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바다 끝에서
by. A
이건 구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믿음에 관한 기록이다.
1
좆같은 짠내는 초고농축 다우니를 쏟아부어도 빠질 법을 몰랐다. 푹푹 흘러나온 민어 내장의 비린내가 경매장을 지나 옷장 속 고이 모셔둔 교복까지 베였을 리 없다는 걸 안다. 헹굼과 탈수의 고단함은 교복에게만 주어진 난관이 아니었다. 유난 떤다는 아저씨의 말을 증명하듯 작업이 있는 날엔 아침 샤워를 세 번이나 했다. 부패하지 않을 것 같은 싸구려 비누의 민트향 고역이 내 코끝까지 당도해도 정신병자처럼 살갗을 문지르는 일에 몰두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의심.
의심은 언제나 불안으로부터 기인한다. 죄악을 저지른 과거에 대한 불안과 더 선량한 회개를 구하려는 현재의 불안과 어서 빨리 구원받고 싶은 미래의 불안이 모두 모여 믿음으로 당도한다. 애석하게도 그렇게 당도한 믿음에 천국은 없다. 다시 의심만 있을 뿐이다. 부재의 당위가 존재의 증명인 것처럼. 역류의 필연이 순류를 훼방하기 위함인 것처럼. 의심과 불안과 믿음의 굴레에 갇혀 순례로 위장한 출구 없는 미로를 빙빙 돌 뿐이다. 다행인 건 이 바다를 영위하며 살아가는 이곳 모두가 나와 같은 정신병을 앓고 있단 사실이다.
나는 아저씨를 도와 일주일에 세 번 새벽마다 작업에 나갔다. 출항을 마치고 온 아저씨를 따라 경매장 구석에서 죽은 것들과 산 것들을 구분했다. 쓸모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살아있는 것의 가치. 죽어버린 것의 무용. 왼손엔 그물. 오른손엔 작업용 칼. 모든 것을 명확히 구분하느라 바삐 움직이던 아저씨의 손이 멈췄다. 나의 쓸모는 구분할 필요도 없다는 듯 아저씨의 시선은 여전히 그물에 머물러있었다. 그건 버려야지. 눈깔이 돌았잖어. 아직도 모르겠냐.
아저씨는 내게서 축 처진 민어를 빼앗아 바께스로 던져댔다. 바께스엔 쓸모없고 가치 없는 민어들이 쌓여있었다. 대부분 죽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죽은 것들이 모여있는 곳이라기엔 늘 지나치게 시끄러웠다. 언제나 한 줌의 숨이 간신히 붙은 민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푸드덕 푸드덕. 모자란 숨을 더 모자라게 만드는 움직임이었다. 살기 위해 허덕이다 제풀에 지쳐 죽었다. 죽을 힘을 다해 애썼지만 결국 무용으로 구분되는 안타까운 생애였다. 그리고 난 그게 존나 꼴 보기 싫었다. 벗어나지 못할 바에야 발악하지 않는 편이 나으니까. 아마 조금 더 펄쩍댔다면 난 작업용 커터칼로 민어의 아가미를 찢어버렸을 거다. 그건 내가 내린 내 몫의 쓸모였다.
- 좆만이 짠내 좆돼.
타모는 나만 보면 지랄을 떨어댔다. 날이 갈수록 지랄의 농도가 짙어졌다.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럴만한 쓸모가 없는 일이었다. 언젠가 한 번 타모의 지랄을 목격한 아저씨는 웬일로 불같이 화를 냈다. 지 부모 닮아서 느자구라고는 좆도 없는 새끼. 저런 새끼한테 지지 말라고 했다. 덧붙여 내게 마음이 참 넓다고도 했다. 칭찬의 뜻은 아니었다. 물러터졌다는 뜻이었다. 아이고, 물러터진 라니. 불쌍한 라니. 마음이 그렇게 넓어서 지 마음은 간수도 못 하고. 아저씨는 엄마에게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엄마만 보면 우는소리를 해댔다.
엄마는 햇빛 강한 솔곶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가장 하얀 아이였다고 했다. 가장 하얗고 가장 작고 가장 예뻤던 아이. 아저씨는 종종 엄마가 얼굴만큼 마음도 고운 아이였다는 고리타분한 얘기를 꺼내곤 했다. 나는 아저씨의 넋두리 같은 회상을 들으며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건 엄마를 지키는 나만의 방법이기도 했다. 엄마의 과거를 은근히 비하하듯 과장되게 놀란다거나 반박하고 싶은 얄궂은 마음이 든 적은 없었다. 엄마가 착하고 예쁜 아이였을 거란 아저씨의 판단엔 나 또한 이견이 없었다.
엄마는 언제나 포근한 목소리로 나를 ‘원빈아’ 하고 불렀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도 엄마는 내게 어떤 위협을 가하거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짓는 일 따위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에 대한 칭찬은 나를 뿌듯하게 만들기도 했다. 난 그저 아저씨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엄마 얘기가 불편했을 뿐이다. 아저씨의 절절했던 첫사랑이 엄마였다는 건 무수한 거짓이 넘실대는 솔곶에서 내가 알고 싶지 않은 가장 첫 번째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저씨가 자꾸만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건 진심으로 엄마의 생애를 안타까워했다거나 엄마의 존재를 추억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건 결국 순해 빠지고 물러터져서 불쌍한 말로를 피할 수 없었다는 질책이었다. 반 음 정도 올라간 들뜬 목소리와 어쩐지 길게 발음되는 ‘사랑’ 같은 것들로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용기 없던 지난날의 본인 대신 언제까지고 착할 엄마 탓으로 돌리는 게 더 쉬우니까.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아저씨는 내가 엄마를 닮아서 타모의 지랄을 이해하고 넘어가는 거라 생각하는 듯했다. 엄마를 닮아서. 내가 엄마를 닮았나? 아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침착은 빨랫비누의 효능인가? 좆까고. 하루 세 번 샤워로 인한 면역 증진의 효과는 더더욱 아니다. 지랄엔 면역이 없다. 단연코 괜찮았던 적 역시 한 번도 없다. 그저 참는 거였다. 엄마의 관용은 회피와 인내로부터 기인한 거였다. 엄마가 어렴풋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그리고 난. 이젠 참는 데엔 이골이 났다.
요휘께서이세상을가엽게여기사너희를구원하러오셨나이니요휘의빛이너희를지키고요휘의생명이너희의환난을막아줄지어다요휘께서이르시되내가너와함께하니리의심하지말라염려하지말라내가너를굳세게하리라내가너의요새요피난처이니네마음을다하여너의요휘를사랑하라믿음은희망의실체요의심은정죄의씨앗이라나는바다요빛이니너의탐오를엄결의길로이끌지어다요휘께서다시이르시되너의요휘를사랑하는것처럼너의형제를사랑하라긍휼은평강의기원이요애휼은화평의근간이라네가너의형제를미쁘게여겨내게이끌때내가너의간구에답할지어다내가너를영광과환락과빛의바다로데려갈지어다
그치만 어쩌겠어. 그러니 어쩌자고. 난 널 사랑해야 돼, 타모. 좆같은 요휘가 내게 말씀하시잖니.
그게 비록 비틀린 모습일지라도 난 늘 노력했다. 이해하려 하지는 않았지만 사랑하려고는 했다. 그런 내 노력은 언제나 무시당했다. 엄마처럼 인내를 습관으로 길들일 수 있었다면. 아저씨처럼 왜곡과 질책에 능할 줄 알았다면. 예전처럼 타모와 웃으며 지낼 수도 있었겠지. 그러나 난 엄마가 아니다. 아저씨가 아니다. 그리고 난. 난 요휘가 아니다. 아마 나는 그들을 평생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난.
더는 타모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사랑한 적 없었다. 난 타모를 혐오한다. 이 감정은 타모에 대한 원망으로부터 시작된 게 아니다. 이건 요휘에 대한 반발심이었다. 혐오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내가 타모를 혐오하는 방법은 타모가 나를 싫어하는 방법과 같았다. 무시하기. 같잖은 지랄은 사뿐히 즈려밟기. 귓가에 내려앉는 멸시를 꾸역꾸역 접어 고막 안으로 밀어 넣는 쪽보단 형체 없는 단어들을 무작위로 섞어 머리 위로 흘려보내는 편을 택했다. 그래, 계속 짖어봐. 듣는 내 귓구멍이 아프겠니. 짖는 네 목구멍이 따갑겠지. 그날따라 유독 타모의 지랄이 유별났다. 아마 타모도 내가 보내는 같은 값의 멸시를 눈치챈 듯했다. 모르는 게 병신이었을 수도. 구태여 풀지 않은 엉킨 이어폰에선 델리스파이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저씨의 애창곡이었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 보려 하는데도오. 너의 목소리가 들려어.
이상한 노래였다. 똑같은 가사만이 반복됐다. 노래처럼 날씨도 이상한 하루였다. 분명 해가 떴는데 해무가 가득 끼었다. 앞이 흐리멍덩했다. 날 집어삼킬 것만 같은 희미한 어둠이었다. 파도도 유난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조금만 늦게 배를 띄웠었다면 아마 아저씨는 죽었을 거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이어폰을 비집고 들어오는 파도 소리를 반주 삼아 걸었다. 지각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종아리에선 심장이 내려앉은 듯한 맥박이 느껴졌다. 찌르르 당겼다. 작업이 있는 아침엔 늘 있는 현상이었다. 템포가 느린 노래 탓을 하며 플레이리스트를 바꾸려던 참이었다. 뚝. 이어폰이 귓가에서 힘없이 빠졌다. 엉킨 내 이어폰을 쥔 타모는 날 죽일 듯이 노려봤다.
- 야.
- 그만 불러.
- 미쳤냐?
- 누가.
- 뭐?
- 내가? 아님 니가.
참는 데엔 이골이 났다. 이제는 증명하고 싶었다. 증명해야 했다. 아저씨, 난 엄마랑 달라요. 난 엄마랑 닮지 않았어. 내 마음은 그렇게 넓지 않아. 난 침착하지 않아. 난 물러터진 사람이 아니야. 뾰족해진 내 귓가로 타모의 비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타모는 이어폰을 바닥으로 툭 던지더니 곧장 내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시야엔 얼룩진 타모의 운동화가 가득 찼다. 실소가 흘러나왔다. 고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엄마가 사 준 운동화였다. 엄마는 타모에게도 똑같은 운동화를 선물했다. 타모, 고등학교에 가서도 우리 원빈이랑 사이좋게 지내야 해. 알았지? 넌 이걸 아직도 신는구나. 난 갖다 버린 지 오랜데. 븅신.
- 쳐돌았지.
- 놔.
- 말이 짧아 좆만이.
- 놓으라고.
- 놔 주세요.
- ...
- 놔 주세요, 해 봐.
저 병신은 언제까지 찐따새끼처럼 살 작정인 걸까. 타모가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같은 처지에 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비슷한 농도의 불행한 향이었다. 불쌍한 타모. 친구라곤 나밖에 없는 타모. 내 위로 군림하고 싶어 하는 타모. 나의 추앙을 상징처럼 여기고 싶어 하는 타모. 그런 주제에 나만 보면 발정 난 개새끼처럼 지랄하는 타모. 덜 마른 내 머리칼과 그 아래 붉게 물든 뺨만 봐도 세우는 타모. 난 다 아는데. 기어코 모르는 척하는 애새끼 타모. 불쌍해. 그러나 동정은 함부로 건네는 게 아니지. 동정은 약점. 약점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기꺼이 쥐여주는 것. 말했지. 난 너 안 사랑한다고. 발끝부터 기를 쓰고 모은 침을 타모의 운동화 위로 뱉어댔다.
그 사이로 깃든 고요가 머물기도 전에 타모는 곧장 내 뒤통수를 가격했다. 이 좆만이가. 타모의 짧은 질책이 끝나자마자 두들겨 맞았다. 꾹 쥔 주먹 탓에 튀어나온 손가락 뼈로 뒤통수와 정수리를 연신 맞았다. 그다음엔 어깨. 그다음엔 명치. 그다음엔 아랫배. 그다음엔 다시 정수리. 마지막으로 뺨을 맞았을 땐 몸 전체가 휘청거렸다. 아스팔트 바닥을 짚으며 넘어진 탓에 손바닥이 까졌다. 방울방울 맺힌 피가 옹졸했다. 타모는 주저앉은 내 앞으로 허리를 굽히고 앉았다. 그 모든 주먹보다 내 뺨 위를 톡톡 쳐대는 손길이 더 좆같았다.
- 눈 깔아 좆만아.
곧 비가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던 날씨는 어느새 해풍을 동반했다. 머리칼을 헤집는 바람이 무겁게 끈적였다. 손바닥으로도 흐드러지는 바람을 한 움큼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버릇처럼 턱을 벌려 틀어진 것만 같은 뼈를 맞췄다. 뚝뚝. 끊어지는 소리를 뒤로하며 주변을 살폈다. 뿌예진 공기 탓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중 눈에 띈 돌을 손에 감싸 쥐었다. 그런 나를 가만히 살피던 타모는 코웃음을 치며 내 뺨을 때려댔다. 찰싹대는 파열음이 유독 크게 느껴졌다.
- 좆만아. 왜. 나 때리게? 어우 무서워. 기집애같이 머리만 길어서 때릴 힘은 있고?
나 역시 타모를 빤히 바라봤다. 쥐고 있던 돌은 타모에게 향하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내 머리를 내려쳤다. 목덜미까지 골이 징징 울렸다. 두피가 찢어진 건지 눈썹 위로 피가 찐득하게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속눈썹까지 흐르지 않도록 벅벅 닦아냈다. 계속 쳐다봐야만 했다. 이게 좆만이의 증명법이다 씨발아. 난 미동도 하지 않고 타모를 노려봤다. 타모는 당황한 듯 벙찐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눈이 동그래진 게 웃겼다. 병신새끼. 겁은 또 졸라게 많아요. 타모의 어깨 뒤로 쥐고 있던 돌을 빠르게 던지며 일어섰다. 툭툭. 돌이 굴러가는 소리를 또렷하게 들으며 타모의 위에서 타모를 내려봤다.
- 그만 해.
- ...
- 안 그럼 너 죽어.
- 뭐라고?
- 씨발 쫌.
같은 말 또 하게 하지 마. 너는 시간이 남아돌지. 한가하고 지루해서 죽겠지. 나 아님 너 놀아줄 사람도 없잖아. 종일 좆만이 좆만이 우리 좆만이. 나 좀 그만 찾아. 내가 니 엄마야? 젖 필요해? 씨발아 난 바빠. 그것도 존나 바빠. 너랑 놀아줄 시간 없어. 앞으로는 더 없어. 그러니까 아쉬운 건 내가 아니라 너지. 정신 좀 차려. 언제까지 애새끼처럼 굴래. 갖고 싶은 게 있음 말로 해. 그래도 들어줄까 말까야. 못 하겠음 부탁이라도 해. 꿇어. 빌어. 하고 싶은 게 있음 그 정도 성의는 보여야지. 내가 너 놀아주잖아. 꽁으로.
요휘께서이세상을가엽게여기사너희를구원하러오셨나이니요휘의빛이너희를지키고요휘의생명이너희의환난을막아줄지어다요휘께서이르시되내가너와함께하니리의심하지말라염려하지말라내가너를굳세게하리라내가너의요새요피난처이니네마음을다하여너의요휘를사랑하라믿음은희망의실체요의심은정죄의씨앗이라나는바다요빛이니너의탐오를엄결의길로이끌지어다요휘께서다시이르시되너의요휘를사랑하는것처럼너의형제를사랑하라긍휼은평강의기원이요애휼은화평의근간이라네가너의형제를미쁘게여겨내게이끌때내가너의간구에답할지어다내가너를영광과환락과빛의바다로데려갈지어다
그런데, 타모. 내가 언제까지 너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 알고 싶지 않아. 하고 싶지 않아. 혐오하는 것도 지겨워. 너는 쓸모가 없어.
