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오만
by. 정의산

“괜찮아?”


“뭐가? 원빈에게 괜찮냐고 물은 상대가 오히려 더 껄끄러워 보였다.

 

“그 형 알파잖아.”

 

“알파면 뭐?”

 

 

원빈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아니, 알파들 좀 그렇잖아. 베타하고는 잘 안 하려고 하지 않냐? 아무래도 불편하고…. 이상하잖아.”

 

“그런가? 잘 모르겠는데.”

 

 

장단 맞추지 않자 상대도 입을 다물었다. 박원빈이 말하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그 형이 먼저 박원빈에게 하자고 했다. 원빈이 뭘 몰라서 그런다고 혀 차는 상대방을 보며 문득 떠올랐다.

 

지겹다. 이 상황, 대화, 모두 지겨워.

 

 


편견과 오만

 

 


Stage1 편견

 

 

원빈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대개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낸다. 조금 친해졌다 싶으면 술자리에서, 혹은 카페에서, 둘만 있게 되는 자리에서 은밀히 물었다. 너 혹시 알파야? 원빈은 솔직하게 답해줬다. 아닌데?

 

상대의 반응은 99% 비슷했다. 못 믿는 듯했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오메가? 이 또한 원빈은 솔직히 답한다. 아닌데?

 

그때야 대부분 놀라 되묻는다. 너 베타야?

 

어. 원빈은 솔직히 대꾸했다.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숨기지 못한 실망 뒤에 나타나는 반응은 대개 두 가지로 수렴한다. ‘난 또. 어쩐지. 냄새를 모르겠더라.’ 하는 쪽과 ‘아니, 너가 베타라고? 왜?’ 도리어 묻는 타입. 이 또한 원빈은 또 솔직히 말한다. 몰라. 내가 베타인 게 왜?

 

‘아니 넌 좀…그렇잖아.’

 

좀 그렇다는 건 뭘까. 그게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도 되는 이유가 되는 걸까. 하도 자주 겪어서 이제는 무례하단 생각도 안 들었다. 일일이 기분 나빠했다면 인간관계가 없었을 것이다.

 

‘어쩌라고.’

 

원빈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솔직함이다. 내가 이렇게 생겨 먹은걸. 너네 편견에 맞춰, 너네끼리 입맛에 맞게 재단하는 것까진 내가 어쩔 수 없잖아. 진짜 어쩌라고.

 

원빈은 베타다. 원빈의 친구, 가족 등등 친밀한 사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베타에 속했다. 작고 아늑한 울타리다. 그럼 이 울타리를 조금 더 넓혀보자. 지인 또는 선, 후배, 이웃, 동기 등 사회생활 하는 박원빈의 울타리에는 또 다른 존재가 등장한다. 알파. 혹은 오메가.

 

대다수가 베타인 세상에서 그보다 희귀한 개체인 알파와 오메가는 매력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특출난 외모가 대다수라 티 내지 않아도 겉으로도 티가 났다. 그들의 삶은 재벌과 함께 드라마 단골 소재다. 드라마뿐일까? 애정이 기반이 되는 웹소설의 가장 인기 있는 설정이다.

 

이들 또한 이들만의 울타리에서 살아간다. 알파는 알파끼리. 오메가는 오메가끼리. 혹은 알파와 오메가끼리. 그들의 세계에 베타가 묶이거나, 또 베타의 세계에 그들이 묶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학교에서 만나고, 회사에서 만나고, 알바에서 만나고 자연스럽게 섞여 살지만 서로의 울타리가 명확하게 지어지는 이상한 구분법, 알파와 오메가 그리고 베타.

 

원빈으로 말하자면 살면서 오해를 숱하게 받아온 베타다. 어떤 점이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지 자신도 안다. 그래도 아닌 걸 어떡해. 알파인 척, 오메가인 척할 수도 없잖아. 오히려 오메가가 뭐고 알파가 뭐길래 원빈에게 그들을 보는지, 사람들의 편견이 우습다.

 

 

 

 

***

 

 

“박원빈.”

 

마지막 수업이 끝나면 최대한 빨리 집으로 가는 게 목표인 원빈을 누군가 불러 세웠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게 싫어서 계단으로 내려가던 원빈이 걸음을 멈췄다. 부른 이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계단 위에서 길쭉한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그 형’이라 지칭되었던, 전형적인 알파처럼 생겨 먹은 정성찬. 잘나고 잘났다는 말이다. 살면서 어려움은 안 겪어 봤을 것 같은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겼고, 존예 오메가 애인이 있다고 하기도 하고, 반대로 자기 취향 꼴리는 데로 바꿔가며 만난다는 말도 있고, 정성찬만큼 유명한 오메가 형이랑 학교에서 그 짓 했다는 소문을 장식처럼 달고 다니는 ‘그 형’. 마치 핀업걸처럼 학교에서 이름을 떨치는 정성찬.

 

긴 다리로 두 개씩 계단을 건너뛰어 원빈의 앞에 섰다.

 

 

“연락 안 봐?”

 

“연, 연락이요?”

 

“디엠 보냈잖아.”

 

“아…”

 

 

뭔가 알람이 떴던 것 같다. 확인은 안 했지만.

 

 

“나 피해?”

 

“에?”

 

 

제가요? 너를요? 왜요? 가 ‘에?’ 단어 하나에 담겼다. 그걸 어떻게 해석했는지

 

 

“박원빈. 나 피하네.”

 

 

정성찬이 멋대로 결론 내렸다. 똥군기 사라졌다고 해도 선배는 선배다. 그것도 제일 깍듯하다는 바로 한 학번 위의 선배. 지레 겁먹고 뻣뻣하게 굳은 원빈을 보고 성찬의 눈가가 부드럽게 접혔다.

 

 

“장난이지. 마지막 시험 언제라고 그랬지?”

 

 

말한 적 없다. 애초에 그런 말 할 사이가 아니었으므로. 성찬은 언젠가 들었던 것처럼 굴었다.

 

 

“저는 금요일이요.”

 

“난 목요일.”

 

 

어쩌라는 걸까. 정성찬 앞에서는 원래도 빠르지 않던 생각이 더 느리게 굴러간다. 정성찬의 눈으로 보면 꼭 그의 말을 기다리는 것처럼. 혹은 처분을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 시작해야지.”

