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Trial
by. 나나
박원빈 씨 되시죠? 여기 사인 하나만 해 주세요.
묵직한 상자 하나가 덜컥 품에 안겼다. 한 손으로 버겁게 글씨를 휘갈기며 묻는다. 근데 이거, 뭔가요? 우체국 직원은 덩달아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안에 든 건 저도 모르죠? 그럼 수고하세요. 무심한 답과 함께 우체국 조끼를 입은 남자가 떠나고, 원빈은 상자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보낸 사람엔 익숙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조심스럽게 상자를 칼로 갈라 열었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흰 편지봉투 하나와 손때가 묻은 구식 게임기 하나였다.
안녕, 원빈아. 로 시작되는 편지는 짧고 간결했다. 얼마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연락 못 해서 미안. 아프지 않고, 편하게 가셨어. 가현리 집 정리하다가 발견해서 보내. 그 애가 꼭 너한테 보내달라고 하더라고. 그럼 건강히 잘 지내.
접수증을 적어주던 동그란 글씨체는 변함이 없었다. 원빈은 편지지를 내려놓고 상자를 활짝 열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은 본체를 쓸어봤다가 먼지가 뽀얗게 쌓인 게임기의 컨트롤러를 들어 손에 쥐어본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난데없이 코끝이 매웠다.
꼭, 열여덟의 여름으로 돌아간 것처럼.
TIME TRIAL
“야. 박원빈. 안 덥냐?”
풀썩 엎어진 마른 팔을 건드는 손길은 용준이었다. 꺼져. 귀찮게 굴지 말고. 남자애들 사이에서 꺼지란 말은 위협 축에도 못 꼈다. 엎드려서 웅얼거린 말에는 더욱 그렇다. 곱게 말을 씹어 먹은 용준이 앞에 앉았는지 달달거리는 선풍기 소리는 나는데 바람이 영 시원찮다. 원빈이 끝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가라고, 쫌.”
“6월인데 뜬금없이 춘추복이야. 교복 안 빨았냐?”
“가만히 있으면 안 더워.”
“그거 우리 할머니가 자주 하는 말인데.”
방금 점심을 먹고 와서 에너지가 넘치는지 귓구멍이 막혔는지 용준은 통 말을 듣지 않았다. 나라고 더운데 춘추복 입고 싶어서 입겠냐. 속으로 꾹꾹 말을 눌러 담으며 손사래를 쳤다. 야야. 재밌는 거 있어. 일어나 봐. 지금 애들 다 난리야. 용준이 원빈의 손목을 이끌었다. 용준의 뒤로 보이는 앞쪽 창문에 반 애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뭔데, 또.”
“그 형. 또 어떤 여자애가 찾아옴.”
“…….”
이제 익숙해질 때도 안 됐나. 매번 저렇게 호들갑인가 모르겠다. 원빈은 깊게 한숨을 쉬고 일어나 뒤쪽에 빈 창문 앞에 비스듬히 섰다. 가현 여고 교복이네. 식상하다. 하얀 반팔에 체크무늬 치마를 입은 단발머리 여학생 앞에 등을 지고 선 남학생을 본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안 됐나. 뭘 저렇게 매번 공손하게 받아주나 모르겠다.
“야야. 박원빈. 방학하면 동해 가자.”
“뭐래.”
원빈은 운동장 한편에 선 두 사람을 계속 내려다보며 말했다. 눈이 좋지 않아서 여자애 이목구비까진 잘 안 보였다. 얘기가 길어지나. 예쁜가.
“가자. 정태네 형이 경포대에 민박 잡는대. 거기 가면 서울서 온 대학생 누나들도 많다더라.”
“여기 산다고 하면 있던 여자도 도망가.”
“야, 저 형은 여기 사는데도 저렇게 여자가 꼬이는데?”
“저 형이랑 가든가.”