요휘의 말씀은 더 이상 내게 효력이 없었다. 그러니 이제 나는 요휘의 방식이 아닌 내 방식대로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 정신병자만이 들끓는 이곳에서. 나는 나만의 답을 오직 내게서 간구해야 한다.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불쌍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을 것이다. 구원은 없다. 나를 구원하는 건 오직 나뿐이다.
- 대줘?
- ...
- 아님 반대야?
- 야.
- 바라면 뚫어주고.
- 좆만이가...
- 어. 어어. 어어어. 그래 좆만이. 왜. 좆만이랑 빠구리 뜰 생각만 해도 막 너무 떨려? 설레? 근데 어떡해. 넌 내 취향 아닌데.
내가 나를 구원하기 위해선 이 병신새끼부터 떼어내야 했다. 나는 아까의 타모처럼 허리를 굽혀 타모의 앞에 앉았다. 굳은 피가 덕지덕지 말라붙은 손끝으로 타모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상판이라도 갈고 오던가.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유치했다. 나는 나만의 작은 성공에 수치를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타모는 더 이상 나에게 지랄하지 않을 것이다. 타모는 내 위로 군림하고 싶어 하는 아이. 타모는 나의 추앙을 상징처럼 여기고 싶어 하는 아이. 타모는 자존심이 가장 중요한 아이. 그런 타모의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존재인 내가 타모의 자존심을 짓밟았으니. 이제 더는 내게 알짱대지 않을 거라 믿었다.
- 좆만아 너 그거 아냐. 짠내도 유전인 거.
애석하게도 당도한 믿음 위에 천국은 없다. 다시 의심과 불안의 반복. 옆에도. 앞에도. 아무리 둘러봐도 천국은 없다. 온통 지옥뿐이다. 타모의 말은 지옥에서 겨우 한 마디 벗어난 날 다시 지옥으로 끌어당겼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했다. 썩은내가 들끓는 바닥에 발이 묶인 것만 같았다. 타모, 넌 언제나 이렇게 날 비참하게 만들어. 넌 내 예상을 한 치도 안 벗어나. 지겹고 뻔하고 역겹고 따분해. 좆같아 죽겠어 진짜. 주저앉아있던 타모가 몸을 일으켰다. 타모는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가만히 서서 나를 지켜보는 타모의 그림자를 가차 없이 구겨 나아가고 싶었다. 겨우 한 발짝. 나의 온 신경은 불안을 머금고 타모가 뱉은 말을 곱씹었다. 또 뭐라고 나불댈지. 타모의 혀를 뽑아버리고 싶었다. 닥쳐. 아무 말도 하지 마.
- 니네 엄마처럼.
- ...
- 너도 짠내 좆돼.
난 곧장 몸을 돌려 타모에게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퍽. 온 힘을 다해 타모의 옆구리를 세게 차 다시 바닥으로 쓰러뜨렸다. 타모에게 저항할 틈을 줄 만큼의 자비와 사치는 없었다. 타모의 허리 위로 올라가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타모의 뺨을 때렸다. 찰싹대는 소음과 푸드덕대는 몸짓이 꼭 바께스 속 민어 같았다. 난 니가 존나 꼴보기 싫어. 그만 하라고 했지. 안 그럼 너 죽는다고. 타모는 날 밀치기 위해 열심히도 허둥댔다. 벗어나지 못하도록 타모의 발악을 막을 무언가가 필요했다. 왼손으로 타모의 턱을 세게 움켜쥐었다. 재빨리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작업용 커터칼을 꺼내 들었다.
망설이지 않았다. 망설임은 동정의 동의어. 난. 너. 안 사랑한다고. 씨발새끼야. 난 지체 없이 칼날을 드러내 타모의 코를 찔렀다. 뾰족한 칼 끝으로 타모의 둥근 콧방울을 움푹 쑤실 때마다 절규 같은 비명이 들렸다. 민어에게서는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기어코 타모의 코를 뭉개버렸다. 타모의 피가 내 교복 위로 흠뻑 튀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참는 데엔 이골이 났다. 더는 참지 않을 것이다. 난 엄마랑 달라. 내 마음은 그렇게 넓지 않아. 난 침착하지 않아. 난 물러터진 사람이 아니야. 난 이제 참지 않아. 안 참아. 안 참는다고. 개새끼야아아악!
우리는 바다 끝에서
2
무너질 듯한 하늘을 등에 업은 채 하염없이 걸었다. 학교도 교회도 집도. 그 어느 곳도 나를 반겨줄 리 없었다. 그 어느 곳도 나의 목적지가 될 수 없었기에 정처 없이 걸었다. 잊지 않았다.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을 것이다. 구원은 없다. 나를 구원하는 건 오직 나뿐이다. 그러나 의심은 언제나 어김없이 나를 위해 잉태하는 것만 같고. 내가 나를 믿지 못해 아프기만 했던 그 많은 밤들은 의심의 증거가 되어 나를 비웃는 확신으로 출현하고. 모든 것이 위태롭고 흔들리기만 하는 이곳에서 감히 단단해지고 싶은 나는. 유약하고 단순한 주제에 모든 걸 깨부수고 싶어 하는 나는. 진보된 미래를 꿈꾸는 혁명가를 동경하지만 한계를 가늠하며 도망칠 생각만 하는 나는. 과연 나는 나를 믿을 수 있을까. 나는 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느새 빗물은 나의 눈물이 되어 우는지도 모르게 나를 적시고 있었다. 어깨 위로 끈적하게 달라붙는 교복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손등 위로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피와 땀과 눈물이 모두 섞여 따가웠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발목을 질질 끌며 걸었다. 요동치며 날아오르다 굉음 같은 소릴 토해내는 파도가 있어 다행이었다. 몸서리가 날 정도로 싫었던 바다에게 기대고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오다니. 끔찍하고 간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을 일. 저 파도에게 나의 울음이 섬멸당하길 희망했다. 엉엉 울고 싶었다. 나의 존재가 나에게만 중요하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도록 외로워서. 오직 나만이 평생 이렇게 무모하고 대책 없는 나를 이끌어야 한다는 사실이 무서워서. 모든 걸 제쳐두고 아이처럼 엉엉 울고 싶었다.
목덜미 위로 피어난 주근깨 하나마다 씻을 수 없는 죄악을 박아놓은 사람처럼 한참을 방황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짙어진 아스팔트의 회색빛 희미함을 깨달은 건 따가운 여름 햇빛을 품고 일렁이는 지면을 발견한 후였다. 나는 고개를 들고 도로변 위 듬성듬성 핀 금잔화를 바라봤다. 아주 오래. 아주 빤히. 손끝으로 꽃잎을 어루만져보다 다시 걸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스치는 바람을 따라 연약하고 부드러운 꽃잎을 헤집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 어느 곳도 나를 환영하지 않는다면. 나는 기꺼이 그 모든 곳을 환송할 것이다. 그 어느 곳도 나의 목적지가 되지 못한다면. 나는 흔쾌히 그 모든 곳을 행선지로 삼을 것이다. 만물이 위태롭고 흔들리기만 하는 이곳에서 감히 단단해지고 싶은 나는. 유약하고 단순한 주제에 모든 걸 깨부수고 싶어 하는 나는. 더는 울지 않을 것이다. 더는 참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를 믿을 것이다. 나는 나와 함께할 것이다.
금잔화의 꽃길 끝엔 낡은 버스 정류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솔곶 사람들을 위한 이동 수단은 아니었다. 버스도 끊긴 지 오래였다. 솔곶 사람들은 대부분 작업용 용달이나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솔곶의 부지에 교회가 세워지기 전. 그러니까 대충 내가 태어났을 무렵의 솔곶은 유명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오는 관광지였다. 한국 영화의 도약이 막 펼쳐질 때쯤 탄생한 한 로맨스 영화의 배경지로 입소문을 타 관광객이 늘었다. 관광객 유치는 곧 집값 상승의 기회였으므로 솔곶 사람들은 기를 쓰고 사람들의 발걸음을 모으려고 노력했다.
해물 뚝배기 한 그릇에 바가지 씌우기. 부르는 게 값인 택시 값. 성의라곤 좆박은 개노맛 솔방울 모양 빵쪼가리. 관공서의 노력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없는 유적지 쥐어짜 입장료 뻥튀기기. 흉물이라 칭해도 손색 없을 조형물. 누구 하나 떨어져도 모를 마감 처리 부실한 흔들다리까지. 문화관광미식체험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된 게 없었다. 가진 거라곤 바다와 솔숲뿐인 곳에서 그 흔한 포토 스팟 하나 안 만든 것 역시 솔곶 사람들이 유구하게 미쳐있다는 증거였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이 좆구림조차 유지될 수 있다는 건 요휘의 혜안이자 은혜라고 외친다. 모두가 정신병자임이 틀림없다.
- 저기이.
그런 곳에서. 이 낡아빠진 정류장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있는 저 사람이 외부인이라 확신하는 건 내가 아닌 지나가는 개미였대도 알아차렸을 사실이다. 이상한 건 나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다는 거였다. 저기, 한 마디에도 눈치챌 수 있었다. 말투부터 목소리. 올망거리는 눈빛과 빵긋 솟은 광대. 교복 밖으로 내려오는 하얀 팔과 다소곳이 오므린 다리까지. 죄다 나긋했다. 서울에서 왔네. 가끔은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눈빛 한 점에 누군가가 싫어질 수도 있는 법이다. 꼴같잖게 곱상 떠는 서울 촌놈. 그게 그 애의 첫인상이었다.
- 학교 어떻게 가는지 알 수 있을까요?
- ...
- 데려다 주면 더 좋구.
이어진 두 번째 인상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참 대책 없이 해맑다. 지금 내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굳이 거울로 살피지 않아도 뻔히 알 수 있었다. 피와 비로 인해 떡진 머리. 굳은 피와 상처 난 이마. 타모의 혈흔이 잔뜩 묻은 교복 셔츠. 까진 손바닥과 손등. 무릎 부근이 찢어진 교복 바지까지. 처음 마주한 사람에게 걱정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이런 몰골을 하고 걷는 사람을 보면 의아함과 걱정을 뒤섞어 건네는 게 수순 아닌가. 느자구가 존나게 없네. 난 애초부터 그 애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처럼 그대로 그 애를 지나쳤다.
- 다쳤어요?
곧장 손목이 붙잡히고 말았지만. 그 애는 덩치와 맞지 않게 깜찍하게도 발을 구르며 나를 올려다봤다. 힘 조절이라는 걸 모르는 건지. 그런 건 염두에 없는 건지. 잡힌 손목을 당겨봤지만 빠질 생각이 없었다. 사람이 좀... 눈치 없고 힘만 센 토끼 같네. 짧은 판단이 끝나기도 전에 그 애는 나를 당겨 옆에 앉혔다. 흩어지는 바람과 함께 흩날리던 머리칼 끝에서 몽글거리며 피어오르는 비누 향이 불쾌했다. 금방이라도 퐁 터지며 사라질 것만 같은 산뜻함이었다. 내 비누에서는 영영 나지 않을 향기. 질투가 났다. 뭘 안다고. 난 명명할 수 없는 감정에 잠식될 만큼 한가롭지가 못했다. 벌떡 몸을 일으켰다. 좀 전과는 달리 그 애는 내 손목을 붙잡지 않았다. 찰나에도 그 애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언제 봤다고.
- 많이 다친 것 같은데.
- 찔렀어요.
- 응?
- 다친 게 아니고. 다치게 했다고.
그 애를 홀로 남겨둔 채 집으로 향하며 그 애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 봤지만. 벗어나려 다짐할수록 골몰하게 되는 꼴이었다. 완벽한 타인을 상대로 이리도 골똘히 전념해 본 적이 있나? 머리를 굴릴수록 이상한 결과뿐이었다. 갑자기 비는 왜 멈춰. 갑자기 왜 거기 앉아있어. 하필 왜 오늘 나타나. 언제 봤다고 아는 척이야. 재수 없어. 웃는 게 햇살 같긴 해. 재수 없어. 말투에도 청사과 향기가 나. 재수 없어. 눈빛이 유리알 같던데. 재수 없어. 손끝이 소다수 같아. 맞닿으면 토도독. 찌르르. 재수 없어.....
남은 하루를 온통 이름도 모르는 그 애에게 헌납했다. 여긴 왜 왔을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좋아하는 노래는 없을까. 솔곶엔 처음 와 본 걸까. 요휘를 알까. 요휘를 믿을까. 이름은 뭘까. 속속들이 알지 못하기에 떠올릴 수 있는 물음들과 가늠할 수 있는 해답들을 정의하며 내 마음대로 그 애를 재단했다. 그 애와의 순간은 짜고 달고 뜨겁고 시원했다. 그 애는 비릿하고 산뜻하고 귀엽고 재수 없고..... 아주 잠깐 그 애를 마주쳤던 찰나가 꼭 여름의 비밀이자 요약 같았다. 무람없던 파도가 푸릇한 잔물결로 뒤바뀌는 장면이 내게 펼쳐질 것만 같았다.
오만 속에서 헤엄치던 나를 건져낸 건 코가 으스러진 타모도 아직 주머니 속에 존재하던 커터칼도 우연히 마주친 그 애도 종일 떠올리던 그 애의 싱그러운 복숭앗빛 미소도 아니었다. 원빈이 집에 있니. 아줌마였다. 내가 대문을 열어두고 들어왔었나. 기척 없이 나타난 아줌마는 우리 집의 작은 마당을 가로지르며 들어왔다. 아직 옷도 갈아입지 못한 나는 어쩔 수 없이 타모의 피가 가득 묻은 교복 차림으로 아줌마를 맞이해야 했다. 내 모습을 보고 잠시 주춤하던 아줌마의 표정은 간결했다. 타모를 다치게 한 나를 향한 원망과 분노. 꼭 그랬어야만 했냐는 듯한 허무와 절망. 그보다 더 한 것들도 함께 담겨있는 표정이었지만 별일 아닌 척해야 한다는 다짐으로 곱게 포장된 듯 의중을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다.
- 병원에 다녀왔어.
- 네.
- 수술도 잘 끝났어. 아직 어려서 회복도 빠를 거래.
- 네.
- 걱정하지 말고...
- 걱정하길 바라세요?
나는 타모를 걱정하지 않는다. 여태까지 한 번도 걱정한 적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줌마의 말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감정은 물컹한 질감으로 세상 밖에 나와 대기에 가득 찬 공기와 뒤섞이며 형체를 가져야만 안도할 수 있게 된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살았잖아. 죽지 않았잖아. 아줌마의 괜찮다는 말은 본인의 불안을 달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나를 위한 위로나 안도가 아니라.
아줌마가 어떤 마음으로 나를 찾아왔는지 헤아리고 싶지 않았다. 본인의 안도를 위한 수단으로 나를 앞에 세워둔 채 독백처럼 내게 듣고 싶은 말을 읊조리는 거라면. 난 언제까지고 병풍처럼 아줌마 앞에 서 있을 자신이 있었다. 이어폰을 귓구멍에 욱여넣어도 파도는 언제나 선율을 방해하듯 비집고 내게 들어오지만 난 재생을 멈추거나 구태여 플레이리스트를 바꾸지 않았다. 소음은 그저 소음일 뿐. 아줌마의 은밀한 요구도. 타모의 지랄도. 내겐 파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 미안하지는 않니?
- 네.
- 원빈아, 사람이라면 친구를 그렇게...
- 친구 아닌데요.
- ...
- 그리고 사람이라면. 사과는 아줌마가 먼저 하셔야죠.
- 나는...
- 저한테 아직 안 하셨잖아요. 사과.
- 그 일은... 아냐, 내가 미안하다.