 

 

선한 눈매를 접으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정성찬을 보면 그를 따라다니는 그렇고 그런 소문들은 통 믿기지 않는다.

 

 

“동방이 편하겠지? 금요일 시험 끝나고 봐.”

 

“....네에.”

 

 

길게 늘어지는 대답이 성찬에게 닿지 못했다. 시간을 확인하더니 곧 시험 시작이라고 허겁지겁 계단을 다시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세 개씩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정성찬과 박원빈은 N대 게임 제작 동아리 ‘아케이드’ 소속이다. 누가 동아리 활동을 해? 라는 시대 흐름을 따라 대부분의 동아리가 존립 위기를 겪는 상황 속에서 원빈이 속한 동아리는 ‘게임’이란 특수성 덕분인지 창단 이래 몸집을 계속 불려 왔다. 현재는 꽤 큰 중앙 동아리로 자리 잡았다.

 

게임 제작 동아리지만 가입 제한이 없어서 부원들은 저마다 다양한 동기를 가지고 가입했다. ‘제작’ 동아리 설립 취지에 맞게 게임 만들고 포트폴리오 쌓아서 게임 회사 취업 노리는 일부와 게임에 미쳐 ‘게임’ 이름만 보고 들어온 겜돌이 대다수, 또 왜 들어왔는지 모르겠는 소수까지, 다양했다.

 

성찬은 왜 들어왔는지 모르겠는 소수에 속했다. 게임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또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무지성으로 동아리까지 들 만큼 게임에 미친 인간은 아니고, 어울리는 친구들 보면 동아리에서 개발 좀 한다하는 선배들이고, 또 본인도 제작에 참여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다르게 게임 회사가 목표는 아니라고 했다.

 

가만 보면 애들 모아서 축구하러 나가는 날이 더 많아, 축구 멤버 모으려 동아리 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원빈과는 접점이 없다. ‘안녕하세요.’ ‘안녕’이 둘 사이 제일 많이 오간 대화다. 그것도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다.

 

원빈으로 말하자면 아케이드 게임을 좋아해서, 만들고 싶다는 열망까지 품게 된, 부끄러워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동아리 부원 중 한 명이다. 원래대로라면 정성찬과 박원빈, 단둘이서 만날 일은 없어야 했다.

 

 

‘나랑 하자.’

 

 

주어가 빠지니 어딘가 이상한 제안이었다. 제안받은 원빈의 표정이 묘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 생각 다 똑같다. 주변에서 다다닥 시선이 꽂혔다. 원빈은 예술관 흡연구역이자 과제에 지친 좀비들의 도피처로 불리는 브루클린 벽(붉은 벽돌 빼고는 브루클린과 전혀 상관없는) 앞에 앉아 고뇌를 씹는 중이었다.

 

미국의 게임 회사가 아케이드 게임 공모전을 열었다. 원빈이 조심스럽게 동아리에 알리고 같이 할 멤버를 구했다. 당시에는 하기로 했던 부원들이 막상 닥치니까 죄다 안 하겠다고 파투 놨다. 아무래도 인기 없고 올드한 장르라 공모전 해봤자 경력이 안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혼자 할 수 있을까. 어떻게든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원빈은 방법을 고민했다. 단순한 게임이니까 하려면 할 수야 있다. 그러나 어찌어찌 완성해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기는 어렵다. 어떡하지. 이마 부여잡고 고뇌 중인 박원빈 앞에 정성찬이 치트 코드처럼 나타난 것이다.

 

 

‘뭐, 뭘요?’

 

‘나랑 만들어.’

 

‘형이랑. 저랑. 둘이 게임을 만들자고요?’

 

 

또박또박 큰 소리로 질문을 돌려줬다. 응. 해맑은 대답이 돌아왔다. 힐끔대던 시선들이 흥미를 잃고 원래의 동태 눈으로 돌아갔다.

 

 

‘왜? 나는 못 믿겠어?’

 

‘에? 예? 아니요?’

 

 

믿음직스럽지 않을 리가. 정성찬 전공이 컴공이다. 컴공 전공이라고 다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일단 정성찬은 만들었다. 십 대부터 간단한 게임을 제작해 왔고, 작년에 나간 공모전에서는 수상한 경험도 있다.

 

정성찬과 함께라면 둘이 못 만들 것도 없다. 인디 게임에서 2인 제작자는 흔하다. 더구나 아케이드 게임은 단순하고 집중해야 하는 부분이 명확해서 두 명이 충분히 가능했다. 혼자라도 하려던 원빈에게는 분명 좋은 소식이다. 그럼에도 선뜻 대답할 수가 없어 입술을 말아 물었다.

 

왜? 나랑?

 

의문이 제일 먼저 들었다. 이유는 많다. 정성찬과 박원빈은 보통의 알파와 베타가 그러하듯 서로 접점이 없다. 어색하고, 친하지 않으며 그걸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도 없다. 더구나 성찬은 포트폴리오 쌓기가 목표도 아니고 그의 친구들은 안 한다고 도망간 상황이다.

 

그런데 왜 정성찬은 남았을까?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여러 명 중 한 명이면 모를까, 어색한 사람과 단둘이 뭘 하는 건 성격상 어렵다. 거절할 리가 없다는 듯 자신감에 차 은은하게 웃는 정성찬. 그와 함께 할 때 따라올 말들까지, 거슬리는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하지만 바보 천치라도 안다. 이건 기회다. 다섯 이었다가 둘이 된 건 아쉽지만, 혼자보단 둘이 낫다.

 

 

 

 

***

 

 

마지막 시험이 끝났다. 성찬이 제멋대로 잡은 약속을 지키러 원빈은 피로한 몸을 이끌고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그 형, 정성찬과 공모전을 함께 하기로 했다.

 

‘아케이드’ 동방은 햇살이 잘 들지 않아 낮에도 불을 켜야 하는 구석진 곳에 있었다. 처음 동아리가 생길 당시인 2000년 대에는 게임 인식이 좋지 않아 외진 곳을 배정받았다고 했다. 형광등을 켜도 어딘가 침침한 기분이 드는 음침한 복도. 그 못지않게 침침한 색깔의 문을 열었다.

 

뭐, 뭐야?