그리고 너희 집 염전 하지 않냐? 염전을 하려면 기본 전제 조건 알아? 바다가 지천인데 동해는 무슨. 쏘아대듯 하는 말에 용준이 입을 꾹 다문다. 이 깡촌에서 낭만 찾겠다고 경포대까지 가서 헌팅이라. 뜬구름 잡는 얘기였다. 애초에 서울 사람이 여기 사람을 왜 만나. 원빈은 운동장의 한 쌍이 인사하며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곤 집요하게 붙잡는 용준의 손길을 뿌리쳤다.
“저 형은 안 친하니까…그러지 말고 가자. 어? 네가 그래도 우리 중엔 와꾸 대장인데.”
자리로 돌아온 원빈에게 용준이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야. 내가 이름은 용준이지만 용준 와꾸는 아니니까 원빈 이름에 원빈 와꾸인 너한테 부탁하는 거 아니냐. 어? 원빈아. 제발. 언제는 스무 살 되면 둘이 손잡고 가서 개명신청 하자더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엔 콧방귀가 제격이었다.
“아니면 네가 저 형한테 한 번 물어봐 주면 안 되냐?”
“뭐?”
“보건소면 너네 집 근처잖아.”
꺼져라. 원빈이 필통을 조심스레 쥐었다. 용준은 마른 몸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슬슬 뒷걸음질 쳤다. 진짜. 혹시 마주치게 된다면 어떤지 물어나 봐줘. 된다고 하면 내 번호 알려주고. 못 참고 일어서려는 찰나 예비종이 울렸다. 용준이 원빈을 향해 두 손을 모아 흔들었다. 저 새끼가 바다 수영만 못 했어도 콱. 원빈이 셔츠의 소매 끝으로 그새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냈다. 덥다. 회전으로 돌아가는 선풍기가 만들어내는 바람은 초여름의 온도를 견뎌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원빈은 더위에 팔을 걷고 싶어질 때면 고집스럽게 소매에 덮인 손목을 매만졌다. 여름. 일 년 중 가장 두려운 시기가 어김없이 돌아오고 말았다.
*
[가현고등학교 42기 정기 동창회 알림]
업무 마무리 중 울린 메시지에 힐끗 시선이 갔다. 또 일 년이 갔구나. 원빈은 ‘안녕하십니까, 졸업생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메시지를 눈으로 훑으며 생각했다. 딱히 내키진 않았지만 참여하지 않는다고 했다간 몰매와 같은 잔소리를 피할 수 없을 거였다. 함께 전송된 링크로 들어가 참여한다는 답변을 제출하자마자 용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물귀신 같은 놈.
-야. 박원빈.
-어, 간다고 보냈어.
-어? 웬일?
그건 네가 거의 10년 가까이 나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원빈이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엄연히 회사엔 지켜야 할 데시벨이 있는 법이었다.
-나 근무 중이야. 갈 테니까 끊어.
-아직 퇴근 전이야? 우리 반 애들 전화 돌려야겠다. 고생해라.
-엉.
원빈은 용준에게 시달릴 반 애들이 심히 걱정됐다. 감투가 그리 좋을까. 일련의 상황이 잘 기억나는 건 아니었지만 용준이 가현 고등학교의 전교 부회장을 역임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졸업식 때 반 애들 앞에서 일 년에 한 번씩 동창회를 열겠다고 선포한 것도 용준이었다. 그게 아직까지 이어질 줄 그땐 몰랐다.
용준에겐 귀찮은 듯 대꾸했지만 이제는 다들 가현리를 떠나 타지에서 삶을 이어가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한 교실에서 다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급식을 먹던 친구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본인의 인생을 꾸려가고 있는 얘기를 듣는 것도 즐거웠고, 일 년에 딱 하루 만나 그 시절의 추억을 함께 떠올릴 수 있다는 것도 의미 있었다. 누구 하나가 에피소드 하나로 물꼬를 트면 그게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인 것처럼 모두가 열여덟 소년이 된다. 신기한 일이었다. 뭉클하기도 했다.