- 아줌마 마음 편해지려고 하는 사과 말고요.
뭉뚱그린 사과답게 급급함이 잔뜩 묻어나온 어투였다. 아줌마의 어절 하나마다 물음표를 매달고 싶었다. 왜 이제 와서 사과를 하지? 왜 내가 기다렸다는 듯 내뱉는 사과를 받아야 하지? 왜 내가 그들을 용서해야 하지? 용서를 구하면서 왜 내가 미안해하기를 바라지? 사과와 용서가 동의일 수 있나? 용서라는 게 뭐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거? 없던 일로 치부하고 살아가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넌지시 꺼내며 회포로 푸는 거? 아님 그냥 요휘의 뜻이자 선택이었다고 인정하는 거?
모두 틀렸다. 용서라는 건 없다. 적어도 내게는. 게다가 아줌마는 진실로 내게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아줌마가 내게 진실로 미안했다면. 언젠가 아줌마가 스치듯 내게 말했던 표현처럼 정말로 그렇게 될 줄 몰랐었다면.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일렁이는 후회로 속죄했다면. 아줌마는 나에게 진작 찾아왔어야 했다. 아니, 적어도 타모를 망가뜨려 버린 오늘 내게 찾아오지 말아야 했다.
그 대단하신 요휘는 결국 아줌마의 쓸모와 요새와 방패가 되어 아줌마의 환난을 막아주었다. 요휘의 같잖은 아량 덕분에 아줌마의 선택은 그럴 수도 있는 일에서 그럴만한 일로 무마되었다. 이 땅 위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시간의 힘을 받아 왜곡된다. 아마 아줌마가 저지른 일도 몇 번의 계절을 지나고 나면 그깟 일로 여겨질 터였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그럼 나는. 죽지 않고 아직도 이 땅에 굳건히 발 딛고 살아있는 나는. 열과 성을 다해 빌었던 나의 기도는. 나의 존재 의미는 곧 요휘라 다짐했던 나의 믿음은. 나의 간구가 이따위 좆 같은 대답으로 내려져서는 안 됐다. 내가 바라던 영광과 환락과 빛의 바다가 이렇게 참혹해서는 안 됐다. 솔곶이 품고있는 모든 일들이 결국 마모된다고 한들 내 기도만큼은 영민하고 뾰족하게 이 땅 위에 박혀있어야 했다. 요휘에게 묻고 싶었다.
나와 우리가 바라고 기도하고 열망하고 속죄하고 회개하는 모든 염원은 어디서부터 기생해 어디로 당도합니까? 당신의 대답을 듣기 위해 혹은 당신이 내려주는 자격을 받기 위해 나와 우리는 이 땅에 올라와 심판받게 된 것입니까? 꿈틀대다 잉태하는 나와 우리 안의 모든 믿음은 어째서 심판받아야 하는 겁니까? 나와 우리는 결국 당신으로부터 소멸당할 존재입니까? 당신이 일컫는 우리의 모든 죄악은 죄악이 맞긴 합니까? 당신이 내리는 얄궂은 업고는 아닙니까? 당신이 사하여 준다는 우리 안의 교만과 구하여 준다는 우리의 환난에 대한 응답이 실존하긴 합니까? 어째서 당신의 응답은 이리도 간사합니까? 어째서 나의 위약은 당신의 생명이 됩니까? 당신은 존재합니까?
난 요휘에게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한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대답이 내려질 리 없었다. 아줌마가 다녀간 뒤 가소롭게 등장한 손톱달이 나를 관망하는 밤이 찾아왔지만 단 일 분도 잠들지 못했다. 분별없이 휘저어지는 마음이 무엇으로 인해 흔들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건 마치 형체 없는 끔찍함으로 나타나 나를 잠식할 예고처럼 느껴졌다. 어째서인지 이전에도 겪어본 것만 같고. 앞으로의 생을 통과하며 무수히 감내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끔찍함이었다.
이정표 따위 없는 궤적을 홀로 떠돌며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당장 어디로 이탈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무엇이라도 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대충 벗어놓은 교복을 다시금 쥐어 손바닥 두 뺨 정도의 넓이를 가진 대야에 욱여넣었다. 대야 안을 가득 채웠던 물이 넘치고 교복에 배어있던 타모의 피가 울렁이며 대야를 선홍빛으로 물들였다. 대야 앞에 쪼그리고 앉아 선득하게 얄랑이는 수면 위를 바라봤다. 다리가 저려올 때쯤 주저앉았다. 손가락 끝마디가 쭈글거릴 때까지 손빨래를 했다. 교복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새것처럼 깨끗해졌다. 셔츠 끝을 꾹 쥔 채 비틀어 물기를 짰다. 바닥 위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욕실을 울렸다.
열대야의 습기를 잔뜩 먹어 미적지근한 온기가 느껴지는 장판 위로 교복을 펼쳐뒀다. 나는 다시 욕실로 들어와 세 번의 샤워를 했다. 비누 거품이 내 몸을 잔뜩 휘감고 씻겨나가길 반복하는 동안 교복은 꿉꿉하게 말라 있었다. 버석함이 느껴질 만큼 바짝 마른 뽀송함은 아니었지만 입는 데엔 무리가 없었다. 난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우고 오랜만에 교복 넥타이까지 맸다. 한 뼘 긴 기장으로 사 뒀던 여분의 하의도 꺼내 입었다. 거울 앞에 비친 모습은 이제 막 새로운 시작에 설레하던 1년 전의 내 모습 같았다.
난 깔끔해진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방파제로 가기 위해서였다. 지척이 어둠으로 뒤덮인 것만 같은 새벽이었지만 드문드문 푸른빛도 어슴푸레 깃들어 있었다. 이제 곧 갓밝이가 솔곶을 찾아올 것이다. 난 어제의 낮처럼 오늘의 새벽 속 솔곶을 열심히 헤집었다. 속눈썹 한 올마다 무거운 추가 달린 듯 눈꺼풀의 움직임이 느렸다. 희망찬 시작을 알리던 1년 전의 걸음과는 달리 온몸이 액체로 바뀐 것처럼 흐물흐물한 발걸음이었다. 곧장 다시 집으로 돌아가 쓰러지듯 누워 잠들고 싶었지만 잠들 수 없었다. 아마 잠들었다면 언제나처럼 나를 괴롭히는 악몽으로 인해 머지않아 깨어났을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턴 늘 같은 꿈을 꿨다. 새벽을 맞이하며 아저씨를 돕기 시작한 것도 꿈 때문이었다. 굼뜨고 느리더라도 몸을 움직이면 잡념을 피할 수 있었다. 꿈속에서 바다는 끝없이 부서졌다. 파도는 검은 벽처럼 일어나 모든 빛을 잠식하며 다시 무너지고 일어나길 반복했다. 그 속에서 엄마의 두 팔은 파도와 허공을 차례로 가르며 뻗쳐 나왔다. 엄마를 향해 달려가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허우적대는 엄마를 바라보는 일뿐이었다. 엄마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게 계속해서 무어라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리곤 저 깊은 아래로 빨려가듯 사라졌다. 꿈에서 깨고 난 후엔 대체 엄마가 내게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늘 골몰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비슷한 단어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어둠을 뚫고 어김없이 떠오르는 태양의 환희가 솔곶을 뒤덮었다. 누군가 이런 나의 혼란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한 스푼과 아무도 이런 나의 존재를 모르길 바라는 마음 한 스푼이 뒤섞였다. 내 나약함에 동조하듯 넘실대는 파도가 얄미웠다. 나는 죽을 것처럼 휘몰아치는 마음에 기어코 미움을 더하고. 그 어떤 것도 버리지 못하며. 그 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한 채 이 새벽의 희미함과 함께 슬어만 가는데. 어째서 바다는 나를 그저 관망하고만 있는가. 어째서 엄마에게는 한 점의 숨도 허락하지 않았으며. 어째서 나에게는 이토록 버거운 호흡만 강요하는가.
모든 게 우울이고 모든 게 싫증이었다. 난 내 처지를 과시하듯 일부러 불안하게 방파제 위에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누군가 뒤에서 날 콱 밀어버린다면 영문도 모른 채 죽게 되겠지. 이따위 한심한 로망이 나를 사로잡을 때마다 방파제를 찾았다.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일어나고 무너지길 반복하는 파도를 나 또한 관망했다. 바다와 눈싸움을 할 때마다 지는 쪽은 늘 나였지만. 몇 시간이고 씨름하고 나면 그 끝엔 늘 반발심이 들었다. 그 반발심과 방파제의 의무가 나를 살린 것이다. 내가 지금 당장 죽게 된대도 바다에서는 안 죽어. 죽고 싶어 찾아간 곳에서 죽지 않을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니. 삶이란 황폐한 여름 같아서 도무지 새싹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불모지만 걷게 하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나부끼는 바람 한 점에 무수히 많은 꽃비를 내려주는구나.
당연히도 타모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교실엔 타모의 자리 외에도 군데군데 비어있는 자리들이 있었다. 방학식이란 게 으레 그렇듯 진부하고 따분한 훈화에 치우쳐져 있었기에 성미 급한 아이들은 혼자만의 방학을 미리 맞이한 것이다. 난 텅 비어있던 교실이 분주히 소란스러워지다 다시 이따금 고요해질 때까지 혼자 남아있었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잠시 동안 바라보다 몇 번이나 한숨을 되뇌더니 교장실로 내려가 보라고 했다.
어제 일에 대한 어떠한 처벌이 내려질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난 그 처분이 다행이라는 안념으로보다 나에 대한 굴뚝같은 무시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마가 찢어지도록 자해를 했다. 게다가 타모의 코를 완전히 뭉개버렸다. 이건 결코 관용의 표현이 아니었다. 습관처럼 자주 일어나는 일도. 내가 타모를. 타모가 나를 용서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어떻게. 무슨 이유와 자격으로 모두가 나를 관용한단 말인가.
교장 역시 별다른 말이 없었다. 미미하게 자라나는 화초에는 무성한 관심만이 거름이라 믿는 듯 촉촉하게 젖은 행주로 이미 번지르르한 잎을 계속해서 닦아낼 뿐이었다. 난 그 행동이 끝날 때까지 굳게 닫힌 문 앞에서 하염없이 서 있어야 했다. 숨 쉬는지도 모르게 가만히 있는 것. 그게 내게 내린 유일한 처벌이라는 듯 한참을 기다리게만 했다. 분침 소리가 열두 번의 움직임을 끝내고 나서야 짐짓 나긋한 목소리로 내게 시선도 두지 않은 채 읊조렸다.
- 기도하렴. 회개하렴.
지랄. 나 역시 읊조렸던가. 비겁하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만 되뇌었던가. 뭐가 됐든 교장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교장은 꿋꿋하고 꼿꼿하게 여전히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옷깃을 다듬으며 나가보라는 듯 턱짓으로 문을 가리키는 게 다였다. 난 그 태도에 화가 날 것만 같아 인사도 없이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문고리를 잡아 돌리는데 내가 쓴 적 없는 힘으로 먼저 문이 열렸다. 그 애였다.
활짝 열린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애와 시선이 얽혔다. 그 애는 나보다 더 놀란 건지 가뜩이나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 애를 지나치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그 복숭앗빛 미소를 띠는 바람에 발이 묶여버렸다. 어제보다 더 영글어 교장의 화초처럼 생기있고 반짝이는 미소였다.
교장은 고대하던 귀빈을 모시는 것처럼 그 애를 맞이했다. 덕분에 그 애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나보다 한 살 많구나. 이름이 참 싱그럽다. 뭐라도 하나 더 얻고 싶어 동냥하는 사람처럼 멍청히 서 있는 나를 깨운 건 그 애를 향한 교장의 한 마디였다. 앉아요. 난 먹먹한 불편함을 지닌 채 문밖으로 나서려 했다. 교장은 그런 나를 비웃듯 내 이름을 부르더니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아, 맞다.
- 타모 부모님께서 원빈이 널 용서하셨어. 어떤 처벌도 원하지 않으신다더구나. 그러니 요휘께 가서 그분들의 몫까지 기도하렴. 타모와 너의 몫을 회개하렴.
내 기다림은 그렇게 그 애 앞에서 가치 없는 전리품으로 취급당했고. 난 면박도 처벌이 될 수 있다는 걸 절절히 알게 되었다. 씨발놈.
3
내 느린 걸음으로는 학교에서부터 교회까지 대략 30분 정도가 걸렸다. 교회는 경매장 뒷산 중턱에 홀로 자리하고 있었다. 하늘 높게 솟아있는 첨탑과 입구 쪽 창문에만 붙여놓은 스테인드글라스는 교과서에서 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엉성했지만 못 봐줄 만큼 끔찍한 정도는 아니었다. 솔곶엔 미학에 조예가 깊다거나 하물며 관심을 두는 사람도 없었으니 다들 그 하찮고 낯선 웅장함에 조아릴 뿐이었다. 나 역시 엄마가 살아있을 때만 해도 교회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에 흠뻑 빠져 뒷산을 놀이터 삼아 헤집고 다녔었다.
엄마의 장례가 끝난 뒤에도 난 추모 기도를 명목으로 교회에 살다시피 했다. 그러다 문득 느껴지는 두통을 달래기 위해 잠시 기도를 멈추고 교회를 나섰던 날. 그때 내 눈 앞에 펼쳐진 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솔곶의 풍경이었다. 눈이 시리도록 서슬파란 뺑끼가 빼곡히 칠해진 함석 지붕들이 꼭 일렁이는 파도 같아서. 엄마를 삼켰던 파도처럼 나를 잡아먹을 것만 같아서. 난 곧장 교회 뒤편으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 여전히 나를 등지고 펼쳐져 있을 그 이질적인 풍경에 진절머리가 났다.
난 곧장 기도실로 들어가 창문부터 활짝 열었다. 근래에는 사용한 적이 드물어 케케묵은 공기가 쌓여있었다. 이 기도실은 목사가 내게만 내려준 특권이었다. 기도실이라 명명하기엔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쪽방에 불과했지만. 내가 이 공간을 부여받았을 때 얼마나 감격했는지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나는 방석도 깔지 않고 맨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검은 호두나무로 조각된 작은 십자가를 바라보며 특권과 속박에 대해 떠올렸다. 고뇌한다 한들 어차피 내게는 더 나은 것을 구분할 쓸모가 없었다. 대신 쓸모 있는 일에 힘을 쏟기로 했다. 주머니 속 부적처럼 챙기는 커터칼을 꺼내 들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열어둔 창문을 통해 흘러 나갔다. 내 손과 바지엔 검은 호두나무의 부스러기들이 잔뜩 묻어있었다. 본래의 형체를 추측할 수 없을 만큼 처참히 부서진 십자가 조각들을 한 움큼 쥐어 창밖으로 내던졌다. 소리도 없이 흩어지는 것들을 바라봤다. 특권과 속박이 유의어라면. 그 둘의 완벽한 반의어는 필히 무용이겠지. 쓸모를 없애고 더럽게 반짝이는 가치를 타락시키는 일.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
빈람(殯濫)은 1929년 청람포(靑濫浦)에서 태어난 여성 반요휘(叛曜輝)로부터 창립됐다. 그녀는 17세의 나이에 혼인했으며 아들을 한 명 낳았다. 그 아들이 병에 걸려 기도하던 중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땅과 하늘과 바다의 조각들이 뒤엉켜 오른쪽 안구에 박힌 탓에 자신의 목이 똑 떼어지고 피를 내뿜으며 데굴데굴 굴러 바다에 쏙 빠지는 과정은 고통 따위 느낄 새도 없이 흘러갔다 전해진다. 이후 바다의 모든 빛을 품고 나니 신의 목이 그녀의 목으로 바뀌어 사람들의 욕망이 환난으로 불신이 파멸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자애로운 신으로 다시 태어난 그녀는 그녀의 이름으로 가여운 인간들을 구원하고자 하였으니. 그게 바로 요휘의 시작이었다.