 

위화감을 느낀 원빈이 뒷걸음질 쳤다. 흰색 백열등 대신 은은한 할로겐 빛이 동방에 내려앉았다. 복도로 나와 다시 문을 확인했다. 목적지가 맞다. 제대로 찾아왔다.

 

동방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뜬금없는 스탠드 조명 하나가 자리 차지하고 있다. 빨간 기둥에 녹색 전등갓을 올린, 미장센을 중시하는 한국 영화 감독의 작품에 나올 법한 조명이다. 출처도 모르고, 오래된 게임 포스터와 동아리 일정과 공모전 일정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동방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서 혼자 튀어서 그런 걸까? 원빈은 볼 때마다 어딘가 야릇하다고 느꼈다. 그 조명이 켜진 장면을 오늘 처음 봤다.

 

 

“백열등은 눈 아파서”

 

 

다시 문이 열리며 성찬이 나타났다. 대수롭지 않게 설명을 한 성찬이 원빈을 안으로 잡아끌었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아졌다. 반사적으로 뒷걸음쳤더니 등이 문에 닿았다. 마주한 정성찬의 얼굴이 지나치게 가까워 저절로 숨을 삼키게 된 그 순간, 성찬의 팔이 오른쪽 귓가를 스쳤다. 벽을 짚는 것과 동시에 딸각, 스위치가 눌렸다. 소란스럽게 깜박이며 백열등이 켜졌다. 가까이에서 마주한 성찬의 홍채는 진한 갈색빛이 났다.

 

 

“이리와 앉아.”

 

 

얼빠질 뻔했던 원빈이 정신을 차렸다. 동방 가운데 놓인 커다란 작업 테이블로 돌아간 성찬이 원빈을 불렀다. 얼치기처럼 쭈뼛대다 그의 반대편 의자를 빼서 앉았다.

 

 

“걱정돼?”

 

“뭐, 뭐가요?”

 

“나랑 해서?”

 

“아니요? 아닌데요?”

 

“그럼 땅에 뭐 떨어졌어?”

 

 

내도록 바닥을 보고 있던 원빈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것도 아닌데요.”

 

 

어딘가 불퉁한 대답을 들은 성찬이 피식 웃으며 안경을 썼다.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뜻이다.

 

망설이던 원빈이 미안할 정도로 성찬은 진지했다. 원빈이 만들고자 하는 게임의 목표를 듣고 중간중간 방법을 제시했다. 성찬은 게임 만드는 과정 자체에 관심이 있어서 어느 장르든지 좋다고 했다. 말이 잘 통해서 첫 만남에서 이야기가 길어졌다.

 

그날 저녁까지 함께 먹었다. 동아리 활동하며 나눈 대화보다 하루 동안 나눈 대회가 훨씬 많았다. 학교 앞 식당에서 돈가스 먹으며 내내 웃었다. 동방에서 원빈의 기획을 진지하게 들어 주던 정성찬은 밥집에서는 시답잖은 장난을 쳤다. 문제라면 그게 박원빈 취향에 기가 막히게 들어맞아 계속 웃음이 터졌다는 점이다. 15분 컷인 돈가스 한 접시를 거의 1시간 가까이 먹었다. 한 학기 넘도록 이어지던 애매한 거리감이 그날 단번에 줄었다.

 

방학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공모전 준비에 들어갔다. 방학이라 빈 동방은 두 사람의 아지트가 됐다. 다행히도 이상한 조명이 다시 켜지는 일은 없었다.

 

정성찬과의 작업은 수월했다. 수월하다 못해 편했다. 원빈이 아트웤을 짜고 비주얼 부분을 구체화하면 성찬이 원빈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구현해 냈다. 원빈은 열심히 도트 찍고 성찬은 열심히 코드 조졌다는 말이다. 꽤 괜찮은 분업이었다.

 

파일 주고받으며 각자 작업해도 되는데 어쩌다 보니 매일 동방에서 만났다. 자주 보면 사람은 정이 들 수밖에 없다. 대화하다 보면 정성찬이 원빈처럼 자취한단 사실을 알게 되고, 아직 친구들은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는 꽤 사적인 사실도 알게 됐다. 게임보다 축구를 좋아하는 줄 알았던 잘못된 정보도 수정됐다. 축구만큼 게임도 좋아한다고 했다. 정성찬이 꽤 웃긴 사람이란 것도 알게 됐다. 수시로 웃다 보면 배고프니까 밥을 함께 먹게 됐다. 성찬이 좋아하는 학식 메뉴를 알게 되고, 학교 앞 어느 식당이 단골이며, 그중에도 제일 많이 가는 곳은 맥도날드임을 알게 됐다. 아주 자연스럽게.

 

 

“오늘은 안 되겠다.”

 

 

겨울 칼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다. 뜨끈한 국물 당겨서 저녁으로 김치찌개를 먹으러 온 참이다.

 

 

“소주 한잔할까? 김치찌개는 소주지.”

 

 

얼큰한 국물 한 입 뜬 성찬이 간절하게 원빈을 봤다. 커다란 눈이 간절하게 닿아왔다. 이런 눈으로 사람 꼬시면 다 들어 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약간 반칙 같은 눈이다.

 

 

“미안. 술 안 마셔?”

 

 

말없이 빤히 보기만 했더니 성찬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건 아닌데…. 형도 소주 마시네요.”

 

“대학생이 소주 아니면 맥주지.”

 

“와인이나 위스키 마실 것 같아서요.”

 

“너도 파스타나 스테이크 좋아할 것 같아.”

 

 

김치찌개는 원빈의 선택이었다. 원빈이 메뉴를 고르는 날이면 늘 한식을 먹었다.

 

 

“그거 편견이에요. 저는 한식파 거든요.”

 

“알지. 우리가 밥을 몇 번을 같이 먹었는데. 학기 중 애들이랑 밥 먹은 것보다 요즘 너하고 먹은 게 더 많을걸. 박원빈이 뭐 좋아하는지 다 알지. 소주도 마실 거지? 시킨다?”

 

 

네에. 착하게 대답이 나왔다. 성찬은 별 뜻 없었을 텐데 듣는 박원빈은 이유 모르게 부끄러웠다.