올해는 유독 시간이 빨리 흐른 느낌이었다. 해가 갈수록 그렇다. 연초부터 프로젝트가 연달아 몰아치는 바람에 정신을 차리니 반팔을 입고 있었고, 하반기에는 출시한 신작의 버그 수정과 뒤치다꺼리를 하며 보냈다.
분명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은데 돌이켜 보면 이뤄낸 것이 없는 느낌이 든다. 이건 비단 원빈뿐만이 아니라 연말을 앞둔 사회인이라면 으레 느끼는 감정일 거였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수많은 밤 녹초가 되었나. 원빈은 퇴근 시각을 5분 남기고 도착한 상사의 메시지에 한숨을 폭 내쉬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도 여간 고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원빈은 백팩을 앞으로 메고 퇴근 시간 이후에도 미어터지는 신분당선에 몸을 실었다. 네모 칸 안의 모두가 지친 몰골이었다. 셔플로 돌려둔 음악을 들으며 ‘기대지 마시오’ 스티커가 붙은 문에 몸을 붙였다. 오늘은 노래도 축축 처지는 우울한 발라드였다.
원빈은 성인이 될 때까지 가현리에 살았다. 그 뒤로는 서울의 한 대학 근처 원룸에 살았고, 지금도 그 근방 어디매 거주 중이었다. 빡센 출퇴근에도 회사 근처로 거처를 옮기지 않는 이유는 원빈이 워낙 겁이 많고 익숙한 것만 찾는 타입이어서였다. 대학이 아니었다면 서울에 올 일도 없었다. 늘 가던 곳만 가고 먹던 것만 먹는 게 편했다. 용준을 그렇게 질색하면서도 용준과 가장 자주 만나기도 했다.
새롭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들은 원빈을 불안하게 했다. 안정적으로 바로잡아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공대를 졸업하고 프로그래머로 일하게 된 것도 그런 성격이 한몫했다.
원빈은 본인이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을 싫어했다. 상당수의 경험에서 우러난 산물이었다. 대부분 자기 의사 결정권이 없던 미성년의 일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날들에 비하면 만원 지하철과 컴퓨터 속의 오류는 간단한 편이었다. 그땐 모든 게 변수였다. 그래서 낯선 감정이 너무나 쉽게 피어났다.
캄캄한 집으로 돌아온 원빈은 가방을 내려놓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TV 앞 누런 박스 하나가 깔끔한 집의 미관을 해치고 있다. 벌써 한 달째였다. 저걸 왜 나한테 보낸 거야. 마지막으로 떠안은 폭탄을 넘길 곳이 없어 곤란했다. 낡은 물건일 뿐인데 버리자니 쉽지 않았다. 그 안에 너무 많은 기억과 시간이 오래 침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편지를 읽자마자, 아니 내용물을 확인하자마자 버리려고 박스에 테이프를 붙이기도 했다. 그대로 들고 나가 입주민들이 놓고 간 재활용 쓰레기봉투 옆에 내려놓기까지 했다. 그런데 덩그러니 놓인 박스를 보니 그게 마치 제가 덩그러니 버려진 것처럼 느껴진 거다. 그냥 두고 돌아서질 못하겠어서 다시 품에 안고 돌아왔다. 그 이후 밀봉된 우체국 택배 박스는 TV 앞에 줄곧 놓여 있다. 다시 뜯어볼 자신은 없고, 아직은 매몰차게 버릴 맘도 들지 않았다. 청승이었다.
