 가득한 별과 오아시스에 숨은 모래 지렁이가 입을 벌리고 여행객을 기다린다는 사막의 별을. 상상하는 것 말고는 알 수 없는 원빈의 우주를.


B612는 어디쯤에 있어? 본 적 있어?


나는 핀란드의 어느 마을에 모여 살고 있다는 산타는 믿지 않지만 우주 어딘가에는 어린 왕자의 소행성이 있을 거라고 믿는 어른이었다. 우주의 여기저기를 여행하고 돌아온 어린 왕자가 소중한 장미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장미는 여전히 어린 왕자를 사랑하고 있는 둘만의 작은 소행성.


이제 막 말을 배운 어린아이처럼 나는 질문이 많았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 지구인인 우리는 아직 모르는 넓고 광활한 우주. 원빈은 설명하려다 말고 일어나 방에서 여러번 접힌 종이 뭉치 같은 것을 꺼내왔다. 원빈이 지구에 올 때 사용했다는 지도였다. 방의 불을 끄고 지도를 펼치자 지도는 살아있는 우주처럼 빛났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별들, 천천히 소용돌이를 그리는 은하들. 생생한 밤하늘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그들만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지도는 내가 읽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다. 그런 나를 위해 원빈은 지도를 한군데씩 짚어가며 설명해 주었다. 제3 은하, 제5 은하. 말머리성운과 창조의 기둥, 곳곳에 있는 크고 작은 블랙홀들, 우주 해적의 출몰지. 그러는 와중에도 지도의 어딘가에선 별이 탄생하고 또 소멸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원빈이 손가락으로 짚은 곳에는 눈을 크게 뜨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할 아주아주 작은 별이 있었다. 원빈이 가리키지 않았다면 있는지도 몰랐을 만큼 아주 작은 별이었다.


이게 B612야. 장미와 어린 왕자는 아직도 서로를 끔찍이 아껴. 솔직히 좀 눈꼴 시려.


정말 싫다는 듯 눈가를 찡그린 원빈은 어린 왕자가 여행했던 별들의 남은 이야기들도 들려주었다. B612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발을 옮기면 징검다리를 건너듯 건너갈 수 있을 것 같은 작고 동그란 행성들로부터 이어져 온 이야기들. 어린 왕자의 별에서 날아간 바오밥 나무의 싹은 가까운 별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났다. 꼭 세 그루로 채워진 별은 무성해진 나뭇잎과 거대한 뿌리로 이제는 땅이 보이지 않고, 권위적이던 왕은 우연히 길을 잃고 그의 별로 들어온 여행객을 그의 부하로 삼았다. 마침 그의 직업이 집사였기 때문에 둘은 꽤 잘 지내고 있다고. 무의미하게 점등과 소등을 반복하던 가로등 지기의 가로등은 반짝이는 불빛으로 우주인들의 등대가 되어주었다. 매일 술만 마시던 주정뱅이는 어린 왕자가 소개해 준 다른 술꾼과 술친구가 되어 여전히 취한 채 그러나 외롭지는 않게 지내고 있고 지리학자는 어린 왕자가 떠난 후 책을 냈다고 한다. 원빈이 펼친 지도도 그의 책에 딸려있는 부록이라고 했다. 별과 별 사이를 움직이는 원빈의 손짓을 따라 선을 이으면 어떤 별자리가 나올 것도 같았다. 그 별자리에는 어떤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까.


모두 행복해졌네.

응. 행복해졌어.


원빈이 들려준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니면 그저 나를 위해 꾸며낸 이야기인지 나는 알 수 없다.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끝내는 모두 행복해졌다는, 나만을 위한 동화를 들려주는 나의 우주인이 내 곁에 있다는 것. 나에게는 그것만이 중요했다.


언젠가 가볼 수 있으면 좋겠다. 어린 왕자랑 인사도 하고, 술꾼이랑 대작도 해보고, 반짝이는 가로등 아래에서 손으로 그림자놀이도 하고.