 

둘 사이에 딱 소주 한 병이 놓였다. 둘 다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라 양이 느리게 줄었다. 술의 가장 큰 착각. 술잔을 부딪히면 친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특별한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잘도 대화가 이어졌다. 분위기로 보면 한 병 더 시켜야 할 것 같았다. 성찬이 먼저 말 꺼냈다면 그러자 했을 텐데, 박원빈이 뭐 좋아하는지 다 안다면서 성찬은 무언가를 참는 분위기였다.

 

 

“헤어지기 아쉽다.”

 

 

하얀 입김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계산하고 나와서도 가게 앞에서 못 헤어지고 머뭇거리다 결국 성찬의 입에서 나왔다. 술을 더 시켜야 하지 않을까, 했던 원빈의 생각도 이 자리가 끝남이 아쉬워서였다. 이 사람과 조금 더 있고 싶다는 아쉬움.

 

아쉬워? 왜?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쉬워서 뭐 어쩔 건데? 추위에 발그스름한 볼을 한 채 약간의 술기운에 젖은 느슨한 분위기. 딱 위험한 상황이다. 알파와 베타만 아니었다면.

 

 

“이만 들어가요. 늦었다.”

 

 

원빈은 이쯤에서 자리를 정리하기로 했다. 별도 없는 밤하늘을 보며 성찬이 희미하게 웃었다.

 

 

“미안. 추운데 내가 너무 붙잡았지. 들어가자.”

 

 

몽글몽글 쏟아진 입김이 덧없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직접 겪은 정성찬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듣던 정성찬과는 달랐다. 알파의 그거, 이상하고 무서운 위화감이 없었다. 베타라고 원빈을 무시하지도 않았다. 끝내주는 오메가 애인도 없었다. 체감상 학기보다 더 자주 학교 오는 것 같은데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정성찬 대부분의 시간이 박원빈과 묶여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성찬은 늘 원빈보다 일찍 도착해서 노트북 들여다보고 있었다. 의외로 프로그램 만지며 진심으로 재밌어했다.

 

친근하게 다가와서 원빈도 빨리 성찬을 친근하게 대할 수 있었다. 그가 가진 힘이다. 성실하고 재밌고 좋은 사람이 발휘하는 힘이다. 원빈이 직접 겪은 정성찬은 전해 들었던 편견이 부질없다고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

 

 

겨울 한파가 몰아치며 급격히 날이 추워졌다.

 

추위는 사람의 몸은 물론 생각도 둔하게 만들었다. 동방에서는 손끝이 시려서 핫팩이 필수다. 평범한 겨울 추위에도 그럴진대 한파가 덮친 날 동방이라니,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이불 안에서 꼬물대며 추위 싫다고 반복하던 원빈이 폰을 들었다. 마침 성찬과 연락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술 마시고 헤어진 날, 아쉬움은 서로 주고받는 메시지로 발전했다. 집에 잘 들어갔냐는 연락을 시작으로 자정이 넘도록 폰을 잡고 놀았다. 그 후로는 별 내용 없는 연락이 이어졌다. 

 

[추워서 동방 가기 싫어요.]

 

이 또한 그런 맥락에서 무심코 나온 말이다.

 

[우리 집 올래? 학교에서 가까워]

 

놀란 원빈이 이불을 박차고 튀어나왔다. 다시 한번 메시지를 봤다. ‘나랑 할래?’ 같이 공모전 준비하자고 뜬금없이 정성찬이 나타났던 그때가 떠올랐다. 뇌도 추위를 타는 게 분명하다. 원빈은 아주 쉽게 가겠다는 답을 했다.

 

설마 별일이야 있으려고. 알파와 베타 사이에.

 

정성찬의 집은 학교에서 가까운 지하철역 근처 아파트라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소형 평수에 혼자 산다는 정성찬의 집은 오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동방에 있는 정체 모를 조명의 출처가 여기가 아닐지 잠깐 의심이 스쳤다. 빨간색 러그와 검은색 소파. 미드센추리모던 스타일의 소파 테이블과 그와는 상반되는 아방가르드한 장식장. 소파 옆, 주방 식탁 옆은 물론 집 크기에 비해 좀 많다 싶게 곳곳에 놓인 크기가 제각각인 조명들까지. 부담스러워 앉을 수가 있어야지.

 

 

“본가에서 안 쓰는 거 모아와서 그래. 엄마 취향, 아빠 취향, 형 취향 다 섞여 있어. 많이 어색하지?”

 

 

성찬이 민망해했다.

 

 

“영화…같아요. 집이.”

 

“이상한 영화?”

 

 

원빈이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는 전체적으로 점프 아크가 어색한 것 같아요.”

 

“그래?”

 

“봐요. 이렇게 뛰잖아요. 지금은.”

 

 

원빈이 화면 속에서 폴짝폴짝 뛰는 캐릭터 움직임을 손가락으로 따라 했다. 옆에 앉은 성찬은 콜라를 마시며 눈으로 손가락을 쫓았다.

 

넓은 소파 테이블이 둘의 책상이 됐다. 성찬이 커다란 모니터를 옮겨와 노트북과 연결했다. 같이 모니터를 봐야 해서 자연스럽게 소파를 등받이 삼아 러그 위에 나란히 앉았다.

 

게임은 디테일을 잡아가는 과정에 돌입했다. 순조로운 진행이다.

 

 

“여기서 이렇게, 껑충 뛰는 반응이면 좋겠어요.”

 

 

원빈이 주문하자 성찬이 키보드를 두드려 값을 조정했다. 그래도 영 어색한 느낌이 남았다. 주변을 둘러본 원빈이 일인용 검은 소파 위로 올라갔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뛰잖아요.”

 

 

몸소 시범을 보이며 빨간 러그 위로 뛰어내렸다. 뭐 하는지 지켜보던 성찬이 캐릭터 흉내 내는 원빈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웃지만 말고요.

 

 

“껑충 느낌으로 뛰면 좋겠어요. 이렇게.”

 

 

게임 캐릭터처럼 두 팔을 위로 올리고 무릎을 접으며 폴짝 빨간 러그로 뛰었다. 그게 껑충 이야? 깡충 아니야? 급기야 성찬이 배를 쥐고 바닥을 굴렀다. 그렇게 웃길 일인가? 원빈이 멋쩍게 뒷머리를 만졌다.