역겹고 혐오스러운 이 신화가 뿌리내린 채 몸집을 키울 수 있었던 건 실제로 그녀의 목에 수평으로 진하게 남은 상처 자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국은 꼭 교살의 흔적 같기도 신의 성호 같기도 했다. 정신 나간 여자가 동네 분위기 다 망친다며 불신의 뜻을 내보이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목을 뒤로 한껏 꺾어 증명해 보였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그녀의 말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기에 그간 그녀를 따르게 된 소수의 신도들과 함께 흑담리(黑覃里)로 거처를 옮겼다. 흑담리는 고운 모래 대신 검은 자갈이 자질구레하게 깔려있어 매일 검은 파도가 밀려오는 곳이었다. 그녀는 자신만이 흑담리의 어둠을 빛으로 바꿀 수 있다며 전파했다. 공교롭게도 불행한 기적처럼 그 전파가 흑담리 사람들이 가진 열망의 주파수와 맞아떨어졌다.
그 기적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건 한국 전쟁 발발 시점과 맞물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짐작한다. 생의 고립과 사의 남발 속에서 부여잡을 지푸라기가 필요했을 사람들에게 그녀는 흔쾌히 볏짚을 엮어 내던진 것이다. 때마침 피난민들이 남단으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전시전후의 시대 속에서 그녀의 이름은 더 빛날 수밖에 없었다. 젊은 영혼들이 자발적으로 요휘를 외치며 몰려들었다. 흑담리와 요휘는 그들의 피난처이자 요새가 되어 하나의 섬을 구축했다. 그녀가 흑담리로 이주한 지 채 10년이 되지 않아서였다.
분단 이후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다 오른쪽 눈을 잃고 온 그녀의 아들이자 2대 교주인 정담헌의 멸공 정신은 요휘의 근간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끼워 맞춘 억지 서사와 우연찮게 맞물린 운빨로 몸집을 키워가던 빈람이 군사정권의 몰락과 함께 빛을 잃어가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신도들에 대한 갈취와 핍박의 증거가 무수히 쏟아졌으나 대를 거쳐온 믿음과 신념이 얄팍한 종이 쪼가리들에 의해 무너질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빈람의 공헌이 흑담리를 성장하게 했단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포교를 목적으로 둔 봉사가 그들을 수년간 배곯지 않게 했으니 응당 인간이라면 빈람의 몰락을 모른 척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점점 희미해져 가는 빈람에게 새로운 빛의 고장으로 솔곶을 가리킨 건. 그러니까 그건. 우리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정담헌과 참전 중에 만났다고 했다. 참전 시절 포탄 소리보다 그의 기도 소리에 더 큰 울림을 받았으며 덕분에 요휘의 보은 아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는 말을 죽기 직전까지 되뇌었다. 허망하게도 할아버지는 신도들에게 맞아 죽었다. 뼈가 쩍쩍 갈라지고 피를 철철 뿜어내면서도 웃고 있었다고 한다. 드디어 내가 요휘님의 구원을 받는구나. 그 중얼거림이 너무나도 조악해 할아버지의 죽음을 보며 혼절한 신도들도 몇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그 웃음은 할아버지의 장례 중에도 빛나는 요휘의 반짝이는 간증 사례로 쓰였다. 할아버지는 죽음으로 신도들의 부러움을 샀다. 다들 할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호상의 은혜가 찾아왔다며 엄마에게 위로를 가장한 훈수를 뒀다. 과연 호상인가?
그때 엄마는 나를 임신 중이었고 불행히도 다행히도 산달이었다. 솔곶에서 가장 예쁘고 착한 아이였던 엄마는 솔곶에서 가장 예쁘고 착한 여자로 자라났다. 엄마가 두터운 믿음으로 요휘를 숭앙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는 평생 내게 요휘에 대한 믿음을 강요한 적 없었다. 영광이라던가 구원이라던가 기도라던가 회개라는 말을 꺼낸 적도 없었다. 엄마가 인내를 습관으로 가질 수 있었던 건 할아버지가 그렇게 키운 탓이 컸을 것이다.
엄마는 결혼조차 할아버지가 정해준 사람과 했다. 어디서 짠하고 나타난 부유하고 천박한 남자. 뻔하게도 그는 빈람의 광렬한 신도였으며 현재의 교회 역시 그의 돈으로 세운 거였다. 할아버지는 어떻게서든 그를 하나뿐인 여식의 구원으로 삼고 싶어 했을 것이고. 그는 솔곶에서 가장 예쁘고 착한 엄마가 만만한 구원이라 여겼을 것이다. 다만 부유하고 천박한 남자의 습관은 짙은 호색이기에 결혼 반년 만에 나를 품게 된 엄마를 떠났다는 뻔한 얘기. 구원이 이렇게나 속물적이어도 되나. 계약적 구원의 폐해가 한 사람의 우주를 절멸시키는 일이라면. 그 역시 구원이 파멸되어야 할 마땅한 이유다.
빈람의 뿌리를 솔곶으로 옮긴 것도 모자라 계약적 구원을 성사시키고 개죽음으로 천국에 도달한 할아버지는 졸렬하게도 죽기 전 미리 내 이름까지 빈람으로부터 부여받았다. 으뜸 원. 빛날 빈. 솔곶에서 가장 빛날 아이.
元彬
서해안 끝자락에 위치한 솔곶은 흑담리와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신도들에게도 정담헌에게도 이주 부담성이 적었다. 새로운 터에 자리 잡은 빈람은 더 이상 몸집을 불리는 일에 몰두하지 않았다. 그 당시 솔곶 역시 지금과 별반 다를 것 없었다. 바다 한 켠과 기원의 의중을 모르겠는 소나무 숲이 전부였다. 다른 건 솔곶의 사람들뿐이었는데 애석하게도 모두가 비등비등하게 가난했다. 아마 정담헌은 솔곶 땅을 밟는 순간부터 알았을 것이다. 빼먹을 간도 없는 벼룩들만이 들끓는 곳이구나.
대신 솔곶 사람들에겐 흑담리에선 보지 못 한 비등비등한 의지가 있었다. 의지는 욕망과 맞닿아 있기에 대체로 허술했다. 억만장자 실현에 대한 막연한 의지라거나 서울을 도착지로 둔 입신양명의 의지라거나 근심 없이 깨끗한 폭소한 이루어진 하루에 대한 의지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저마다의 각양각색 의지였으나 몹시나 허술하고 물렁한 비등비등한 농도였다. 촘촘하지 못 한 욕망을 끌어안고 살아가느라 벅차하던 사람들은 정담헌의 좋은 먹잇감이 되어 그를 배불렸다.
모든 사기꾼이 그러하듯 유려한 언변을 자랑하던 그는 솔곶 사람들의 비등비등한 의지를 뛰어난 노동력으로 탈바꿈시켰다. 형제님의 빛나는 땀에 요휘는 감격하실 겁니다. 요휘께서 이르시되 이 땅에 불온한 어둠이 덮쳤을 때 빛으로 되바꾼 자 누구인가. 내가 요휘의 빛을 선포하자 하늘이 요휘의 지혜를 노래하고 바다가 요휘의 빛을 이처럼 사랑하게 되었느니. 이는 나를 믿는 자마다 새로이 창조의 기적을 보게 될 것이며 만물이 다 나로 말미암아 평화를 얻게 하심이라.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기도한 자 구원에 이를지어다.
대체 구원이란 게 뭐길래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실체 없는 것을 붙잡고 살아갔는지. 삶과 죄를 무자비하게 휘저어 그럴듯하게 차려낸 구속을 구원이라 먹으며 살아가는지. 나는 여전히 알 도리가 없다. 어느 날은 허무맹랑한 소리에 감격하는 모두가 정신병자 같았으며. 어느 날은 보이지 않기에 새기고 싶은 마음이 내 두 손을 모으게도 했으며. 또 어느 날은 관용의 마음이 속절없이 들끓었다. 간절해서 그랬겠지·····. 오죽하면 그랬겠어·····.
눈앞에 보이는 모든 십자가들을 죄다 도륙 내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다. 낮은 책상 위로 잠깐 뺨을 기댔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엄마는 평소와 달리 허우적대지 않았다. 나는 청사과 향이 잔뜩 풍기는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운 채였다. 엄마는 부드러운 나뭇잎 같은 손으로 내 머리칼을 넘겨주고 쓸어주며 토닥였다. 깨고 싶지 않은 꿈. 혹은 백일몽. 혹은 신기루. 꿈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살풋 잠에서 깨버렸지만 내 머리칼을 사뿐히 헤집는 손길만은 여전했다.
- 잘 잤어?
- ...
- 더 잘래?
한 스쿱의 아이스크림만큼 부드러운 목소리. 흔들리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 애는 자꾸만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자꾸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해맑게 웃고 다녔다. 꼭 내 앞에서. 그 애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워있었던 것도 모자라 한참이나 잠들어 있었단 시간이 믿기지 않았다. 그 포근한 청사과 향 역시 그 애의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거였다는 사실이 괘씸했다. 두 눈을 몇 번이나 더 깜빡여 봐도 여전히 그 애 무릎 위였다. 그 애 손도 여전히 내 머리 위에 있었다. 가벼운 리듬을 타는 듯 손끝으로 내 머리칼을 토독토독. 그럼 난 속절없이 그 애 손길이 닿는 곳마다 타닥타닥. 머리칼을 타고서 심장 부근으로 전해지는 따끔함을 참아야 했다. 어쩐지 지는 것만 같은 마음에 나도 그 애 손등을 토독토독 두드렸다. 일부러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그 애 쪽으로 몸을 돌려 누운 건. 톡 건드리면 퐁 터질 것 같은 민트빛 비눗방울 같은 마음을 괴롭히고 싶어서가 아니라.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어서. 진짜루.
- 왜 반말해?
- 친해지고 싶어서. 원빈이 너랑.
- 난 싫은데.
- 왜?
- 너 다 티 나.
말해준 적 없는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것부터. 동냥하듯 그 애 이름을 훔쳐 듣고 되새긴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대도.
- 쉬운 거 싫어?
- 아니.
- 그럼?
- 니가 싫어.
뭘 안다고 무턱대고 다가오는 네가 싫어. 고작 한 번의 마주침으로 내 달 뜬 밤을 헌납하게 만든 네가 싫어.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거라 장담했던 내 다짐을 기대로 바꾸려는 네가 싫어. 질깃하게 다정할 것 같은 네가 싫어. 시들지 않을 것 같은 네 웃음이 싫어. 그 웃음에 담긴 여유가 싫어. 네 다정의 한계를 가늠하게 될 내가 싫어. 너로 인해 내가 나를 싫어하게 될 것 같아서 싫어. 네가 싫어. 그냥 싫어. 그리고.
- 니네 아빠가 안 가르쳐줬어? 동성애 죄악이라구.
- 나 죄짓는 거 좋아해.
- 회개할 게 많나 봐?
- 그랬다면 별로야?
내 예상의 한 치 앞도 벗어나지 않는 네가 좋아. 고작 두 번의 마주침으로 내 낮까지 점령한 네가 좋아. 무턱대고 믿고 싶게 만드는 네가 좋아. 내 범주에 뻔하게 들어맞는 네가 좋아. 싫다는 말에도 단단하게 바라보는 네가 좋아. 속도 없이 해맑게 내어 보이는 웃음이 좋아. 그 웃음에 담긴 네 비누향기가 좋아. 자꾸만 짠하고 마법처럼 나타나는 네가 좋아. 능청스레 구는 네가 좋아. 예상할 수 없어서 좋아. 뻔하지 않아서 좋아. 네가 좋아. 그냥 좋아. 그런데.
- 니네 할머니는 좋아하겠지. 꼭 목 돌아간 니네 할머니한테 구원 받아.
- 나 구원 같은 거 안 믿어.
- 그래두 싫어.
- 왜?
- 니네 아빠 아들이라서.
그 애가 알려주지도 않은 내 이름을 이미 알고 있는 이유. 내가 가차 없이 짓밟힌 교장실을 그 애는 귀빈처럼 드나들 수 있는 이유.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내 기도실에 들어올 수 있는 이유. 내가 그 애를 마음껏 가늠하기도 전에 싫어해야 할 이유. 그 모든 이유는 딱 하나뿐일 수밖에 없었다.
목사에게 내 또래 아들이 있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직접 말해준 적은 없지만 입 싼 전도사가 하도 떠들어대는 탓에 모를 수 없었다. 누가 보면 지 아들인 줄 알겠어. 저 새끼는 바다에 빠져도 입만 둥둥 뜰 거야. 요휘는 못미덥지만 요휘가 차려주는 주일 점심 특식은 꼬박꼬박 대접받는 할머니들의 불평은 덤이었다. 아유, 아들이 좀 모자라대. 어엉. 그러니까 그르케 꽁꽁 숨겨놓지. 아냐. 서울에서 공부하다 유학 갔대. 난중에 솔곶 돌아와서 교회 물려받는다던디? 아냐아냐. 배 다른 새끼래. 떼잉 쯧. 설마 목사가 새끼를 쳤으려구? 그러고도 남지. 어엉. 그러고도 남아.
의심은 언제나 불안으로부터 기인한다. 불안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아마 물음표의 모양이겠지. 구할 수 없는 대답과 질문이 물음표의 모양으로 나를 쫓아다닌다. 그 둥근 갈고리는 내가 의심에 몰두할수록 점점 뾰족해져 나를 갉아먹는다. 만약 내 의심이 나를 향하지 않는다면 그건 필히 타인의 신체 어딘가에 꽂혀있기 때문일 거다. 할머니들의 의심은 빈람의 보전으로부터 기인했다. 목사님은 왜 결혼을 안 하셔요. 얼른 좋은 신부 만나서 아들 낳구 교회 물려주셔야지. 그래야 우리도 살지. 망할 노친네들. 우리 엄마 죽었을 땐 거들떠도 안 보더니. 존나게 영생 하고 싶나보다.
목사는 10년 전 서울에서 온 여자와 결혼했다. 아무래도 할머니들을 비롯한 신도들의 의심이 목사의 목에 꽂혔음이 분명했다. 그게 목사의 초혼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어린 내 기억 속에도 선명히 남아있는 걸 보면 그 화려함의 충격이 꽤 컸던 것 같다. 내가 그 결혼식을 기억 하고 있는 건 행사의 규모 탓도 있지만 목사의 신부 때문이 더 크다. 신부는 꽤나 어렸고 아주 반짝이고 큰 눈을 가지고 있었다. 상상 속 공주님의 모습과도 얼추 비슷했다. 내 세상 속 제일 예쁜 사람은 우리 엄마였는데. 엄마의 자리를 위협할 만큼 예쁘긴 했다. 행진 전 나와 눈이 마주친 여자는 나를 보며 살풋 웃어줬는데 그 웃음이 꼭 탐스럽게 익은 복숭아 같았다.
축복에도 질량이 존재한다면 목사와 신부의 축복은 그날 다 소진됐을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여자의 죽음이 자살로 종결되는 게 말이 되나. 목사의 신부는 결혼 5년 만에 죽었다. 복부에 바위 같은 돌을 꽁꽁 싸매고 스스로 바다에 빠져 죽었다. 그 모습을 목격한 솔곶 사람들 모두 참고인 조사를 받아야 했다. 진술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회개하러 가시는 줄 알았어요. 미리 입을 맞춘 듯 똑같은 레퍼토리의 진술을 처음 뱉은 건 목사였다.