인제 와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원빈은 굳게 다물린 박스를 오래 흘겨보았다. 지긋지긋하게 원망스러운 마음은 쉬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
어제 한바탕 했으니까 오늘은 나가고 없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담벼락 안으로 들어섰을 때 문득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운동화 신은 발이 턱, 멈추었다. 마당에 널어둔 빨래며 소쿠리와 신발들까지 뒤엉켜 마당이 엉망이었다. 살그머니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원빈에게 도리질을 쳤다. 원빈은 풍비박산이 난 살림살이를 추스를 겨를도 없이 그대로 뒷걸음질 쳐 집을 나왔다. 혼자 남은 할머니 걱정은 뒷전이었다. 어젯밤 그나마 지켜낸 얼굴에 멍이라도 들면 학교도 며칠 나가지 못할 거였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샛길로 들어서서 걷다가 버스정류장 앞까지 왔다. 여긴 시골 중에서도 외진 시골이라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다. 그래도 햇빛 막아주고 적당히 바람도 막아주니 이보다 좋은 안식처가 없었다. 버스 타고 곧바로 용준의 집으로 갈까 하다가 학교 끝나고 다른 애들이랑 PC방에 간다고 했던 게 생각나 관뒀다. 핸드폰이 없으니 누구한테 연락해볼 수도 없었다. 아무리 여름이라도 밖에서 자는 건 싫은데. 해가 다 져갈 때쯤엔 학교를 며칠 못 가더라도 집에 들어갈까 싶었다.
“어? 여기서 뭐 해?”
버스가 다니는 방향으로 자전거 하나가 섰다. 원빈은 발끝에 갔던 시선을 위로 올렸다. 하얀 셔츠에 회색 바지. 제가 가진 가현고 하복과 같은 차림이었다. 얼굴도 물론 낯이 익었다. 근데 썩 달가운 인물은 아니었다.
“버스 기다려? 응? 아닌데? 너 여기서 내리잖아.”
말투며 억양이 상당히 곱상했다. 그중 가장 곱상한 건 눈을 댕그랗게 뜬 얼굴이었다. 방향을 바꿔 앉아 있을 것을 그랬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버스 한참 지나야 올 텐데. 어디 가?”
“…….”
원빈은 타인이 베푸는 관심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게 아무렴 저를 향한 친절이어도 굳이 받고 싶지 않았다. 슬며시 시선을 피했다. 대꾸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을뿐더러 대꾸할 말도 마땅치 않았다.
“원빈아.”
“가세요. 저 갈 데 있어요.”
거짓말로 대충 둘러댔다. 이 시각에 이 좁은 동네에서 오지도 않는 버스를 타고 갈 데가 있다는 말이 다소 신빙성은 없게 들렸더라도 이렇게까지 딱 잘라 말했는데 버티고 있을 정도의 친분은 아니었다. 하얀 나이키 운동화가 페달을 밟는다. 그래, 그럼. 조심히 가. 단정한 목소리 뒤로 헤프다고 생각하는 눈웃음이 따라붙었다. 곧 정류장 옆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마지막으로 버스가 지나간 지 벌써 두 시간이 넘었다. 손목에 찬 시계는 어느덧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근처 아무 데나 들어가서 전화를 빌려 용준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은 아니었으니 그렇게 하루 이틀이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였다.
“갈 데 있다더니.”
“…….”
도로 반대편에서 아까 그 자전거가 다시 등장했다. 고민하는 사이에 움직일 걸 그랬다. 반팔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길쭉한 남자가 바퀴 옆으로 발을 짚었다.
“가자.”
“어딜요.”
“타. 가보면 알아.”
“…….”
“여기서 밤샐 수는 없잖아.”
핸들을 꺾은 자전거가 앞에 와서 선다. 순순히 엉덩이를 떼고 일어선 것은 그의 의견에 따르겠다는 뜻이 아니라 정말 여기서 밤을 새울 수는 없는 일이라서였다. 다만 따라가기 전에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형 지금 핸드폰 있어요?”
“왜?”
“친구한테 전화하게요.”
“지금 없는데.”
집에 두고 나왔어.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반소매 어깨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원빈은 잠자코 일어나 자전거 뒤에 바짝 붙었다. 하얀 손이 뻗어져 나와 원빈의 손목을 붙들었다. 원빈은 못 이기는 척 그 손길을 따라 자전거 뒷자리에 탔다. 기다란 다리가 힘껏 페달을 밟았다.
“꽉 잡아.”