 

 

“왜 웃어요.”

 

“귀여워서.”

 

 

괜히 물었다. 못 들을 걸 들은 사람처럼 원빈은 애꿎게 귀만 괴롭혔다.

 

민망한 시범은 효과가 있었다. 직접 본 후 성찬은 원빈이 원한 바를 뚝딱 구현해 냈다. 원빈의 컨펌 후에 각자 다음 작업으로 넘어갔다. 성찬은 버그 확인을, 원빈은 맵수정에 들어갔다.

 

 

 “재밌어?”

 

 

언제부터였을까. 고개를 들자, 턱을 괴고 기대앉은 성찬의 눈과 마주쳤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업에 빠져있었던 모양인지 어느새 성찬의 어깨 너머로 석양이 내려앉았다.

 

 

“재밌어 보여서.”

 

“…. 재밌어요.”

 

“게임 만드는 게 좋아?”

 

“만드는 것보다 아케이드 게임 자체를 좋아해요.”

 

“어떤 점이?”

 

“단순해서요.”

 

 

단순? 성찬의 눈에 의문이 깃들었다. 원빈은 기지개를 켜며 목을 돌렸다. 숙이고 있던 목이 뻐근했다.

 

 

“이번 스테이지만 생각하면 되잖아요. 전략이나 복잡한 계획 안 세워도 순간만 집중하면 이 스테이지를 깰 수 있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잖아요. 그 단순함이 좋아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니까요.”

 

 

의문이 해소되기는커녕 더 해진 듯 성찬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릴 때 집 근처에 문방구 앞에 작은 게임기 두 대가 있었다. 원빈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힘들 때마다 그 작은 기계 앞에서 위로받았다. 형이랑 싸웠을 때, 엄마에게 혼났을 때, 육상을 시작했을 때, 또 그만뒀을 때, 짝사랑이 짝사랑으로 끝났을 때, 성적이 안 나와서 고민일 때,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문방구 앞 작은 기계에 앉아 스틱을 잡고 단순한 세계를 격파해 나갔다. 낡고 오래된 문방구가 사라지기 전까지 랭킹 1위는 늘 BIN이 새겨져 있었다. 아직은 성찬에게 들려주지 못할 이야기다. 조금 더 친해지면 할 수 있을지도.

 

원빈이 무릎을 모으고 볼을 기댔다. 시간이 체감되자 피로가 몰려왔다. 

 

 

“기운 빠졌네. 박원빈.”

 

“따뜻해서 녹을 것 같아.”

 

 

후드티는 진작 벗었다. 안에 받쳐 입었던 하얀 반소매 티만 남았는데도 후덥지근했다. 뇌는 추위도 타고 더위도 타는 게 틀림없다. 나른함을 이기지 못한 원빈이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 눈이 저절로 감겼다. 잠깐만 쉴게요.

 

빠르게 키보드 눌리는 소리가 귓가에 내려앉고, 집안에 스며있던 은은한 향수 향이 코끝에 감겼다. 조심스러운 손길이 이마를 스쳤던 것도 같다.

 

갑자기 눈이 뜨였다.

여긴 어디지?

아, 성찬의 집.

 

제각각인 조명들이 켜져 있어 놀라기도 잠깐, 더 놀라운 모습을 마주하고 숨을 삼켰다. 성찬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원빈을 따라 테이블에 기대 잠든 것 같았다. 속눈썹 흔들림까지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그때 감겨 있던 눈이 스르륵 뜨였다.

 

누구라도 꼬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예쁜 눈. 성찬의 눈이 나른하게 깜박였다. 고양이 눈인사를 따라 하듯이 성찬의 깜박임을 따라 원빈도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의미를 담고 건넨 행동은 아니었다. 그러나 의미가 해석되기도 하나보다. 성찬이 더 가까워졌다. 내리뜬 눈이 향한 곳은 명확했다. 입술.

 

피할 수 있을 만큼 아주 느리게, 시간을 들여 다가왔다. 마른 피부가 먼저 스치고 조심스럽게 입술이 눌렸다. 건조한 표면 위로 낯선 온기가 번졌다. 목뒤로 커다란 손이 감김과 동시에 입술 사이로 젖은 혀가 파고들었다.

 

소름 끼치는 낯선 감각이었다. 놀란 원빈이 뒤로 물러났다. 젖은 입술을 닦는 원빈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갈래요.”

 

 

성찬은 별다른 말 없이 허리에 감은 손을 풀었다. 원빈은 그때야 자신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을 인식했다.

 

코트를 어떻게 입었는지, 신발을 제대로 신기는 했는지 기억이 없다. 찬 바람을 맞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어느새 성찬의 집에서 한참 걸어온 뒤였다.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달아오른 볼이 터질 것 같았다. 미쳤다. 나 오메가였어? 알파는 베타까지 홀려? 그 형이 알파라서 홀렸나?

 

도대체 왜?

정성찬이 왜?

 

근본적인 의문에 도달한다.

 

박원빈은 베타인데? 왜?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켰다. 어쩌면 정성찬이 소문과 같은 알파라서, 하다 하다 베타까지 손대는 알파일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봐왔던 좋은 사람 정성찬이 가면이고 사람들의 편견이 사실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리가. 그게 사실이라면 정성찬은 노력 대비 얻는 결과가 소박하다. 박원빈이 뭘 줄 수 있다고. 혼란스러웠다. 생각해도 답이 없다. 엉켜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복잡했다..

 

 

 

 

 

Stage2 오만

 

 

‘알파처럼 생겼는데 베타야.’

 

 

실물보다 박원빈에 관한 남들의 평가를 먼저 들었다.

 

알파처럼 생긴 게 뭐지? 성찬이 약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말을 꺼낸 이는 게임에 집중하고 있어 그런 성찬을 알지 못했다.

 

 

‘그래?’

 

 

지겹다. 이런 이야기. 관심 없다는 투로 돌려줬는데 상대는 반대로 성찬이 관심을 보인다고 해석했는지 말을 이었다.

 

 

‘어. 처음에 알파인지 오메가인지 내기까지 했다니까.’

 

 

사람을 두고 내기라…. 이건 좀 별로다. 풀어졌던 미간이 다시 구겨졌다.