여자의 시신은 부양에만 일주일이 걸렸다. 그 누구도 여자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 요휘의 뜻을 받아 빈람에게 축복을 내려주기 위해 떠나신 겁니다. 말은 존나 잘했다. 자기 부인의 죽음을 겪고서도 멀쩡히 살아가는 목사가 있었기에 솔곶 사람들은 여자의 죽음에 슬퍼할 수 없었다. 아마 슬퍼할 생각도 없었겠지만. 슬픔이 슬픔으로 발현되기도 전에 사탕 발린 소리에 넘어가 여자를 대단한 성녀라며 칭송했다. 시신 복부에 꽁꽁 묶인 바위 위로 새겨진 글자는 그 죽음을 의문이 아닌 구원으로 탈바꿈시키는 데에 일조했다. 도무지 어떻게 새긴 건지 모를 그 글자는 꾸불꾸불한 한자의 형태였다.
成燦
이룰 성. 빛날 찬. 끝내 빛을 이루실 거예요. 사람들은 유행처럼 그 말을 되뇌었다. 교회에서 마주칠 때마다. 새파란 봉투 입구를 고이 접은 헌금을 헌납할 때마다. 기도가 끝날 때마다. 평생 빛 한 점 보지 못 한 정신병자들의 합창처럼 그 한 문장이 솔곶 곳곳을 울려댔다. 겨우 열세 살.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나 역시 입술이 닳도록 그 문장을 뱉었었다. 끝내빛을이루실거예요끝내빛을이루실거예요끝내빛을이루실거예요끝내빛을이루실거예요엄마도끝내빛을이룰거야할아버지가그랬던것처럼끝내빛을이루실거예요나도끝내빛을이뤘으면좋겠어제일눈부시도록모두끝내빛을이루실거예요끝내찬란히빛을이루실거예요
그러니 내가 교장실에서 그 애의 이름을 듣자마자 무력한 분노를 겪었던 건. 산뜻한 패배감을 안을 수 있었던 건. 너는 곧 내가 무너뜨리고 싶은 곳의 주인이 되겠구나. 단박에 알 수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 나랑 친해지고 싶으면.
- 응.
- 다시 태어나.
나는 곧장 고개를 숙여 그 애의 허벅지 위로 흠뻑 얼굴을 파묻었다. 아직 내 머리칼 위에서 노닐고 있던 그 애의 손가락 한 마디 한 마디를 엉켜 잡았다. 꾹 눌렀다 손등을 살살 쓰다듬기도 했다. 목석처럼 굳은 그 애 탓에 참으려고 해 봤지만 숨기지 못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여전히 그 애의 고간에 얼굴을 묻은 채였다.
- 그리구.
뺨 위로 불룩해진 양감이 느껴졌다. 어쩌자고 이래. 어쩜 이렇게 뻔해. 왜 다들 나만 보면 세우고 지랄이야. 좀 참신한 지랄은 없나. 피식 흘러나오는 실소를 모조리 내보내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그 애의 교복 버클 위로 입술을 맞대며 올라온 건. 톡 건드리면 툭 튀어나올 것 같은 검붉은 욕망에 호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괴롭히고 싶어서. 알려주고 싶어서. 넌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된다고.
- 난 너랑 죄지을 생각 없어.
4
빈람은 창설부터 현재까지 외부인에게 믿음을 권유한 적 없었으나 그 자유성이 전도에 대한 신도들의 인정욕구를 부추겼다. 있는 친척부터 없는 지인까지 모두 끌어모아 형성된 지금의 빈람은 모두가 아는 사이였다. 아저씨처럼 솔곶에 거주하지만 빈람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특히 아이가 있는 신도들은 측은할 만큼 빈람에 매달리곤 했다. 그건 요휘가 살아생전 남긴 말 때문이었다.
어둠은내가펼친장막이요빛조차내속에서태어나니내가너희위에드리운바다이니라많은물결은흘러가되내가택한파도는앞서흘러가리라너희는그뒤를따르며땅을밟지않고도나의길위에있을지어다나는내이름을한사람에게새기고수많은자는그를향해걷게하리라그게나의질서요나의은총이니라바다에던져진이름중오직하나만이떠오르고나머지는가라앉으리라나를선택하지않은자를기억하지않으며기억되지않는것은존재하지않는것이니라의심하는입술은바닷물에닫히고머뭇거리는눈은파도에묻히리라내가앞세운파도를따르지않는발은깊은곳의모래속에서잠들게하리라몸이부서져도이름은지워지지않을것이니떠오를자는하나요가라앉을자는셀수없을지어다이질서가곧영광이니라빛을이룰자누구인가나의영광을이을자누구인가
정화봉헌 또한 빈람의 강요가 존재했던 적은 없었으나 솔곶의 부모들은 다들 마땅히 보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 역시 할아버지의 강요로 참여해야 했다. 정신 나간 노친네 유언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때같은 자식까지 정신병 소굴에 들이미는 건지. 도무지 이해하고 싶은 아량이 생길 틈도 없었다. 정화봉헌은 빛의 아이를 선정하기 위한 일종의 시험 같은 행사였다. 봉헌이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가려진 이 행사의 일정은 죄다 노동뿐이었다. 해가 뜨는 동시에 빈람이 소유한 광어 양식장으로 출근해 해가 질 때까지 작업을 했다.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하면 한 명씩 바다로 들어갔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흠뻑 젖도록 바다 안에 들어가 뜬 눈으로 1분간 바닷속을 헤집어야 했다. 일명 정화라고 일컫는 이 입수는 우리를 지키고 있는 요휘를 대신해 깨끗한 영혼을 가진 어린아이들이 바닷속 더러운 악령의 존재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눈을 뜰 수도 없었을뿐더러 뜬다고 한들 뭐가 보일 리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맞춘 듯한 똑같은 레퍼토리의 대답을 내놓았다. 악령이 있었어요. 저한테 막 다가왔는데 갑자기 빛이 보였어요. 요휘님이 저를 안아주셨어요.
나는 올해로 10년째 정화봉헌에 참여하는 성실한 청소년 신도였다. 보통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이 되면 내 또래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불참 의사를 밝히곤 했다. 작년만 해도 고등학생 신도는 나와 타모를 포함한 고작 다섯 명이 전부였다. 불참 의견에 대한 물리적 보복이 행해진 적은 없었지만. 자식의 불참으로 인해 은연중 팽배해진 교리의 무시와 멸시를 견디지 못한 가정은 무릎이 닳도록 빌거나 회개를 목적으로 요휘에게 자신의 안구 한 쪽을 내어주기도 했다. 요휘님께서 우리를 살피기 위해선 많은 눈이 필요하시잖아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그렇게 부모 중 한 사람이 불구가 된 가정이 무수히 넘쳤다.
나 역시 이번 정화봉헌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신체 어딘가를 내어주고 평생을 환상통 속에서 살아갈지도 몰랐다.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두려웠지만. 내가 제일 두려운 것은. 미역을 대롱대롱 달고 올라온 머리카락으로 소금기에 이따금 절여져 부어오른 눈으로 움푹 스며든 한기 탓에 퍼렇게 질린 입술로 절망 같은 믿음을 진리라 내뱉는 아이들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모습엔 어린 내 모습도 깃들어 있을 테니까. 그 모습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또다시 이 지옥을 겪기 위해 홀로 걸어들어온 건. 발악하기 위해서였다. 벗어나지 못할 바에야 발악하지 않는 편이 나으니까. 벗어나기 위해선 잘려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발악해야 하니까. 내가 벗어나고 싶은 건 솔곶이 아니니까. 난 내가 나고 자란 이 땅 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발악을 해 볼 생각이었다.
봉헌 첫날 아침 간단한 인원 파악을 위해 참가 인원이 모두 새벽부터 교회 앞으로 몰려들었다. 처음 참가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저학년쯤 돼 보였다. 다들 격양된 목소리로 쫑알대는 것이 봉헌을 소풍이나 나들이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뒤틀리듯 울렁거렸다. 차라리 눈을 질끈 감아보려고 했는데. 그 애가 불쑥 내 옆으로 다가왔다.
- 원빈이 안녕.
- 안녕 못 해.
- 나두. 나 어제 원빈이 때문에 단독 회개하느라 쓰러질 뻔했잖아.
우리는 다정한 인사를 건넬 만큼 친한 사이도.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시간들에 대한 안부를 나눌 만큼 두터운 사이도 아닌데. 게다가 나는 어제 내 앞에서 발기한 그 애를 두고 홀라당 기도실을 나와버렸는데. 참 밸도 없다.
- 더러워.
- 오늘은 어때?
- 뭐가.
- 더러운 나랑 더럽게 죄지을 생각 생겼어?
어깨를 꾸욱 밀어봤지만 꿈쩍 않고 버티는 게 얄미웠다. 생글생글 웃어 보이는 얼굴은 더 미워서 눈을 흘겨댔다. 그러다 문득 그 애 머리칼 위로 내려앉은 먼지를 발견해서. 그런 건 또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까. 정말 어쩔 수 없이 떼어주기 위해 손을 뻗고. 별수 없이 떼어준 것 뿐인데. 한 뼘 정도 차이 나는 고개를 숙이더니 대뜸 머리칼을 들이밀며 내가 지독하게 흔들릴 것만 같은 질깃한 다정으로 또 웃어 보였다.
- 회개시켜 줘서 고마워.
- 나 신 아니야.
- 신이 뭐 별건가.
두 뺨 위로 피어오르는 열기가 민망해져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뱉어본 적 없는 목소리로 말꼬리를 잔뜩 늘린 채 웅얼대는 스스로가 낯설었다. 뭐라구? 지저귀듯 큭큭대며 방긋 올라온 뺨을 감싸며 밀어댔다. 아 하지 말라구. 저리 가라구.
- 연애질하냐?
타모였다. 부서진 코 위로 붕대를 칭칭 감고 나타난 타모는 한 마디로도 가뿐히 떠오른 내 기분을 추락시킬 수 있는 재주를 가졌다. 느자구라곤 좆도 없는 새끼. 나와 타모의 간격을 가늠하던 그 애가 대뜸 내게로 몸을 기울이고서 물어왔다.
- 친구야?
- 친구로 보여?
- 아니.
- 근데 왜 물어봐.
- 질투할 뻔.
근데 원빈아. 너 힘 진짜 세다. 그때 찔렀다는 애가 쟤지? 완전 무서워. 나두 조심해야겠당. 실없이 쫑알대는 목소리를 듣고 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려버렸다. 아, 쫌. 시끄러. 왜애. 코와 함께 뭉개진 타모의 표정을 살필 새가 없었다. 다시 마주치면 꼭 해줄 말이 있었는데. 자꾸만 내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그 애 탓에 모든 게 엉망으로 흘러갔다. 그럼에도 절망스럽지 않은 이유는. 그 애와 나를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고 싶어서.
나를 찢어 죽일 듯이 바라보는 타모를 뒤로 하고 비좁은 봉고차 구석에 올라탔다. 낡아빠진 이어폰을 끼고서 창밖을 바라보는데 밸도 없는 그 애는 어깨를 구겨가며 내 옆에 척 달라붙더니 기어코 내 오른쪽 이어폰까지 빼앗았다. 그 애의 비누향 머리칼이 내 뺨을 훅 스치고 지나갔다. 이어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귓가에 하나도 남지 않았다. 들리는 건 오직 누구 것인지 모를 쿵쿵대는 심장 박동 소리뿐이라 머리가 어지러웠다.
작업장에 도착하자마자 도망치듯 내려 자꾸만 알짱대는 그 애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 모습이 꼭 칭찬이 고픈 강아지 같아서 마음이 흔들렸다. 사실은 나도 그 포근한 머리칼을 한없이 헤집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정말 타모의 말처럼 우리가 서로 눈을 맞추고 웃음을 나눠 보이는 모습이 연애질처럼 보일 수도 있을 터였다. 그 모습을 혹시라도 목사가 본다면. 끔찍한 상상이 현실로 바뀔 여지로 남겨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눈치가 있긴 한 건지 그 애도 어느새 작업에 열중 중이었다. 해가 기울 때까지 우리는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 것처럼 굴었다. 말 한마디 없이 서로의 존재만을 의식했다. 작업이 끝난 뒤 맛대가리 좆도 없는 어죽을 저녁 배식으로 나눠 먹으면서도 눈빛 한 번 섞지 않았다.
- 호모새끼.
그럼에도 타모는 그 기류를 알아챈 것인지 자꾸만 내 신경을 긁어댔다. 무시로 일관했지만 그 애와 나를 싸잡아 비난하는 일에는 저릿한 분노가 일렁였다. 잤냐? 나한텐 대주냐고 허세 부리더니 결국엔 니가 깔렸지? 정신 나간 새끼. 나불대는 타모를 가만 바라보다 참지 못하고 흘러나온 실소를 뱉어냈다. 그건 니가 나랑 하고 싶었던 거겠지. 타모, 나 좀 후회돼.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코가 아니라 입을 찢어놨어야 했는데.
난 곧장 몸을 일으켜 타모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단발의 신음이 들리기도 전에 아직 식지 않은 어죽 안으로 타모의 얼굴을 밀어 넣었다. 순식간에 소란해진 대강당 안에서 타모와 나는 밀어내고 엎어지길 반복하며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서로를 가격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커지고 나서야 달려온 어른들의 만류로 떨어질 수 있었다. 타모와 나는 신성한 교회에서 폭력을 행사한 죄로 기도실에 함께 갇혀 서로를 위한 회개 기도를 해야만 했다.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왜 홰개를 해야 하지? 여전히 인정하지 못한 채 굳게 닫힌 문만 부서져라 두드렸다. 기도실에 들어올 때부턴 나를 신경조차 쓰지 않고 기도문만 줄줄 외던 타모는 자기 몫의 회개를 끝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 좆만아. 난 니가 죽었으면 좋겠어.
- 어. 난 니가 존나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죽을 만큼 아픈데 죽지도 못했으면 좋겠어.
- 씨발아.
- 넌 내가 지옥 가길 바라지. 난 아니거든. 넌 못 가. 넌 그런 데에 발들일 가치도 없어. 니 인생 자체가 지옥일 거니까. 쉽게 얘기한 건데. 알아들어?
지금 내가 그렇거든. 몇 번을 더 인내하고 발악해야 끝나는 건지 헤아릴 수가 없거든.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은 날과 제발 살려달라고 빌고 싶은 날들이 구분 없이 다가오거든. 난 지옥 속에서 살고 있거든. 너 그거 알아? 지옥은 공간이 아니라 상황인 거. 그리고 지옥은 늘 최악의 상황으로 있지 않아. 지옥은 희망과 절망을 반복하며 보여줘. 벗어나고 싶다가도 안락하게 느껴지고. 평화에 안착했단 생각이 들면 곧바로 도망치고 싶게 만들어. 그게 지옥이야. 그게 지금 내 인생이고. 앞으로는 네 인생이 될 거야. 근데 너. 그것도 알아? 내 지옥은 창조주가 있어. 그게 너고.
결국 난 또 타모한테 얻어맞았다. 복부를 흠씬 두들겨 맞는데 자꾸만 웃음이 났다. 타모의 얼굴 위로 칭칭 감겨있던 붕대는 더 이상 흘러나오는 피를 흡수하지 못했다. 너 비린내 나. 기도실 바닥 위로 엎어져 중얼대는 나를 한 번 더 가격하려던 타모의 움직임이 멈춘 건 봉헌 내내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문이 활짝 열린 탓이었다.
- 나와.
- ...
- 나오라고 원빈아.
기도실 안으로 성큼 다가온 그 애는 나를 일으켜 세운 채 부축하며 기도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타모가 따라 나오기도 전에 언제 챙겨온 건지 모를 자물쇠로 문을 잠가버리더니 내 손목을 붙잡은 채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는데? 내 물음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성난 걸음으로 교회를 벗어났다. 나는 오직 그 애만 뒤따르며 같이 걷는 일엔 보폭을 맞춰야 하는 수고가 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손목에 놓여있던 손을 살짝 맞잡으며 깍지를 끼자 그 애의 등이 흠칫댔다. 그 애는 산 중턱쯤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관광객을 위해 설치했던 낡아빠진 벤치에 나란히 나를 앉혀두곤 가만 바라보기만 했다.