우주를 베개 삼아 눕는다. 지난겨울 천정에 잔뜩 붙여놓은 야광별들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원빈은 엉덩이를 끌어 내 머리맡에 앉아 야광별을 바라보았다. 다섯 평 네모난 우리만의 우주를 우리는 함께 바라본다. 천정에 가득 뜬 별과 여러 개의 달이 원빈의 눈 안에 들어와 빛난다.


갈 수 있을까?

응.

그때까지 어린 왕자가 어려야 할 텐데.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웃은 원빈은 몸을 숙여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걔는 영원히 어린애일 거야. 네가 할아버지가 되고, 언젠가 우리가 지구를 함께 떠나더라도.



그날 밤 나는 꿈을 꿨다. 지구에 디디고 있던 두 발과 중력을 거스를 수 없던 나의 몸이 조금씩 가벼워져 둥실둥실 떠올랐다. 신기해하던 것도 잠시, 지구를 벗어나 고요한 우주에 혼자 남았다는 것을 깨닫자 두려워졌다. 지구는 이미 발밑에서 살구만 한 크기가 되어버려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어져 있었다. 돌아갈 방법 또한 알 수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대로 혼자 죽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누군가 내 손을 잡았다.


가자.


우주복도 우주선도 어떤 것도 없이 우리는 우주를 유영해 갔다. 행성과 행성 사이를, 은하와 은하 사이를. 숨이 막히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어린 왕자다, 저기.


까만 눈과 노란 머리, 책에서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어린 왕자가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린 왕자 곁의 붉은 장미는 푸른 잎을 인사하듯 흔들었다. 술꾼은 잔을 높이 들어 건배를 외쳤고, 가로등은 반갑다며 빠르게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우주의 모든 사람들이 겁 없고 낯선 여행객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눈을 떴을 때 창밖으로 파르스름한 새벽이 조금씩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즐거웠지, 언젠가는 또 가자. 희미해지려는 기억의 조각들을 마음속 서랍에 차곡차곡 집어넣고 몸을 틀어 잠든 원빈을 품에 꽉 안았다. 먼 훗날 열어볼 너의 서랍에도 내가 가득 담겨 있을까. 잠결에 파고드는 원빈은 내 품에 꼭 맞춘 것처럼 딱 맞았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에게 알맞게 맞춰져서 태어난 것 같아. 내가 너를 찾은 것처럼. 네가 나를 찾은 것처럼.




*




지긋지긋한 가을동화를 또 보고 있는 원빈은 화면 안으로 빨려 들어갈 기세였다. 주말이면 늘 있는 일이지만 어쩐지 얄미웠다. 작은 태블릿 화면 속의 진짜 원빈에게 홀려있는 박원빈. 그렇게 원빈이 좋았으면 원빈을 만났어야지, 왜 나를 만났대. 이름도 원빈으로 바꿀 정도의 애정이면 아주 별도 달도 따다 줬겠구만. 드라마에 몰두한 원빈의 등에 쿠션을 던졌다. 내 손을 벗어난 쿠션은 원빈의 뒤통수를 정확히 가격했고 휘청인 원빈이 고개를 돌렸다. 나야, 원빈이야. 둘 중에 하나만 골라. 나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말로 원빈을 어처구니없게 만들었다.


원빈은 내 이상향이고 너는 내 이상형이지.


말이나 못 하면. 입술을 비죽이는 나를 삐약 거리는 새끼 강아지나 고양이를 바라보는 듯한 표정으로 보던 원빈은 태블릿 PC를 끄고 네발로 기어와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나한테는 너밖에 없어, 알면서 그래. 내가 지구까지 왜 왔는데. 또 말해줘?


팔을 촉수처럼 쓰며 엉겨 붙는 원빈을 못 이기는 척 마주 안았다. 너밖에 없다는 그 한마디에 헤벌레 또 녹아버린다.


근데 성찬아.


평소와 다름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원빈의 음성에 갑자기 꼬리뼈부터 뒷목까지 소름이 돋았다. 등근육이 뻣뻣하게 굳는다. 이건 좋지 않다. 알 수 없는 서늘한 예감이 뒤통수를 관통했다.


부탁이 있어. 엄청난 건 아니고 되게 사소한 건데, 진짜야. 진짜진짜 되게 작고 귀엽고 사소한….