 

 

‘그런데 베타래. 조금 시끄러워서 박원빈까지 알게 됐어. 돈 잃은 사람만 있고 딴 사람이 없으니까. ‘

 

 

들을수록 지루한 내용이다. 재미없고.

 

 

‘그때 박원빈이 그러더라. 어쩌라고.’

 

 

성찬이 실소를 흘렸다. 지금 딱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건 새롭네.’

 

‘그런가? 아무튼 조용히 지내는데 걔도 평범한 놈은 아니야.’

 

 

새로운 박원빈의 풍문은 그렇게 성찬에게 전해졌다.

 

그 뒤 실제로 만난 박원빈은 새롭긴 했다. 왜 그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동조하는 건 아니고.

 

 

‘그거 편견…. 아닌가?’

 

 

박원빈의 한마디에 건너편 테이블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오래간만에 잡힌 동아리 회식 자리였다. 참여 인원이 제법 돼 테이블 두 개에 나눠 앉았다. 성찬과 원빈은 학번이 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리가 나뉘었다.

 

문제는 박원빈네 테이블에 자리가 남아서 뒤늦게 합류한 고학번 하나가 끼면서 생겼다. 반기는 사람 없는데 이런 자리는 꼭 참석하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적당한 틈 봐서 돌려보내려고 성찬은 원빈네 테이블을 주시했다.

 

고학번은 아마도 알파. 자신이 그렇게 말하고 다녀서 다들 알파려니 해줬다. 툭하면 형질을 대화 주제로 꺼내 특별함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부류.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고 성찬의 입장에선 베타와 다를 바 없는 인물.

 

그날도 어김없이 형질자와 베타를 나누고, 거기에 박원빈의 베타답지 않음을 칭찬이랍시고 내뱉었다. 지켜보던 성찬이 슬슬 끼어들어야겠다고 판단했을 때쯤.

 

 

‘형은 베타처럼 생겼어요.’

 

 

입 꾹 다물고 낯가리며 앉아 있던 박원빈 입술이 느리게 열렸다. 하마터면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웃음 터트릴 뻔했다. 성찬은 볼 꽉 물고 웃음 참았다.

 

 

‘베타 나쁜 거 아니잖아요. 왜요? 형은 기분 나빠요?’

 

 

고학번의 구겨진 얼굴이 볼만했다. 더 있다가는 험악한 사태 벌어질 것 같아 그쯤 성찬이 끼어들었다. 동기들도 상황 파악하고 테이블 옮겨 어영부영 상황이 마무리됐다.

 

박원빈은 남들의 평가보다 직접 보는 게 훨씬 나은 사람이었다.

 

성찬은 알파다. 그냥 알파로 태어났으니 그런가 보다 산다.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났음을 딱히 의식하고 살지 않듯이 성찬도 자신의 형질을 딱히 생각해 본 적 없다. 태어날 때부터 알파였고 주변도 비슷했다. 알파라는 형질은 자연스럽게 주어진 조건일 뿐,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찬의 배경처럼 태어나보니 주어진 삶이었다.

 

자기 삶도 그냥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으니 당연히 베타의 삶도 생각해 본 적 없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는 주변에 베타가 없었다. 이후로도 정말 친한 친구들은 비슷한 애들끼리 모였다. 명절이나 집안 행사에 가족이 모여도 다 형질자라서 베타의 삶을 깊이 고찰 할 필요는 없었다.

 

적당히 즐겁고 적당히 요란한 삶이다. 십 대에도 남들의 눈과 입은 정성찬을 따라다녔다. 그 눈과 입에서 소문이 그럴듯하게 만들어졌다. 부풀려진 것도, 악의적인 것도 있었지만 그걸 접하더라도 사람들은 정성찬은 좋아했다. 상냥하게 웃으며 인사하면 성찬을 향했던 호기심은 쉽게 호감으로 변했다. 한마디로 존나 쉬웠다.

 

약간 난이도가 올랐을 뿐, 대학도 비슷했다. 고작 수백 명인 고등학교와는 비교 안 되게 규모가 확장된 사회다. 대가리가 컸다고 성찬을 따라다니는 소문도 각양각색 다양해졌다. 꼴에 성인이라고 더 노골적으로 진화했다. 어떤 종류는 성찬의 귀까지 들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실체 없는 소문은 정성찬을 규정짓는데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쓸모없는 것들이다.

 

자신감. 평온함. 거기서 파생된 약간의 지루함. 그럴 시기에 박원빈이 정성찬 앞에 등장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작은 흥미였다. 새로워서 흥미로웠다.

 

같이 공모전 준비했던 멤버들과 이번에도 공모전을 하게 되는 분위기였다. 성찬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다. 하면 재밌겠지만 참여한 애들이 귀찮은 기색이라 깨질 것 같았다. 고학년이 챙겨야 할 일이 한두 가지도 아니고.

 

자기 아버지 회사에서 짧은 인턴을 하자고 친구가 제안하기도 했다. 다만 그 친구가 오메가라… 응하고 있지 않을 뿐이지. 선택지는 많았다.

 

그러다 혼자 남은 박원빈의 소식을 들었다.

 

 

‘걔는 생긴 건 안 그래서 꽤 진심이란 말이야. 베타라서 절박한가. 그 얼굴에 알파나 오메가였음 지금쯤 난리 났을 텐데.’

 

 

같이 공모전 하기로 했다가 도망간 놈의 평가다. 박원빈을 향한 관심은 참 끈질겼다. 어지간히 눈에 띄는 모양이다.

 

 

‘나는 할래. 나 아케이드 게임 좋아해. 내가 할 거니까 너네는 하지 마. 말 바꾸기 없기.’

 

 

따라서 같이하겠다는 애들이 생길 것 같아 미리 못 박았다. 깊은 뜻이 있지는 않았다. 이번 기회에 박원빈을 가까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친해지면 좋고. 그 외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가까이 본 박원빈은 귀여운 성격이 화려한 외모에 가려진 경우였다. 들여다볼수록 호감이 생기는 사람이었고 길게 볼 수록 빛나는 아이였다. 예쁘고 빛나는 걸 보면 끌리고, 또 보고 싶고, 계속 보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다. 알파 오메가 베타 이전에 인간이므로 자연스럽게 성찬의 호기심은 호감으로 발전했다.