- 왜 안 물어봐?
- 뭘.
- 왜 때렸는지. 지금은 왜 맞고 있었는지.
- 때릴 만해서 때렸고, 맞을 만해서 맞았겠지.
- 근데 왜 화났어?
- 뭐?
- 맞을 만해서 맞은 거면. 아니 그럴 이유 없었대도. 맞은 건 난데 왜 화난 건 너냐고.
- 몰라서 물어?
- 알면서 물어. 너 나 왜 좋아해?
한참을 기다려도 대답이 없던 그 애는 나를 향해있던 시선을 거두고 나서야 주머니 속 연고를 꺼내 들었다. 손가락 위로 연고를 듬뿍 짜내더니 타모와의 싸움 탓에 내 뺨에 자리한 생채기 위로 손끝을 톡톡 두드려 댔다. 그 자리마다 홧홧하게 열기가 피어오르는 게 느껴져서. 눈알을 도르륵 굴리다 의미 없이 나부끼는 나뭇잎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만 싶어졌다.
- 불쌍해서.
- 내가 불쌍해?
- 응.
누군가 나를 가엾게 여긴다면 기분이 나쁘다거나 자존심이 상한다거나 하다못해 잘 펴두었던 미간을 살풋 구겨 보이기라도 해야 하는데. 정말이지 타모의 말처럼 정신 나간 새끼가 된 것만 같은 나는 그 애의 불쌍하단 말이. 그러니까 꼭. 내가 지나온 시간까지 모조리 헤아리겠단 고백처럼 들려서. 가뜩이나 붉어진 뺨이 더 물드는 채로 놔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동정은 함부로 건네는 게 아니라니까. 동정은 약점. 약점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기꺼이 쥐여주는 것. 네 약점은 날 좋아한단 마음이구나.
- 너 혹시 뭐 꼴같잖게 나를 구원해 주고 싶은 거야? 너네 아빠처럼?
- 아니.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구원해. 신도 못 하는 걸 사람이 어떻게 하겠어. 말했잖아. 나 그런 거 안 믿는다고. 나는 그냥 네가 불쌍해. 네가 걔한테 맞은 것도 불쌍하고. 네가 걔를 때린 것도 불쌍하고. 네가 여기 있는 것도 불쌍하고. 나는 네가 설령 걔를 죽였대도. 그래도 네가 불쌍했을 거야.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위선 떠는 그런 거 아니고.
- 왜? 왜 잘 알지도 못하는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데?
- 나는 너 믿으니까.
- 언제 봤다고.
- 다들 보이지도 않는 신은 덜컥덜컥 잘도 믿는데. 내 앞에 살아있는 너는 왜 바로 믿으면 안 되는데?
- 나는 너 안 믿어. 그리고 그건 신이잖아. 사람들은 원래 허상 같은 걸 더 잘 믿어. 아직도 모르겠어?
- 몰라. 난 그런 거 모르겠고. 그냥 붙잡을 게 필요한 거야. 유감스럽겠지만 그게 너고.
- 진짜 유감이다.
- 근데 잘 찾은 것 같아.
- 뭘?
- 믿을 구석.
대체 믿음이란 게 뭐길래 이토록 맹목적일 수 있는 건지. 입 밖으로 내뱉음과 동시에 더 견고해지는 건지. 나는 여전히 알 도리가 없다. 어느 낮에는 시기와 질투로 점철되어 지나치고 싶다가도 발이 묶였으며, 어느 밤에는 다정과 동정에 함락되어 벗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묶였다. 여전히 믿음이란 건 어디서 잉태해 어디로 흘러가는지 난 알 수 없지만. 그 과정이 흔히들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과 맞닿아 있다면. 썩어빠진 악랄함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속절없이 빠져 헤어 나오고 싶지 않을 것 같기도·····.
+
이제야 그날 형과 나눴던 형에게 했던 내 일방적 질문과 해답들을 반추해 보자면. 내가 실로 쓰레기 새끼였단 죄책감을 지울 수가 없다. 더러운 건 형이 아닌 나. 더러운 이기심으로 이미 정해진 답을 갈구하고. 아주 쉽게 형의 약점을 갈취하고. 간사하게도 그 약점을 쥐고 흔들며 형을 시험에 들게 했다. 무시와 멸시를 꽁꽁 뭉쳐 입 밖으로 내뱉으면서도. 형을 담은 내 눈은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동그랗기만 해서. 형은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의 눈동자에도 여러 색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상처를 줄 작정이었다면 그렇게 쳐다봐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우리는 그 밤을 온통 이룰 수 없기에 허무하고 이뤄질 수 없기에 맹랑한 질문과 답들을 주고받으며 지새웠다. 그 애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과 내가 그 애를 좋아할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의미 없는 토론이었다. 결국엔 어쩐지 조금 화가 난 것 같은 그 애를 따라 다시 터덜터덜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그 큰 산이 쿵쿵 울리도록 나보다 앞장서 걸음을 옮기면서도 그 애의 핸드폰 손전등이 내게로 뻗어있는 걸 발견했을 땐. 추악한 충족감과 천박한 양심 탓에 걸음을 멈추고 주저앉아 울고만 싶었다.
그날 밤 일에 마음이 크게 상하기라도 한 건지 그 애는 다음 날부터 내게 알은체도 하지 않았다. 아침 기도 시간에도. 작업장에서도. 석식 배식 때에도 내가 있는 쪽은 쳐다도 안 봤다. 밸도 없는 새낀 줄 알았는데. 쫌생이.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참을 수 없이 못되게 느껴졌다. 누가 들었을 리도 없는 마음 소리에 얼굴이 타올랐다. 부끄러웠다. 타인의 위약을 권위로 삼고 싶어 하는 내가 타모를 혐오해도 되는 걸까. 요휘를 욕할 자격이 있을까. 어쩌면 약점이라는 건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믿는다는 믿음 자체가 아닐까.
그 뒤로부터의 시간은 그 애를 향해있던 내 온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죽여야 했다. 궁금해도 절대 절대 쳐다보지 않기. 혹시나 눈이 마주쳐도 3초 이상 마주보지 않기. 내게 다가오는 것 같으면 얼른 몸을 돌려 도망가기. 다행히도 불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애는 나를 아예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기 위해 작정한 것 같았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그 애의 뒷모습뿐이었으며 그럴 때마다 명치께가 콕콕 쑤시는 게 달큰한 눈물이 비눗방울 모양으로 퐁퐁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애초에 나는 혼자였으니까.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며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고 그 누구도 불쌍히 여기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었으니까. 슬프지는 않았다. 우리는 변주에 슬퍼할 만큼 같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속삭인 적 없었으니까. 믿음 같은 건 없으니까. 나를 구원하는 건 오직 나뿐이니까.
고백하자면. 내게 믿음은 삶의 활력이었다. 더 나은 현실을 맞이할 거란 동아줄이기도 했다. 사탄의 종용과 유혹에 끊임없이 흔들려도 종국엔 나아질 거라 믿었다. 설령 나아지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응당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한다고 배웠다. 대체 내 믿음의 끝엔 무엇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그토록 순종적이었는지 이제야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원하던 게 정녕 천국으로의 당도인가? 목 꺾인 미친 여자에게 내려받을 형체 없는 구원인가? 열중하는 기도로 그리는 청사진의 중독인가? 그렇다면 그 기도 끝엔 어떤 영광이 있었는가? 맞이한 영광은 과연 찬란했는가? 축복과 은혜에 다다른 적이 있는가?
엄마가 죽은 건 작년의 일이다. 교회 설립 70주년을 기념해야 했기에 작년 정화봉헌은 특별하고 성대하게 진행됐다. 남녀노소 교인들이 모두 참가해 일주일을 내리 함께 기도했다. 빈람의 3대 교주인 정천권의 한마디 한마디를 심판이자 구원으로 받았다.
형제자매 여러분. 요휘는 늘 깊은 곳에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겉이 아닌 속. 말이 아닌 숨. 빛이 아닌 어둠 속에서 진짜 믿음이 드러나는 법입니다. 바다는 우리 모두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요휘께서 생명을 주신 곳도 거두어 가시는 곳도 바다입니다. 그러니 요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돌아와 너의 믿음을 보여라. 여러분 우리가 그 부름에 응답할 때가 왔습니다. 요휘의 품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갈 때입니다. 의심을 버리고. 두려움을 씻고. 깊음 속으로 내려가라. 만약 누군가 그 물결을 이기고 요휘의 품에서 돌아온다면.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마음에 이미 빛이 깃들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 요휘께서 우리에게 먼저 손 내미신 것입니다. 그 이는 먼저 선택된 자가 되어 요휘 곁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살아남음은 표적이며 떠남은 영광입니다. 두 길 모두 요휘의 은총이며 빈람을 위한 구원입니다. 그러니 주저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걸어갈 새로운 믿음의 길 입신을 통해 요휘께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를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가 누구이든 우리는 그를 따를 것입니다.
요휘께서이세상을가엽게여기사너희를구원하러오셨나이니요휘의빛이너희를지키고요휘의생명이너희의환난을막아줄지어다요휘께서이르시되내가너와함께하니리의심하지말라염려하지말라내가너를굳세게하리라내가너의요새요피난처이니네마음을다하여너의요휘를사랑하라믿음은희망의실체요의심은정죄의씨앗이라나는바다요빛이니너의탐오를엄결의길로이끌지어다요휘께서다시이르시되너의요휘를사랑하는것처럼너의형제를사랑하라긍휼은평강의기원이요애휼은화평의근간이라네가너의형제를미쁘게여겨내게이끌때내가너의간구에답할지어다내가너를영광과환락과빛의바다로데려갈지어다
그 은총에 조금이라도 닿고 싶어 눈깔이 뒤집힌 솔곶 사람들은 어느 것에도 망설이지 않았다. 모두가 한 뜻으로 엄마를 바다로 끌고 갔으며 엄마에게 닥친 시험을 그저 관망했다. 솔곶 사람들의 졸렬한 간구가 엄마를 죽게 만든 것이다. 엄마는 그들의 형제가 아니었으니 그들은 요휘를 사랑하는 것처럼 엄마를 사랑할 필요가 없던 것이다. 그들에게 엄마는 그저 만만한 구원이었을 뿐이다. 덕분에 난 착하다는 칭찬이 폄하의 일종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건 악랄한 이기심이 넘실대는 솔곶에서 내가 알고 싶지 않던 두 번째 사실이었다.
의심은 언제나 불안으로부터 기인한다. 죄악을 저지른 과거에 대한 불안과 더 선량한 회개를 구하려는 현재의 불안과 어서 빨리 구원받고 싶은 미래의 불안이 모두 모여 믿음으로 당도한다. 애석하게도 그렇게 당도한 믿음에 천국은 없다. 다시 의심만 있을 뿐이다. 부재의 당위가 존재의 증명인 것처럼. 역류의 필연이 순류를 훼방하기 위함인 것처럼. 의심과 불안과 믿음의 굴레에 갇혀 순례로 위장한 출구 없는 미로를 빙빙 돌 뿐이다. 불행인 건 출구 없는 미로를 함께 걷는 이가 있을 때다. 역경 끝엔 영광이 고난 끝엔 평강이 간구 끝엔 구원이 있을 거란 사악하고 추악한 이기심으로 서로를 다독인다.
그 행렬 선두엔 김선려 씨가 있었다. 그녀는 혼인 전 경기도 북부에 위치한 원단 공장 기숙사에 3년간 거주하며 겨우 겨우 월세방 보증금을 모을 수 있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이자 유일한 친구였던 이와 새로운 보금자리를 알아보던 중 사고로 인해 한 쪽 팔을 잃고 실직당한 뒤 암울한 미래를 비관한 친구가 스스로 삶을 끝내는 모습을 목격한 충격으로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배신감에 허덕이던 마음은 살아남은 죄책감으로 점철되었다. 친구의 장례식에서 한 방울의 눈물도 쏟아내지 못한 그녀에게 다가온 건 빈람의 전도사였다. 악랄하게도 그의 주된 전도 장소는 장례식장이었다.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의 유약함은 간절함으로 발현되기 쉽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건 죄가 아니며 요휘는 늘 당신 곁에 계십니다. 김선려 씨의 유약은 혼자 맞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었기에 그녀는 아주 쉽게 빈람의 신도가 되었다. 꼬박 모은 보증금까지 빈람에 헌납하고서 솔곶에 자리 잡은 그녀는 솔곶으로의 이주 1년 만에 신실한 믿음으로 전도사와의 혼인과 아들의 출산까지 미뤄뒀던 일을 헤치우는 것 마냥 끝마쳤다. 그녀는 요휘의 영광을 이을 자는 반드시 자신의 아들이 되어야만 한다고 믿었다. 요휘의 근간인 바다의 물줄기를 한곳으로 모으는 이. 그녀의 아이가 가지게 된 이름은 타모(沱募). 그녀가 공장에서처럼 솔곶에서 겨우 겨우 모은 돈으로 정천권에게서 얻어낸 이름이었다.
애석하게도 엄마는 김선려 씨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품고 낳았으니 같은 처지의 유대감이 우정을 다지기에 알맞은 장치라 생각했을 것이다. 김선려 씨의 생각은 살풋 달랐으리라 짐작한다. 만약 그녀가 엄마를 진심으로 친구로 생각했다면. 입신 의례의 순교자로 엄마를 강력히 주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에게 요휘는 대체 누구이며 그녀가 고대한 영광은 대체 어떤 모습이길래.
난 엄마가 허우적대는 모습을 타모와 함께 지켜봤다. 김선려 씨는 발악하며 엄마에게 다가가려는 나를 몇 번이고 막아섰다. 요휘의 은총이 엄마에게 깃들 거라며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지만. 파도는 검은 벽처럼 일어나 모든 빛을 잠식하며 다시 무너지고 일어나길 반복했다. 그 속에서 엄마의 두 팔은 파도와 허공을 차례로 가르며 뻗쳐 나왔다. 엄마를 향해 달려가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허우적대는 엄마를 바라보는 일뿐이었다. 엄마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게 계속해서 무어라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리곤 저 깊은 아래로 빨려가듯 사라졌다.
김선려 씨 역시 당황한 듯 보였다. 빈람에게 내려진 구원에 기여했다는 착각과 살인에 방조했다는 사실에 파묻혀 같은 말만 반복했다. 사고야사고야원빈아사고야아줌마가그런거아니야사고야일부러그런거아니야사고야바로나올줄알았어정말이야사고야이건사고야그래도너희엄마는지금요휘님의손을잡은거야선택받은거야너희엄마가빈람을구원할거야사고야아줌마말이해하지라니는사고야내가그런거아니야사고야
대체 내 믿음의 끝엔 무엇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그토록 순종적이었는지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원하던 게 정녕 천국으로의 당도인가? 목 꺾인 미친 여자에게 내려받을 형체 없는 구원인가? 열중하는 기도로 그리는 청사진의 중독인가? 그렇다면 그 기도 끝엔 어떤 영광이 있었는가? 맞이한 영광은 과연 찬란했는가? 축복과 은혜에 다다른 적이 있는가? 단 한 번도 그의 존재에 대해 의심한 적이 없는가?
아니. 모두 아니다. 그 모든 게 허상이자 욕심이었다는 건 어린 날의 나조차도 이미 알고 있었을 사실이다. 이곳에 끌려온 아이들 역시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것이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유독 더웠던 날씨 탓에 헉헉거리는 숨소리만이 가득 찬 오전을 보내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노동의 고단함을 느낄 새도 없이 정화활동을 위해 참가 인원 전부가 일렬로 줄지어 서 있어야만 했다. 한 명씩 달빛을 삼킨 바다 안으로 머리통을 집어넣고 차례대로 천편일률적인 대답만 중얼댔다. 무얼 봤니? 악령이 있었어요. 저한테 막 다가왔는데 갑자기 빛이 보였어요. 요휘님이 저를 안아주셨어요.