말이 길어진다는 건 뒤가 구리다는 뜻이었다. 원빈은 장화 신은 고양이에 나오는 고양이처럼 왕방울만 해진 눈을 그렁이며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나 보자. 고갯짓이 끝나기 무섭게 원빈은 화색이 도는 얼굴로 활짝 웃으며 제 입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뿌득, 짧은 비명 같은 소리와 함께 원빈의 입 밖으로 나온 손가락에 들려있는 것은 원빈의 어금니였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어금니를 손바닥에 소중히 올려놓은 원빈이 뿌듯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예쁘게 맞물린 입꼬리를 타고 뻘건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당연히 나는 또 비명을 질렀다. 호러 영화가 따로 없었다. 지가 무슨 전설의 고향이야 뭐야. 도대체가 어떻게 매번 새롭게 사람을 놀래키는지 감탄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원빈은 익숙한 듯 비명을 질러대는 내 입을 차분하게 손바닥으로 막았다. 아카시아 모링가 향, 익숙한 향기와 익숙한 장면. 코로 깊은숨을 들이키며 나는 비명을 지르느라 칼칼해진 목구멍을 닫았다.


나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아. 아무리 생각해도 제명에는 갈 수가 없어.


원빈은 손바닥에 묻은 내 침을 티셔츠에 대충 문질러 닦았다. 무슨 그런 서운한 말을 해. 너는 죽어도 내가 다시 살려 놓을 건데. 말을 할 때마다 입안을 온통 벌겋게 물들이는 붉고 끈적한 액체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프지 않을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손등으로 피 묻은 원빈의 입가를 대충 훔쳐냈다. 붉은 액체는 말끔하게 닦이지 않고 입 주변으로 번져 더 흉한꼴이 되어버렸다. 음, 최악이군. 인간의 간이든 쥐든 뭐가 됐든 뭘 잡아먹은 구미호 같은 꼴이 된 원빈을 모르는 척, 그의 뒤통수 너머 어딘가로 시선을 넘겼다.


나한테도 네가 있으니까, 너한테도 내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우리는 이어져 있는 거니까…. 우리가 나중에 잠깐 떨어져 있게 되더라도 나는 조금 덜 슬플 것 같아.


원빈은 수줍은 색으로 뺨을 물들였다. 지금 이렇게 수줍게 몸 배배 꼴 타이밍이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한 포인트에서 원빈은 부끄러워했다. 따가운 목에서 쇠비린내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꼭… 그래야 하는 걸까.

네가 싫다고 하면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괜찮아. 물론 나는 좀 슬플 거고, 어쩌면 너 몰래 좀 눈물이 나서 조금 울 수도 있긴 한데, 나는 네가 싫어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괜찮아.


내 걱정은 하지 마. 상처 같은 거, 나는 안 받으니까. 원빈은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지구에 오래 살더니 속에 능구렁이가 열댓 마리는 들어앉았나 보다. 말은 또 얼마나 청산유수인지.


꼭 싫다기보다는….

정말?


고개를 반짝 든 원빈이 눈을 접으며 웃었다. 기대감에 가득찬 봉긋한 두 뺨, 기분 좋게 벌어진 입술. 살짝 올라간 눈꼬리에 취할 것 같았다. 입가에 더덕더덕 피를 묻히고 웃는 원빈은 흡사 구미호 같았다. 구미호에게 홀려 고통 따위는 잊은 채 기쁘게 간을 내어주던 사람들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당장 가슴팍을 열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고 싶은 충동을 꾹꾹 눌러 담으며 나는 말없이 원빈을 당겨 안았다. 끝내 대답은 하지 않은 채로.






싫은 건 아니지만 그닥 내키지도 않는다는 에두른 나의 거절에 원빈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기분을 감추려는 일말의 노력조차 없는 표정으로 원빈은 티슈 한 장을 뽑아 작고 맨들맨들한 치아를 소중히 감쌌다. 버릴 줄 알았더니 의외였다. 나의 시선을 눈치챈 원빈이 두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지구인들 마음은 자주 바뀌잖아. 이렇게, 휙휙.


손바닥을 위아래로 뒤집는 원빈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펼쳐진 원빈의 손바닥 위로 내 손을 올려 잡았다.