 

원빈도 같다고 여겼다. 성찬을 올려다보는 눈이 유난히 반짝였다. 성찬에게는 익숙한 눈빛이었다. 썸의 정석처럼 늘어난 연락. 둘만의 만남. 함께 있으면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헤어질 때는 아쉬웠다. 페로몬을 맡지는 못했지만, 서로를 향한 호감은 차고 넘친다고 확신했다.

 

 

“키스를 했어. 그런데 도망을 가는 건 뭐지?”

 

“연락도 안 되고?”

 

“어.”

 

“먹튀네. 정성찬 먹튀 당했냐?”

 

 

몇 분째 배달 앱 스크롤 내리며 신중히 메뉴 고르던 은석이 피식 웃었다. 공사다망한지라 꽤 오랜만에 성찬과 만났다. 만나서 들은 이야기가 제법 웃긴 이야기다.

 

 

“그럴 리가. 먹튀를 당해? 내가?

 

“동의하고 한 거 맞아?”

 

“당연하지. 동의 없이 키스를 어떻게 해?”

 

“그건 그렇지. 뭐 페로몬 맡으면 모를 수 없긴 하지.”

 

“페로몬 없었어.”

 

“뭐?”

 

“상대가 베타야.”

 

“에엥? 베타랑 키스를 왜 해?”

 

“왜 못해?”

 

“아니… 뭔 느낌이 있긴 해?”

 

“키스는 키스지. 좋은 사람과 하면 좋지. 안 좋은 키스도 있냐?”

 

 

박원빈과 키스는 좋던데…..

 

 

“나 보면서 그런 표정 짓지 마. 저쪽 봐.”

 

 

은석이 치를 떨며 징그러워했다.

 

 

“애매한데? 베타도 동의한 거 맞아?”

 

“맞아. 딱 키스 타이밍이었어. 거기서 안 하면 고자라고 소문나도 억울해 하면 안되는 분위기였어.”

 

 

은석이 갸웃했다. 말하고 보니 성찬도 뭔가 찜찜했다.

 

 

“보통 사귀는 사이에 키스하지 않냐? 아니면 키스하면 사귀던가. 우리야 필요하면 파트너 할 수도 있겠지만 베타들은…. 사귀지 않나?”

 

 

아! 깨달았다는 듯 성찬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은석이 폰을 끄고 자세를 바르게 잡았다.

 

 

“너 베타랑 연애할 거야? 가능해?”

 

“조선시대 살아? 알파 베타도 만나고, 베타 알파도 만나고, 베타 오메가도 만나고, 알파 알파도 만날 수 있는 세상이다.“

 

 

은석이 찡그리며 진절머리를 쳤다. 너랑 나? 손가락으로 이어보더니 토하는 시늉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찬은 오히려 머릿속이 또렷해졌다. 흐릿하던 시야가 선명하게 초점이 맞춰지는 느낌이다. 눈빛만으로는 원빈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페로몬을 전달할 수 없으니 명확하고 정확하게 마음을 전해야 했다. 박원빈 눈빛이 페로몬 뺨치는 눈빛이었지만, 성찬만의 오해일 수도 있다. 키스가 뭐야.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될 것 같은 눈빛이었지만, 그 역시 성찬만의 오해일 수도 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널 좋아할 거란 착각은 버려. 중학생도 아니고. 그건 너한테 호감 있는 오메가와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지.”

 

 

첫 거절을 경험한 성찬에게, 은석이 묵직한 한 방을 날렸다.

 

 

 

 

 

 

Stage3 ❤︎

 

 

[동방에서 기다릴게]

 

성찬의 집을 뛰쳐나온 이후 원빈은 대략 이틀, 만 하루 잠수 탔다. 아이러니하게 연락을 끊고 보니 새삼 성찬과 자주 연락했음을 깨달았다. 그와 주고받은 디엠 창이 끝도 없이 길었다. 통화를 한 시간 넘게 했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매일 이뤄진 만남도 이상했다. 정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을 기간이다.

 

혼란한 상태가 정리 될 때까지 더 길게 잠수 타고 싶지만, 저 내용만은 무시할 수 없었다. 시작한 게임 마무리가 남았다. 마감을 지으려면 만나야 했다.

 

겨울이라서 동방으로 향하는 복도가 유난히 컴컴하고 음침했다. 낡은 문 앞에 서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늘 성찬은 일찍 와서 노트북을 만지고 있었다. 크게 숨을 들이쉬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어….

 

비었다. 심호흡이 무색하게 성찬의 가방과 노트북만 있고 사람이 없다. 대신 이상한 조명이 존재감을 빛냈다.

 

 

“안 들어가?”

 

 

속삭임이 뒤에서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원빈이 몸을 돌렸다. 약하게 미소를 띤 성찬과 마주했다. 간지러운 뒷덜미를 손으로 감쌌다. 착각이 아니다. 분명 손가락이 닿았다 떨어졌다. 아아. 깨달은 성찬이 손을 들어 보였다.

 

 

“이게 묻어서.”

 

 

니트와 같은 색의 붉은 실이다.

 

 

“고, 고마워요.”

 

“들어가자. 춥다.”

 

 

머뭇거리는 원빈의 등 위로 커다란 손이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다시 봐도 성찬은 아주 평온해 보였다. 손에 들린 카페 캐리어에서 컵을 꺼내 원빈 앞에 한 잔, 자신의 앞에 한 잔 뒀다. 이상야릇한 조명이 성찬의 방을 떠오르게 했다. 거기에 성찬이 카페에서 사 온 커피도 문제다. 주인의 센스를 전시하며 한껏 분위기를 추구하는, 인스타에 데이트 장소로 소개될 것 같은 개인 카페 분위기가 동방에 흐른다. 역시 이상한 조명 탓이다.

 

성찬의 옷차림도 이상한 분위기에 한몫했다. 추위가 기승이라고 알람까지 온 날이건만 코트를 입었다. 검은색 긴 코트를 입은 180이 훌쩍 넘는 사람에게 시선이 사로잡히는 건 자연현상으로 쳐야 한다. 본인도 모를 리가 없다.