내 차례가 다가오기 전 먼저 들어간 아이는 참가 인원 중 가장 작은 아이였다. 벌벌 떨며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는 게 힘들고 역겨워 시선을 돌렸다. 1분이 천금같이 느껴졌다. 꽤 오래 지났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이는 나올 기미가 안 보였다. 불안에 잠식된 분위기 속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삼킬 만큼 아이는 크게 허우적대며 올라왔다. 구조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렸지만 그곳에 있던 어른들 그 누구도 동요하지 않았다. 목사는 몸을 돌려 요휘의 뜻이니 그저 지켜보는 것만이 저 아이를 구하는 방법이라며 남은 아이들의 불안을 잠재우려고 했다. 미친새끼.
운동화를 벗어 던지며 바다로 뛰어가려던 나보다 먼저 몸을 던진 이가 있었다. 철퍽대는 소리와 함께 바다에 들어간 그 애는 호기롭던 행동과 달리 수영엔 영 소질이 없는 듯했다. 아이와 같이 허우적대면서도 아이의 숨이 모자라지 않게 수면 위로 몸을 들어 올려줄 뿐이었다. 그 애의 다정은 생존과 맞닿아 있는 순간에도 꺾이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 건 지켜줘야 맞는 거니까. 그런데. 굳이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더라도. 나 역시 네가 불쌍하니까. 그 애와 맞닿기 위해서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바다에 내 온몸을 던져야만 했다. 그 애에게 다가가지 않을 방법이 무수히 많았다 하더라도 구태여 찾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아이는 곧장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이후 아이의 엄마는 정신병원에 수감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칼을 들고 찾아와 생전 요휘처럼 최선을 다해 목을 꺾은 채 빌었다고 한다. 제발 우리 가정을 구원해 주세요. 아니면 저라도 천국에 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녀에게 천국은 대체 어떤 곳이며 그녀가 고대한 희망은 대체 어떤 모습이길래. 신물이 났다. 이 바다를 영위하며 살아가는 이곳 모두가 나와 같은 정신병을 앓고 있단 사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으며 난 더 이상 그들 각자의 고난과 환난과 구원과 희망을 알고 싶지 않다.
가장 무서운 건 더럽고 역겨운 일이 분별없이 일어나도 어김없이 해는 뜬다는 사실이다. 열심히 헤매며 그 애를 찾아봤지만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망설임 없이 바다로 뛰어드는 그 애를 지켜보던 목사의 표정이 어땠더라. 못 볼 꼴을 본 듯 미간이 구겨진 건 확실했다. 죽을 듯이 맞았을까. 이미 어딘가가 망가진 채 병원에 실려 갔을까. 확인할 수 없기에 점점 더 불안해지는 마음을 안고 또다시 솔곶 곳곳을 헤집었다.
혹시나 싶어 들러본 기도실 구석에 다다라서야 그 애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차디찬 바닥에 누워있던 그 애를. 퉁퉁 부어오른 뺨과 짙은 푸른색의 멍이 내려앉은 눈과 경고하듯 붉게 자리 잡은 생채기들의 고통이 죄다 나에게 전염된 것만 같았다. 묻고 싶었다. 잘난 니 애비가 너를 그 꼴로 만들었어? 묻지 않았다. 안 봐도 뻔해. 그러고도 남을 새끼니까. 좆도 아까워.
간밤의 폭력에 저항하지도 못한 채 휘둘렸을 그 애를 떠올리니 온몸의 뼈 마디마디가 아릿해지는 기분이었다. 난 그 애가 그랬던 것처럼 내 무릎을 베개로 내어줬다. 끈적한 땀과 진득한 피가 섞여 뭉친 그 애 머리칼을 살살 쓸어주길 반복했다. 손끝이 스칠 때마다 찌르르 울리는 통감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다. 곧게 뻗은 콧대를 따라 토독토독 두드리다 둥근 콧망울도 꾸욱 눌러봤다. 일부러 손끝을 뾰족하게 세우고서 그 애 입술을 톡톡 건드린 건. 톡 건드리면 퐁 터질 것 같은 민트빛 비눗방울 같은 마음을 괴롭히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진심으로.
- 일어나 봐.
- ...
- 얼른.
- 왜애...
- 아, 빨리.
나 아퍼. 봐 줘. 입은 안 맞았나 보다. 입만 살아선 말은 잘했다. 그 큰 몸을 잔뜩 구긴 그 애는 몸을 돌려 누운 채 복수라도 하는 듯 내 허벅지 사이로 얼굴을 묻어댔다. 곧장 사타구니 위로 뺨을 살살 부비는 탓에 사락사락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기도실을 가득 울려댔다. 종국엔 내 손가락을 송곳니 끝으로 잘게 깨물거렸다. 아파. 너 왜 나 아프게 해. 아무렴 끼리끼리랬다. 내가 자기 분수를 이렇게나 몰랐나. 내가 맞이할 영광이 호모새끼의 같잖은 말로였나. 그럼 그냥 그래 볼까. 입만 산 새끼 여기 하나 더 추가. 존나게 아멘이요.
- 같이 회개하까?
- 지랄 말고.
왜애. 나는 원빈이 너랑 같이 회개하면서 살고 싶어어. 나는 너랑 같이 못되게 살고 싶어. 근데 웃기긴 해. 누가 누굴 용서해. 그치? 잘못도 해결도 다 내가 할 텐데. 고개를 쭉 뻗어 쫑알대는 그 애를 가만히 눈에 담는 일은 꼭 힘차게 비눗방울을 불어대는 아이를 지켜보는 일과 같게 느껴졌다. 반짝이는 순간을 자꾸만 만들어 내는 게 질투 나서. 예뻐서. 나도 갖고 싶어서. 그냥 터뜨리고 싶어서. 아니. 나는 원래 못됐는데. 충동에 못 이겨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인 채 도톰한 그 애 입술에 입을 맞췄다. 퐁 대신 쪽. 우리 입맞춤에선 민트빛 향기가 나.
- ... 우리 사겨?
- 아니.
- 그럼 지금 이거 뭔데?
- 난 연고 안 다지고 다녀.
- 내가 준 건?
- 버렸어.
- 왜?
- 더러워서.
나를 올려 보던 그 애의 동그랗던 눈빛은 어느새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고인 눈물을 참아내느라 붉게 달아오른 눈이 곧장 내게서 멀어졌다. 몸을 박차고 일어나 터벅터벅 기도실을 나가는 그 애를 홀로 두게 할 수 없었던 건 남아있던 내 썩은 양심이 악취 나는 동정심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그 얼굴을 하고서 어딜 간다고. 지난밤처럼 나는 그 애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으며 또 산을 올라야 했다. 따라오지 마.
- 싫어.
- 너 진짜 못됐어.
- 고마워.
- 칭찬 아니야.
- 네가 하는 말은 다 칭찬 같아.
내 얄궂은 달램에 그 애는 더 약이 오른 듯 뚝뚝 굵은 눈물을 흘려냈다.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단 건 여전히 비밀이다. 난 진짜 못된 새끼가 맞나 봐. 우는 그 애의 소매 끝을 움켜쥐고서 살살 흔들었다. 야아. 눈가를 벅벅 문지르던 그 애는 그 짧은 순간에도 평정을 되찾은 건지 나를 가만 바라보기만 했다.
- 너랑 친해지고 싶으면 다시 태어나라고 했지.
- 응.
- 그럼 여기서 죽으면 돼?
- 야.
- 나도 봤어.
작년 이맘때. 나도 여기 있었어. 그날은 내가 꼭 필요하다고 하셨어. 누나를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내 쓸모를 다 할 날이 왔다고. 나는 누나가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어. 정신 나간 사이비에 미쳐도 적당히 미쳤어야지.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학교는 나가지도 않고 이틀에 한 번꼴로 서울에서 흑담리까지 다시 흑담리에서 서울까지 반복하더니. 말도 없이 솔곶으로 가 버린 거야. 나를 두고. 이모 말로는 늙어빠진 목사랑 몰래 결혼도 했대. 그러더니 죽어버렸어. 배에 바위 같은 돌을 꽁꽁 싸매고. 그 바위에 내 이름을 새기고 죽어버렸어. 난 누나 장례식도 못 갔어. 이모가 못 오게 했거든. 난 너무 어렸고. 누나는 너무 퉁퉁 불어서. 누나가 그런 얼굴은 내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을 거래. 늘 솔곶이 궁금했는데. 처음 와 본 솔곶에 네가 있었어. 울부짖는 네가.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을 것 같아?
담담하게 절망하는 그 애 목소리는 소름이 끼칠 만큼 포근했다. 너무 폭신해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어두운 사방 속에서도 투명하게 빛나는 그 애의 뺨을 쓰다듬다 나도 모르게 다시 입을 맞췄다. 포개진 입술 사이로 숨결을 나누고 혀를 옭아매며 그 애가 넘겨주는 절망을 꼴깍꼴깍 받아 마셨다. 어두운 절망빛으로 텁텁해야 마땅할 입맞춤은 구겨진 신앙과 저지른 죄악의 맛으로 짜릿하기만 했다. 누가 더 큰 죄를 짓고 싶어 했나 겨루기를 하듯 한참을 붉은 입술과 혀를 빨아댔다. 살포시 입술을 떼어내고 나서야 그 큰 손을 얽어 맞잡았다. 성찬아. 형. 성찬이 형. 처음 불러보는 말.
난 이 믿음을 사랑한 적 없어. 앞으로도 없을 거야. 이제야 알았거든. 믿음은 약점이라는 거. 난 약하게 살기 싫어. 착하게 살기도 싫어. 형이 믿고 싶은 게 나라면. 형이 가진 믿음은 비난받을 거야. 형이 믿는 신은 생각보다 난폭하고 생각만큼 악랄할 거야. 형을 망가뜨릴 수도 있을 거야. 형이 나를 질책하고 미워할 날도 많을 거야. 내가 졸렬하고 치사한 밤도 많을 거야. 내게 구차하게 빌어야 할 순간도 많을 거야. 그럼에도 구원 같은 건 없을 거야. 형 몫의 구원은 형이 이뤄내야 할 테니까. 그래도 괜찮다면. 날 믿어. 나도 형을 불쌍히 여기니까. 내가 돼 줄게. 믿을 구석.
5
다시 도래한 예배일. 예배 시간 내내 형과 나는 나란히 앉아있었다. 태초부터 얽혀 태어난 것처럼 손 마디마디를 얽어 맞잡았다. 이제는 다 낡은 탓에 까슬까슬한 나무 부스러기가 튀어나온 기다란 예배당 의자 밑으로 손을 숨기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일말의 두려움이 있더라도 이 미로 속을 함께 걷기로.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우리의 믿음을 비난하더라도. 이 믿음에 신념을 가져보기로. 형과 나는 선택한 것이다.
여러분 믿음은 말이 아닙니다. 믿음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건너는 것입니다. 발밑의 땅이 사라져도 그 발을 내딛는 자만이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을 껴안고도 앞으로 가는 자가 있지요. 그런 자는 이미 요휘님의 손에 들려 있는 자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흔들립니다. 감정은 무너집니다. 피는 배신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흔들리는 모든 것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희생을 요구하고 희생은 믿음을 드러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가장 어두운 두려움이 바다를 마주할 때. 빛이 치솟을지 꺼질지 그때 비로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지켜보고 있나니 믿음을 가진 자는 반드시 드러날 것이다.
목사의 설교가 끝난 뒤 가진 기도 시간엔 늘 그렇듯 울먹이는 소리가 예배당을 가득 메웠다. 누군가는 두 손을 하늘로 뻗어 떨었고 누군가는 가슴을 치며 흐느꼈다. 눈을 감고서도 그들의 얼굴엔 황홀과 공포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 삭막한 형광등 아래 새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깃발처럼 흔들렸다. 목사의 한마디 한 호흡마다 그들의 몸 전체가 경기를 일으키듯 고꾸라지기도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 틈에서 고개를 조아린 채 눈치만 보고 있었다. 침묵은 찢어지기 쉬운 종이처럼 얇았고 누군가 감히 고개를 들기라도 하면 죄인의 표식처럼 여겨졌다. 파도 소리가 예배당 벽을 두드릴 때마다 사람들의 흐느낌은 더 커졌다. 그 모습은 꼭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본분을 다하면서도 단 한 명의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연출된 거대한 연극 같았다. 그 모습을 관망하다 발끝부터 빠르게 끼치는 이질감 탓에 구토가 치밀었다.
울음이 모두 흡수된 뒤 남은 진공 같은 침묵 한가운데에서 목사는 대뜸 내 이름을 불렀다. 수십 개의 시선이 나를 꿰뚫었다. 그 부름 한 번에 나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죄를 숨기고 있는 사람이 됐다. 형은 일어나려는 내 손을 더 꼭 붙잡았다. 가지 마. 형의 시선은 나를 향해 있지 않았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의 속삭임이었다. 형에겐 미안하지만 나에게는 나만의 할 일이 있었다. 나를 구원하는 건 오직 나뿐. 몇 걸음 내딛고서 설교대 앞에 무릎을 꿇었다. 향 냄새에 뒤섞인 바다 짠내가 코끝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 네 어머니는 누구보다 믿음이 깊었던 분이었지.
- ...
- 네 어머니께서 어떻게 선택을 받았는지. 어떤 순례를 떠나셨는지. 모두에게 들려줄 수 있겠니?
순간 등골이 얼어붙었다. 순례라는 단어는 아직 마르지 않은 피처럼 귀에 달라붙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언가가 목 안에서 뒤엉켰지만 끝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정천권은 여전히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 요휘께서는 네 어머니를 기억하신단다. 그 구원이 너에게도 맞닿았다는 영광이 느껴지지 않니?
예배당 뒤편에서 몇몇의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눈물인지 감탄인지 구분할 수 없는 역겨운 소리 탓에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예배당 전체가 내 숨소리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죄를 듣고 싶어 하는 귀들이 간신히 숨이 붙은 민어마냥 푸드덕대고 있었다. 어서 빨리 네 쓸모를 증명해. 모두가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엄마는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파도 속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안다. 나는 봤다. 나는 그날 손을 뻗지 못했다. 그걸 어떻게 말해. 그게 어떻게 순례야. 그들은 엄마의 죽음을기적이자 구원이며 요휘가 내민 손을 맞잡은 영광이라 부른다. 좆같은 소리 좀 그만해. 그딴 게 구원이면 난 구원 같은 거 필요 없다고 몇 번을 말해 씨발. 나는 기억한다. 차갑고 날카롭던 바다의 냄새를. 두려움에 질린 엄마가 뱉은 말을 알아듣기 위해 몸부림쳤던 나를. 그 패악질을 구원이라 부르는 입술을. 나는 어떻게 용서해야 하나?
사람들은 여전히 내게 맡겨놓은 것마냥 그들의 기대가 충족되길 고대했다. 그 영광을 이어 말하라고. 입 밖으로 내뱉음과 동시에 나는 그들을 따라 엄마를 배신하는 패륜아가 되겠지. 말하지 않으면 나는 엄마의 죽음마저 지워버리는 쓰레기일 테고. 정천권의 시선이 자꾸만 내게서 정답을 강요했다. 살아남은 죄인이라는 정답을. 머리 위에서 천천히 흔들리는 형광등의 빛이 온통 나를 비추는 것만 같고. 숨 한 번 내쉬는 것조차 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지만. 나는 끝내 울지 않았다.