60㎏에 육박하는 사내 애를 태우고도 두 발 자전거는 쌩쌩 달렸다. 바퀴가 좁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구를 때마다 엉덩이가 아렸다. 덜컹이는 좁은 안장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하얀 셔츠를 바짝 움켜쥐는 수밖에 없었다. 초여름 바람이 스치는 주먹 아래로 뜨끈한 살결이 느껴졌다.
“쉿. 여기서부턴 내려서 걸어가자.”
원빈의 집에서 조금 더 들어선 곳이었다. 깜깜하고 고요한 골목 끝에 불 꺼진 집 한 채가 보였다. 바로 옆엔 가현리 보건소가 있다. 가보면 안다더니. 고작 데려온 게 저희 집이었다.
“형 부모님은요?”
“주무시지.”
“근데 어떻게 들어가요?”
바작바작 흙길을 밟는 두 발걸음이 작게 울렸다. 원빈은 자전거를 끄는 형의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그 형이 집 담벼락을 부러 빙 돌아가 옆에 자전거를 세우더니 작게 손짓했다. 원빈은 불 꺼진 1층을 바라보고 섰다가 옆으로 난 계단 위를 오르는 형의 뒤를 따랐다.
“원래 세 주던 방인데 지금은 내가 고3이라서 쓰고 있어.”
옥탑방 문을 달칵 돌려 열며 그 형이 속삭였다.
“부모님은 잘 안 올라오셔. 내 공부 방해된다고.”
안엔 이불 한 채가 깔린 매트리스와 책상, 옷장과 TV도 있었다. 세 주던 방이라더니 작게 간이 주방도 있고 화장실도 있는 것 같다. 원빈은 가방끈을 꽉 움켜잡고 눈만 데룩데룩 굴렸다. 먼저 운동화를 벗고 들어간 그 형이 문간에 선 원빈을 돌아봤다.
“뭐 해? 안 들어오고.”
“…핸드폰만 빌릴게요.”
따라오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별로 친하지도 않은 형 집에서 덜컥 자고 가긴 맘이 불편했다. 버스가 끊겼다고는 해도 여기서 부지런히 걸어가면 한 시간 안에는 용준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록 겁이 많아 시간이 엄청 지체되겠지만. 엄청나게 다리도 아프겠지만….
“누구한테 할 건데.”
안 가져왔다면서. 그 형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내밀었다. 원빈은 말없이 폴더를 열고 용준의 번호를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용준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 원빈이. 너 집이야?”
용준은 그럼 이 시간에 집이지 어디냐고 되묻는다. 나 너희 집 가도 돼? 원빈은 밑도 끝도 없이 말했다. 옆에서 그 형이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야, 지금? 안 되는데.
안 돼?
좀 그런데…나 아까 피시방 갔다가 늦게 들어와서 뒤지게 혼났거든…. 엄마 지금 선덕여왕 보고 있어. 끝나기 전에 자야 해. 너 어딘데. 집 아니야?
목소리가 한껏 겁을 먹어 달달 떨렸다. 원빈은 윗입술을 깨물며 잠시 머뭇거렸다. 알았어, 그럼. 내일 봐. 용준이 재차 어디냐 묻는다. 대답하기 곤란했다. 그냥 적당히 둘러대고 전화를 끊었다.
“여기요, 잘 썼어요.”
핸드폰을 돌려주고 슬쩍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한발 빨리 그 형이 원빈을 붙잡았다.
“아무것도 안 물을 테니까 들어와.”
“…….”
“빚 갚는다고 생각해.”
원빈을 끌어당긴 팔이 뒤에서 문을 닫았다. 원빈은 좁은 현관에 덩그러니 섰다가 운동화를 벗었다. 교복 벗고. 씻어. 편한 옷 줄게. 문을 걸어 잠근 형이 서랍장을 뒤적였다. 원빈은 운동화를 벗어둔 근처 벽에 가방을 내려놓고 멀뚱히 섰다.
“갚았잖아요.”
“응?”
“800원.”
그 형이 티셔츠 하나를 들더니 원빈을 돌아봤다. 계산 끝난 지가 언젠데. 시선이 하얀 양말 끝을 향했다.