 

원빈은 패딩 둘둘 말고 나오지 않아 다행이라고 몰래 안도했다. 혹시 몰라서, 진짜 혹시 몰라서 겨울 가죽처럼 입고 다니던 롱패딩 대신 코트 입고 나왔다.

 

 

“아…저”

 

”그…저.”

 

 

서로의 말이 공중에서 부딪혀 흩어졌다.

 

 

“안 되겠어요. 이만 가볼게요.”

 

 

오는 게 아니었다. 복잡한 생각과 혼란한 심정이 채 정리되지도 않았는데, 정성찬을 만나서 뭘 어쩌자고. 후회 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알파에게 가슴이 뛰어 뭘 어쩌자고.

 

 

“왜? 키스해서?”

 

 

여유롭게 앉아 원빈을 보내줄 것만 같던 성찬이 손목을 잡아챘다.

 

 

“키,키, 키…키스라뇨? 뽀…. 뽀뽀죠.”

 

“아닌데?“

 

 

이대로 보낼 수 없다. 성찬도 답답해 미치기 직전이다. 어디부터 뭘 말해야 할지 어젯밤부터 생각하고 시뮬레이션 돌리고 필승 코트도 입었다.

 

그런데 박원빈과 마주하니 입이 안 떨어졌다. 평온하다는 원빈의 시선과 달리 속이 바싹 탔다. 한번 맞닿았다고 입술만 보였다. 미치겠다. 준비해 온 말들이 하등 쓸모없이 느껴졌다. 박원빈이 가버리면 쓸모없는 게 맞다. 숨결이 닿을 만큼 둘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뽀뽀는 이런 거고.”

 

 

짙은 그림자가 원빈의 얼굴 위로 드리웠다. 원빈의 눈이 저절로 감겼다. 촉촉한 살갗이 살짝 스치고 떨어졌다. 바닐라 립밤 냄새가 희미하게 남았다.

 

 

“우리가 한 건…”

 

 

이번엔 입술이 깊게 눌렸다. 거기까진 지난번과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성찬이 기다리지 않았다. 입술 사이로 혀가 성급하게 들어왔다. 깊숙이 숨이 엉켜 들었다. 힘에 밀리다 못해 원빈이 테이블 위로 주저앉았다. 성찬은 벌어진 무릎 사이에 자리 잡고 서서 원빈의 볼을 감싸 쥐고 입안을 헤집었다. 원빈이 따라가지 못해 숨을 쉬려 떨어지면 귓가에 입술을 묻었다. 목덜미로 이동하려는 성찬을 원빈이 잡았다. 갸름한 턱을 두 손으로 감싸 다시 입술로 이끌었다.

 

더 가면 안 된다. 키스로만 끝낼 수 없는 위험한 분위기다. 흩어지는 숨이 뜨겁다. 맡을 수는 없지만 성찬의 페로몬이 방 안 가득 찼을 것 같다. 허리 아래로 손이 파고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긴장감. 어깨를 움켜쥔 손. 허리에 감긴 다리를 더는 잡아당기지 않도록 힘줘야 했다.

 

혀가 엉기며 만들던 외설스러운 소리가 차츰 잦아들었다. 가까웠던 숨이 엇갈리며 거리가 생겼다. 타액으로 흠뻑 젖은 입술을 한 채 반쯤 감긴 눈을 마주했다.

 

 

“나한테 왜 그래요?”

 

 

울상 짓는 원빈의 젖은 턱을 성찬이 조심스럽게 쓸었다.

 

 

“난 베타에요.”

 

“난 알파야.”

 

“알파들은 원래 그래요?”

 

 

성찬은 잠시 눈을 감았다. 원래 그런 게 뭔지 모르겠다. 정성찬에게 박원빈을 만나고 일어난 일은 다 새로운 것뿐이었으니까.

 

 

“원래 그런 게 뭔데?”

 

“…….”

 

“가볍냐고? 아니.”

 

 

약한 흥분에 잠긴 성찬의 목소리가 낮게 속삭였다.

 

 

“박원빈이 좋아서 그래.”

 

“내가…좋아요? 베타인데?”

 

“안 돼?”

 

“형은 알파고, 나는 베타고. 우리 이러는 거 이상해요. 형이랑 얽히면 복잡해질 거예요.“

 

 

사람들이 편견이 싫다면서 정작 자신 안에 단단한 벽으로 쌓아둔다. 알파와 오메가는 짝이다. 서로가 맺어져야 한다는 강한 속설.

 

 

“편견이잖아.”

 

“그 편견이 우릴 복잡하게 하잖아요.”

 

“난 안 복잡해”

 

“형은 뭐가 그렇게 자신 있어요?”

 

“난 자신 있어. 그래서 싫어?”

 

 

이 남자는 뭐가 그렇게 자신 있을까. 오만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상하게도 그런 오만함에 가슴이 떨린다면 박원빈도 더는 가망이 없는 거겠지. 바람 빠지듯 웃음이 흘렀다.

 

기민하게 변화를 알아차린 성찬이 다시 다가왔다. 코끝이 스쳤다. 뒤이어 닿으려는 입술을 원빈이 손바닥으로 막았다. 

 

 

“잠, 잠깐만요. 게임 완성할 때까지는 일단 아무것도 안 돼요.”

 

 

말도 안 돼. 항의하는 성찬을 피해 원빈이 팔 밑으로 빠져나갔다. 잡으려는 손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벽에 닿았다.

 

 

“이상한 조명도 금지예요.”

 

 

뒤로 손을 뻗어 스위치를 켰다. 탁-백열등이 켜지고 본래 동방의 모습이 드러났다.

 

원빈이 앉아 있던 자리에 걸터앉으며 성찬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 섞인 웃음을 지었다. 귀여워서 봐준다. 끝나기만 해봐.

 

성찬은 자신 있었다. 지금은 조심스러운 박원빈이 성찬에게 깊게 빠져 난리 나게 할 자신.

이번 스테이지를 신속하게 깨고 다음 스테이지로 나갈 자신.

더 높은 단계를 오르고 올라 JSC 이니셜을 박원빈의 랭킹 창 제일 위 칸, 1위에 새길 자신이 있다.

 

원빈과 성찬이 주인공인 게임은 엔딩을 가늠할 수 없는, 아주 긴긴 게임이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