형이 내 옆으로 왔으니까. 나와 함께 무릎을 꿇었으니까. 고개를 들지 않으려 했지만 형이 내 손을 다시 얽어 잡은 탓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밸도 없는 쫄보 새낀 줄 알았는데. 모두가 정권천의 말에 울고 고개를 조아릴 때도 형만은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지 않았지만 형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건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울컥 터져 나오는 무언가를 참기 위해 숨을 들이킴과 동시에 형은 참을 수 없는 숨을 뱉어냈을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풀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그러다 도무지 참을 방법을 찾지 못하고 내게 온 거겠지. 형은 질깃하게 다정한 사람이니까.
정천권이 설교대를 벗어나 나에게 다가올 때마다 형의 눈빛은 조금씩 날카로워졌다. 그 눈빛 속에서 내가 읽은 건 분노나 원망 같은 저열한 감정이 아니었다. 형은 떨고 있었다. 맞잡은 손바닥이 축축해질 정도로. 형이 두려워했던 건. 아무래도. 나였을 것이다. 내가 부서질까 봐.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까 봐. 같은 처지에 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비슷한 농도의 불행한 눈이었다.
그가 손을 뻗어 내 어깨 위에 가볍게 얹었다. 그 접촉은 나를 향한 위로도 애정도 아닌 명령이었다. 괜찮다. 나를 안심시키려는 말투 안엔 언제나 강요가 깃들어 있었다. 그는 손끝으로 아주 천천히 내 어깨뼈를 토닥였다. 지금부터 기억하면 된단다. 예배당 전체를 울리던 기도 소리는 어느새 파도 소리로 바뀌어 나를 괴롭혔다. 숨을 삼키는 소리. 혹은 내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 차가운 어둠이 발목부터 차오르던 밤. 그 모든 게 내 몸속 어디에서나 터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처럼 한꺼번에 올라왔다. 나는 도리어 눈을 크게 뜨고선 그를 쳐다봤다. 나는 끝내 울지 않았다. 눈물은 약점. 약점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기꺼이 쥐여주는 것.
그 손이 내 어깨에서 천천히 떨어질 때. 나는 오히려 더 깊게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숨이 목까지 차올라서 입을 열면 울음 대신 비명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 순간 형이 내 손목을 날카롭게 잡아챘다.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도망칠 준비가 끝난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안 돼. 나는 아주 조금 고개를 흔들며 말릴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안 돼. 그러다 우리 진짜 죽어. 구태여 말하지 않았지만 형은 알아들었을 것이다. 돼. 일어나. 뛰어. 같이 죽어 그럼.
어차피 문은 잠겨있을 것이다. 형과 나는 예배당 측면 유리창을 향해 몸을 던졌다. 찬 공기와 함께 바다의 숨결이 얼굴을 후려쳤다. 팔 곳곳에 유리 조각이 박혔지만 아픈 줄도 몰랐다. 간혹 들리는 비명소리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지만 숨이 목을 긁으며 올라올 때까지 달렸다. 파도 소리가 발소리를 뒤덮고 끈적한 바람이 자꾸만 나를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혹여나 사람들이 망치나 삽 같은 것들을 들고 형과 나를 뒤쫓아 오면 어쩌나 싶어 힐끔 뒤를 돌아봤을 때.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우리를 보며 아주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온몸을 타고 끼치는 소름에 발이 잠깐 멈출 뻔했지만 형이 내 손을 더 끌어당긴 덕분에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 나만 믿어. 나도 너만 믿으니까.
나는 끌려가다시피 형의 뒤를 따랐다. 우리는 그저 살아보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야 했다.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생겼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발이 모래에 푹푹 잠길 때마다 형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형이 가쁜 숨을 쉬고 내뱉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쉼 없이 달리는 일보다 힘들었다. 심장이 무겁게 내려앉아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형에게 천천히 가도 된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지만 끝없이 달려봐도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점점 커져가는 것 같았다. 형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혹시라도 나를 놓칠까 불안해하는 중이었다. 형의 손가락이 내 손등을 더 깊이 쓸어내렸다.
우리가 찾은 피난처는 겨우 방파제 사이였다. 바람 한 줄기가 스쳤을 뿐인데도 온몸이 벌벌 떨렸다. 머지않아 엉성하게 숨긴 몸을 들키고 말겠지만 어쩐지 웃음이 났다. 나의 존재가 나 아닌 다른 이에게도 중요하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도록 기뻐서. 나와 함께 평생 이렇게 무모하고 대책 없는 나를 이끌어 줄 사람이 있다는 게 좋아서. 모든 걸 제쳐두고 아이처럼 명랑하게 웃어버렸다.
- 왜 웃어...
- 형 지금 진짜 불쌍하다.
- 엉 너도.
무모하게 소란한 속삭임을 나누던 우리를 다시 긴장케 한 건 익숙한 목소리였다.
- 박원빈!
타모의 목소리로 내 이름을 들어본 게 얼마 만이더라. 저 길 위에서 떨리는 숨을 삼키는 타모가 형과 나를 찾고 있다는 사실이 점차 공포가 되어 밀려왔다. 방파제 위로 그림자가 비쳤다. 타모가 형과 나를 발견할 것이다. 어둠 탓에 흐릿하게 보인 타모의 눈은 곧장 울 것처럼 붉게 보였다. 눈물을 참는 것 같기도 웃음을 참는 것 같기도 한 얼굴이었다.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었지만 구분할 필요 따위는 없었다.
- 나와.
- 나오라고.
- 원빈아... 나도 무서워.
그 목소리에 마음이 흔들렸다. 나는 쟤가 왜 이렇게 좆같고. 좆같은데 꼴같잖게 불쌍할까. 내 마음을 눈치챈 건지 형의 손이 내 손등 위에서 움찔 떨렸다. 타모의 목소리가 낮아질수록 형의 숨이 점점 차분해지는 게 느껴졌다. 타모가 한 걸음, 또 한 걸음 형과 나를 찾아 걸음을 옮길 때마다 타모의 눈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타모의 눈은 핏발이 선 채로 원망이 담긴 것처럼 보였다. 멍청히 시선을 빼앗긴 내게 형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너. 가만히 있어. 절대 나오지 마. 차라리 바다에 빠져. 너 수영 잘하잖아.
- 야. 나만 나빠? 너만 지옥이야? 나도 매일이 지옥이야 씨발.
타모의 원망은 언제나 나를 향해있었다. 그 말이 내 심장에 걸려서 명치께가 쿡쿡거렸다. 결국 내 머뭇거림 탓에 기어코 들켜버렸다. 타모가 나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형이 몸을 일으켰다. 형은 등 뒤로 나를 숨긴 채 타모 앞으로 다가갔다.
- 야.
그럼 천국 가. 지금 빠지면 되겠네. 빠져서 손도 잡고 오지 왜. 악령이 있었어요. 저한테 막 다가왔는데 갑자기 빛이 보였어요. 요휘님이 저를 안아주셨어요. 니가 간증하면 되겠네. 근데 넌 못 하지. 쫄리니까. 난 너 하루만 봐도 알겠다. 니가 쫄보 새낀 거. 그러니까 맨날 애꿎은 애 쥐잡듯이 잡지. 쪽팔리지도 않냐?
- 지랄을 해. 아주 쌍으로 지랄을 해.
우습지도 않다는 듯 중얼대던 타모가 내 머리채를 붙잡아 끌어당겼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두피가 다 뜯겨져 나갈 것만 같았다. 나는 손을 뻗어 잡힌 머리카락을 빼내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 세게 당겨질 뿐이었다. 아이 씹새끼가 진짜... 미간을 잔뜩 찌푸리다 타모의 팔을 밀어내려던 내 계획은 실행도 전에 파기되었다. 형이 타모를 때린 탓이었다.
형과 타모가 서로의 어깨를 밀치며 비틀거리는 탓에 거칠게 뒤엉켜 흔들리는 숨이 내게도 느껴졌다. 일정한 간격으로 들이치는 파도는 마치 누군가가 호흡을 삼키는 소리처럼 들렸다. 형을 말리려고 다가선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친 타모는 내가 그 눈빛의 의중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내 허리를 감싸며 그대로 나를 넘어뜨렸다. 몸이 기울며 비스듬해진 세상이 내 눈앞을 어지럽혔다. 검은 파도가 내 눈앞까지 치솟다 뺨을 후려치기를 반복했다. 차갑고 짠 물이 목으로 밀려 들어와 점점 나를 바닷속으로 끌어당기는 듯했다. 겨우 눈을 떠도 보이는 건 어둠뿐이었다. 수면과 심연 사이에서 허우적대다 나를 향해 뛰어들려는 형을 발견하고 나서야 그날 엄마가 내게 건넨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 오지 마.
이건 내가 검은 파도가 넘실대는 솔곶에서 유일하게 알고 싶던 사실이자 형에게 건네는 진심. 뭐라도 움켜쥐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잡을 수 없었다. 차갑고 잔인한 바다가 나를 잠식하는 동안 난 형에게 같은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오지마오지마오지마오지마오지마도망가가살아너라도살아오지마.
소독용 알코올 냄새가 내 목덜미를 자극하는 탓에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병원임을 알 수 있었다. 내 무릎 밑에 몸을 구기고 잠들어 있는 형을 발견하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결국 난 또 살아남은 것이다. 나를 가장 먼저 에워싼 건 생존의 안도나 기쁨이 아니었다. 또다시 겪어야 할 지옥에서의 권태 혹은 미리 가늠해야 할 생의 부담감 같은 것들이었다. 차분히 가라앉은 형의 머리칼을 내려 보다 아주 살살 헤집으며 쓰다듬었다. 벗어나지 못할 바에야 발악하지 않는 편이 낫지. 그런데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 발악하는 삶에도 가치는 있다는 걸. 벗어나지 못했다는 게 생의 실패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걸. 나는 지옥에서도 희망을 찾아. 깊은 어둠에서도 희미한 빛을 쫓아. 바보 같은 짓이지. 충만한 쓸모보단 허무한 무용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거. 그래도 난 믿어. 믿어. 혐오나 사랑 같은 허상보단 언제까지고 내 옆에 굳건히 있을 형의 실체를 믿어. 앞으로도 우리에겐 서로를 위한 구원 같은 건 없을 거야. 그런데 이런 구차한 변명 같은 다짐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진심으로.
- 일어나 봐.
- ...
- 얼른.
형의 머리칼을 쓰다듬던 손을 내려 어깨를 세차게 흔들었다. 막 잠에서 깬 형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웃음이 흘러나왔다. 왤케 불쌍한 강아지 같냐... 붕 뜬 머리칼을 세차게 헤집던 나를 보자마자 형은 울음을 터뜨렸다. 나 너 진짜 죽는 줄 알았어어. 얼씨구. 까진 손등으로 형의 뺨을 꾹 눌러댔다. 그만 울어. 그만 울고.
- 나 봐.
- 왜애...
형은 내 손등 위로 뺨을 기댄 채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삐댄다 또. 나는 형이랑 같이 회개하면서 살기 싫어. 나는 형이랑 같이 못되게 살고 싶어. 내 이기심은 다 형한테 쓸 거야. 형 앞으로 고개를 쭉 뻗어 쫑알댔다. 내 목소리에 움찔대는 형을 가만히 눈에 담는 일은 꼭 힘차게 비눗방울을 불어대는 아이를 지켜주고 싶은 일과 같게 느껴졌다. 반짝이는 순간을 자꾸만 만들어 내는 게 기특해서. 예뻐서. 늙지 않게 내 옆에 계속 두고 싶어서. 어떤 바람에도 형이 만든 비눗방울은 터지는 일이 없게끔. 충동에 못 이겨 나도 모르게 고개를 더 숙인 채 도톰한 그 애 입술에 입을 맞췄다. 퐁 대신 쪽. 우리 입맞춤에선 여전히 민트빛 향기가 나.
- 사랑해.
타모와 내가 바다에 빠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형은 몰려온 사람들에 의해 더는 숨지 못하고 들켰다고 한다. 나를 꺼내기 위해 다시 달려들려고 했지만 팔이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구해달라고 소리쳐 봤지만 아무도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 중심엔 정철권이 있었으며 그저 요휘가 나와 타모 중 한 명을 선택할 것이니 요휘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 믿음이자 구원이라는 말만 되뇌었다.
형의 발악이 점차 힘을 잃어갈 때쯤 갑자기 두 눈에서 피를 쏟아내며 쓰러진 정철권의 앞에는 나뒹구는 망치와 함께 실성한 듯 웃기만 하는 김선려 씨가 있었다. 모두가 벙쪄 바라보기만 할 때 그녀는 다시금 천천히 떨어진 망치를 챙겨 이미 쓰러진 그의 위로 올라타 말릴 새도 없이 망치질을 해댔다. 그제야 그녀를 말리는 사람들과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와 타모를 찾으러 바다에 뛰어든 사람들이 몇 생겼다. 소용없는 수색 끝에 구조대가 도착하고 나서야 그녀는 연행되었고 나는 다시 숨을 쉴 수 있었지만 결국 타모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
빈람의 열렬한 신도였던 그녀는 한순간에 살인자가 되었다. 이 소식은 지역 방송사를 넘어 공중파 뉴스를 타고 광신도의 배반을 주제로 특집 다큐가 제작될 예정이다. 과연 배반이 맞는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죄악의 시작점이 존재하기는 하는가? 정말 온전히 그녀의 잘못이 맞는가? 난 여전히 헤아리기 어렵다.
솔곶은 이 소란스러움을 감당하기엔 너무 작은 곳이었다. 물론 신념은 고질적이므로 여전히 죽은 신을 믿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취재를 위해 솔곶을 찾은 방송국 사람들에게 그럴 줄 알았다며 마치 자신이 환생한 신이라도 된 듯 무용담을 늘어놓는 사람들도 공존했다. 형과 나의 존재도 함께 알려지며 헛된 믿음에 희생자가 된 우리를 위한 여러 후원도 들어왔다. 어느 단체에선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솔곶을 떠나지 않겠냐는 제안도 들어왔지만. 형과 나는 여전히 어지러운 이곳에서 함께하기를 선택했다. 저 바다 끝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두렵고. 두렵지만 함께하기에 기꺼이 궁금해 할 수 있으니까. 우리는 바다 끝에서 살아남기를 선택한 것이다.
*
피디님께
여기까지가 제가 쓴 일기예요. 모두 부치긴 했는데 취재에 도움이 되실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불행히도 다행히도 형과 솔곶에 남아있어요. 이 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게 저한텐 조금 무서운 일이에요. 저번에 피디님께서 저한테 하셨던 말 기억하세요? 저는 피해자라고요. 그 말에 대해 계속 생각해 봤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아요. 저는 피해자이기도 가해자이기도 방관자이기도 하니까요. 저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솔곶 사람들 모두가 그러니까요. 그래서 무서워요. 책망으로만 가득한 제 일기가 읽혀지면 왜 진작 벗어나지 않았냐는 비난과 너도 똑같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겠죠? 그럼에도 제가 이 일기를 부친 건. 도망가고 싶지 않아서요. 저는 여기서 계속 살고 싶거든요. 형이랑. 일부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신도들에 의해 주일 예배는 진행 중이고 저는 계속 새벽 작업에 나가요. 많은 게 바뀐 것 같다가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 같아요. 바뀐 건 바다를 바라보는 제 마음 정도고요. 여전히 파도는 싫지만 문득 궁금해져요. 드넓게 펼쳐진 바다 끝엔 뭐가 있을지요. 그래서 천천히 알아보려고요. 앞으로는 엄마 장례도 지낼 거예요. 바다 앞에서. 같이 지내줄 사람이 생겼거든요. 혹시라도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저는 무너지고 일어나길 반복하면서 지낼 거예요. 어둠 속에서도 기꺼이 웃을 거예요. 피디님도 적당히 절망하고 적절히 행복하며 지내세요. 저도 그럴게요. 이만 줄일게요.
원빈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