…이건 안 바뀔 거 같은데.. 미래는 모르는 거야.


그렇게 함부로 확신해서는 안 돼.

원빈의 작은 어금니는 딱 그만큼 작은 유리병에 담겨 티브이 옆 선반에 놓였다. 언제든 내가 마음을 바꾸면 바로 내 잇몸 어딘가에 심을 수 있도록. 원빈이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자리에. 가끔 이유 없이 등골이 서늘해질 때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티브이 옆 원빈의 어금니를 바라보게 됐다. 그 어금니가 언제든 날아와 내 입안으로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그런 불길한 예감 때문에. 내가 죽지 않으면 죽지도 다치지도 않을 거라는, 내가 죽으면 망설이지 않고 나를 따라 죽을 거라는 우주인과 지극히 평범한 지구인인 내가 연애를 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 어금니가 자의식을 갖고 날아오는 것 정도는 그닥 놀라운 일도 아닐 것 같았다. 세상에는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




고향별에서부터 부산까지 내내 따뜻한 곳에서 살아왔던 원빈은 서울에 온 후에야 눈을 처음 보았다고 했다. 잎을 다 떨군 겨울의 나무 같기도, 막 돋아나는 이른 봄의 꽃송이 같기도 한 백색의 얼음결정이 선득하게 이마에 닿아 순식간에 녹아내리던 첫눈의 감각, 짙어진 하늘을 희게 물들이며 쏟아지던 눈송이들.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하늘에서 눈을 보고 싶어 원빈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동네, 가장 높은 언덕에 있는 집에 세를 얻었다. 작은 마당이 있는 오래된 단층집은 겨울이면 웃풍이 들었다. 뒤틀어진 창문틀 사이로 찬바람이 쉽게 들고 보일러도 자주 터졌다. 이불을 두, 세겹 뒤집어쓰고도 빨개진 코로 허연 입김을 울컥울컥 내뱉어야 하는 날들이 있었다. 몇 번의 경험으로 입김이 차가워질 즈음이면 수도가 얼지 않도록 보풀이 일어난 겨울옷을 수도관에 감아 놓아야 하고, 창문마다 미리 단열재를 붙여놓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낙엽이 지기 시작하는 계절이면 우리는 동면을 앞둔 동물들처럼 겨울을 날 준비를 했다.

열 손가락을 다 접어도 부족할 정도의 불편함들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집에 계속 머물렀던 이유는 하늘 때문이었다. 눈이 쏟아진 후에는 진지하게 썰매를 타고 내려갈까, 고민하게 만드는 가파른 언덕길은 해마다 꼭 누구 하나의 다리를 부러뜨렸는데 낮은 담장들을 따라 긴 밧줄이 난간처럼 매어진 것은 통장 아주머니의 발목이 부러진 다음 날 이었다. 등산하는 사람처럼 밧줄을 붙잡고 꼭대기 집까지 올라 바라보면 어느새 하늘은 두 뼘 정도 가까워져 있었다. 추운 바람이 하늘의 먼지를 모두 쓸어간 겨울, 마당에 나란히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별의 검은 바다에 잠겨있는 것 같았다. 팔을 뻗으면 휘저을 수도 있을 것 처럼 가까운 하늘. 쏟아지는 눈을 가장 먼저 머리 위에 얹을 수 있는 곳. 그곳이 우리의 집이었다.


눈 온다.


단열재가 두툼하게 발려있는 창문 밖으로 함박눈은 온다는 기척도 없이 조용히 쌓여가고 있었다.


커다란 담요를 꺼내 함께 덮고 마당에 앉았다. 땅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에 엉덩이가 얼얼하게 시렸다. 슬리퍼 밖으로 빠져나온 발가락들과 코끝은 전부 빨갛게 물들었다. 야, 루돌프다 루돌프. 선물 나르러 안가냐? 원빈의 코를 손으로 감싸며 웃었다. 차가워진 얼굴로 원빈은 나를 따라 웃었다.


우리 처음 만난 날도 이렇게 추웠는데 그치.


얼어버린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어깨를 안으로 한참 구부려도 차가운 바람을 피할 수 없었던 날. 훈기를 찾을 곳이라고는 맛없는 멸치국수 가게뿐이었던 그날. 맹맹하고 비린내나는 국수를 다섯 그릇이나 비우던 원빈이 신기해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그 날. 원빈의 말처럼 그것이 정해져 있었던 일이었던, 아니면 그저 이어진 우연이 만들어낸 결과였던 내 운명의 지침이 돌려진 그날을 나는 봄이 그리운 찬바람이 꽃잎처럼 코와 뺨을 물들이는 겨울마다 생각하게 될 것 같았다. 얼어붙은 거리와 수증기가 부옇게 끼어있던 가게 안, 오그라들던 발가락 같은 것들을.


야, 말도 마. 너 늦게 와서 내가 그 국수 먹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너 멱살 잡으러 나가려고 그러던 참이었어. 그거까지만 딱 먹고 너 잡으러 가려고.


오래 삶아 다 불어 터진 소면의 밀가루 냄새를 떠올리기만 해도 원빈은 그때 먹은 국수를 모조리 토해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늦지 않아서, 그러니까 네가 내 멱살을 잡을 정도로는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네가 맛없는 국수를 여섯 혹은 일곱 그릇을 먹지 않아도 되어서. 늦기는 했지만 결국 우리가 만나게 되어서.


아, 기다려봐. 가만히 있어.


원빈의 정수리 위로 얇게 쌓여가는 눈을 바라보다가 집으로 들어가 급하게 카메라를 챙겨 나왔다. 손때 묻은 카메라는 중고 가게에서 제법 값을 치르고 사 온 것이었다. 카메라를 처음 들이밀었던 날에 원빈은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얼굴을 하고 물었다. 왜 갑자기? 그냥. 흘러가버리는 우리의 시간이 아까워서, 사라질 순간을 우리의 영원으로 만들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기억력이 남다른 나의 우주인은 전부 기억하면 되지 않느냐고 되물을 테니까.

짙어진 하늘을 가득 채우며 흩날리는 함박눈, 밤새 쌓인 눈 위로 나란히 찍힌 우리의 발자국, 마당 한 켠에 어설픈 얼굴을 하고 서 있는 주먹 두 개만 한 작은 눈사람, 장갑도 없이 눈싸움을 하다 벌겋게 얼어버린 손끝, 따뜻한 김이 오르는 핫초코 두 잔. 흘러가거나 흘러가지 않는 것들, 멈춰있거나 멈춰있지 않은 우리의 순간들.

내가 없을 날에 원빈이 들춰볼 수 있을 시간 들을 찍었다. 그것이 하루가 되었든, 일주일이 되었든 혼자 남겨질 원빈에게 바람처럼 불어들 기억 들을. 그러니 조금쯤은 덜어서 여기에 넣어두어도 된다고, 내가 없을 시간까지 모두 끌어안은 채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고.


찍는다, 하나둘.


셋까지 세지 않고 셔터를 누른다. 무방비한 표정의 원빈이 고스란히 필름 안에 새겨진다.



둘러진 담요 안에서 몸을 붙여 앉으며 원빈은 역시 겨울이 좋다고 했다. 닿아있는 어깨와 팔뚝으로 원빈의 온기가 전해져왔다. 나도. 나도 겨울이 좋더라. 담요 안을 더듬어 원빈의 손을 찾아 꼭 쥐고 함박눈이 쏟아지는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별은 보이지 않지만, 별 대신 그보다 더 촘촘하게 하늘을 가득 채우는 별빛 같은 하얀 눈송이를, 이마와 콧등에 닿으면 사르르 녹아버리는 겨울의 꽃들을 원없이 눈 안에 담았다.


좋네.

뭐가?

겨울.

싱겁긴.


맥없이 웃은 원빈이 내 어깨에 가만히 머리를 기대왔다. 바라보고 있으면 결정의 잔가지까지 모두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굵은 눈송이는 여전히 우리의 정수리 위로, 얼어붙은 흙 위로, 잠들지 않은 도시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너울처럼 일렁이는 눈송이들 사이로 우리의 우주는 다시 그려진다.




네게 겨울을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실은 네가 좋아하는 겨울을 좋아하고 있는 거라는 걸 너는 알까. 무채색 거리를 알록달록하게 물들이는 크리스마스 장식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첫눈,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눈의 카페트 위로 내딛는 첫걸음, 나의 발뒤꿈치를 밟으며 걸어 오는 나보다 조금 작은 너의 발자국. 비닐봉투에 가득 들어있는 귤들과 마주 앉아 손가락 끝이 노랗게 변할 때까지 까먹던 귤의 새콤달콤한 향기, 그럴 때면 다정하게 기울어지던 너의 머리. 이마를 대면 닿아오는 너의 체온, 언어 없이도 전해지는 수만가지 너의 말. 바람이 할퀴고 간 네 뺨을 어쩌지 못해 발을 구르고, 얼어붙은 두 뺨을 그다지 다를 것도 없는 손바닥으로 감싸면 그 위로 덮어 오던 너의 손. 책장 사이 눌러놓은 꽃잎의 향기 같은 우리의 기억들. 겨울의 기억은 온통 너처럼 따뜻하다는 걸.

너를 만나기 전의 나는 겨울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모두에게 공평하게 혹독한, 상냥하지 않은 이 계절은 너무 춥고 또 외로워서. 나뭇잎을 모두 떨군 나무들이 애처롭고, 눈발 섞인 바람이 우는 소리가, 모든 생명이 잠들어버리는 이 계절은 너무 슬퍼서. 우울한 하늘의 색과 어쩌지 못해 결국 흐르는 눈물 같던 눈송이들이 나까지 결국 울려버리고야 마는 겨울이. 그랬던 나는 네가 사랑하는 계절이 겨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겨울을 사랑하게 되었어. 앞으로도 네가 사랑하는 수많은 것들을 나 또한 사랑하게 되겠지.




넌 만약에 다시 태어나면 뭐로 태어나고 싶어?

나? 지구인. 지구에서 태어나서 너 또 만날 건데.

내가 다른 별에서 태어나면?

그땐 니가 와야지. 내가 또 가?

맞네.

지구에서 태어나서 하와이에 살고 있을 거니까 알아서 와.

하와이?

응. 나 옛날에 공장 다닐 때, 강철용이었을 때. 내 친구 중에 이영득이라고 있었거든? 걔가 하와이로 이민 갔어. 지 애인이랑. 이민이라기보다 도망에 가까우려나. 사실 이건 비밀인데 걔 뭐 사람 죽이고 그런 것 같더라고.

헐.

근데 나한테는 잘해줬어. 걔한테 가끔 연락왔었는데 좋대, 하와이가.

그래?

응. 나 하와이에 있을 테니까 데리러 와. 근데 나랑 너랑 서로 알아보려면 뭐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안돼.

아, 왜. 하나만 심자고. 딱 하나만.

안된다니까.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저리가.


호시탐탐 나의 잇몸을 노리고 있는 나의 우주인에게 멀지 않은 어느 날, 나는 내 잇몸을 내주고야 말 것이다. 원빈의 치아는 나만이 알 수 있는 자리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게 되고, 나는 원빈의 일부였던 그것을 영원히 내 안에 간직하게 되는 날이 결국은 오고야 말 것이라고. 치아가 아니라 원빈의 갈비뼈 하나를 뽑아서 내 갈비뼈 사이 어딘가에 넣어놓는다 해도 나는 상관없다고, 그것 또한 깨나 낭만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을 하면 닮는다고 하던데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원빈을 닮아가고 있는 걸까. 나를 위해 몇억 광년의 우주를, 그 거대한 시차를 기꺼이 건너온 나의 우주인에게 무엇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았다. 사랑이란 그런 거니까.


별똥별 떨어진다.

어디?

저기. 얼른 소원 빌어. 꼬리 떨어지기 전에.

야 저거 별똥별 아닌 것 같은데? 인공위성 추락하는 거 아냐? 불붙었는데?

신고해? 경찰에? 소방서에? 나사에 해야 되나?

나 우주인이거든? 내가 어떻게 알아. 빨리 114에 전화해, 빨리. 전화해서 119 전화번호 물어봐.






평범한 지구인과 평범한 우주인, 우리는 오늘도 지구에서 연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