“이자도 쳐줬으면서….”
그 형, 정성찬과의 인연은 새 학기 첫날부터 시작됐다. 그 버스정류장에서 그 시간에 버스를 타는 사람은 제가 유일하다시피 했는데 그날은 웬 키 큰 남자애 하나가 먼저 와서 서 있었다. 새로 보건소장이 왔다더니 그 집 아들인가보다 했다. 같은 교복이긴 했는데 위에 패딩을 입어서 이름이나 학년은 알 수 없었다. 늘 비슷한 시간에 도착하는 등교 버스가 도착했고, 원빈은 처음 보는 남자 뒤를 따라 버스에 올라탔다.
“이거 안 되는데.”
“네? 왜요?”
“우리 버스는 현금만 돼.”
“네?!”
남자애가 신용카드같이 생긴 것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말투가 완전 서울 애다 싶었는데 시골에서 버스카드 안 되는 줄도 몰랐던 모양이다. 곤란한 얼굴로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만 원짜리 지폐를 집는다. 기사님이 질색하는 얼굴을 했다.
“둘이요.”
요금통에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을 넣었다. 짤랑짤랑, 거스름돈 400원이 아래로 떨어졌다. 멍하니 선 남자애를 지나쳐 앞쪽 자리에 앉았다. 버스는 곧 출발했다. 원빈은 저를 보는 시선을 느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거기서 그렇게 길을 막고 서 있었다간 지각하는 게 혼자만은 아닐 것 같아서 도왔을 뿐이었으니까.
“고마워.”
자리가 텅텅인데 굳이 제 앞에 서서 손잡이를 잡은 채 속삭일 때도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그만하면 가겠지, 했는데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여서 시선을 맞췄을 땐 드디어 봐주었구나, 하는 하얀 얼굴이 보였다. 이런 시골엔 어울리지 않는 뽀얀 피부였다. 게다가 엄청 예뻤다. 엄마가 미인인가.
“이름이 뭐야?”
“…….”
“나는 정성찬.”
“…….”
“저기, 보건소 알지? 거기 옆에 살아. 서울에서 이사 왔어. 너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몇 학년이야?”
원빈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정성찬이라는 이름과 그가 사는 곳과 출신지까지 알아냈다. 문득 이런 사람이랑 같은 반이 되는 건 싫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은 사람 말이다.
“2학년.”
“아. 난 3학년. 이름은?”
“…….”
뭐야. 한 살 많았네. 괜히 말 깠다. 원빈은 외투를 조금 젖혀서 교복에 붙은 명찰을 보이게 했다. 박원빈. 원빈? 이름을 입 밖으로 불러보던 정성찬의 눈이 조금 커졌다. 누군가에게 이름을 말할 때마다 종종 있는 일이라 괘념치 않았다.
“얼굴하고 되게 잘 어울린다.”
“…….”
욕인가. 돌려서 멕이는 건가. 원빈은 거의 몸을 반쯤 수그려 제게 얼굴을 가까이 한 정성찬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만큼 했으면 이제 좀 가지. 부담스러워 죽겠는데.
“버스비는 내일 갚을게. 내일도 이 시간에 버스 타?”
“…네.”
“그래. 그럼 내일 보자, 원빈아.”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불린 이름에 다시금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흰 우유처럼 하얀 얼굴의 정성찬은 눈웃음까지 짓고 있었다. 하는 짓이 밍숭밍숭하고 느끼하다. 나 남잔데. 남자가 남자한테 저렇게 웃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하여간 이상한 착각을 다 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다음날 정성찬은 원빈에게 버스비를 갚았다. 800원에 이자까지 쳐서 천 원이나 줬다. 거스름 돈 200원 핑계로 제 번호를 묻기도 했다. 원빈은 핸드폰이 없다며 의도를 알 수 없는 수작을 딱 잘라 거절했다.
그렇게 용건은 끝난 줄 알았다. 그렇지만 그 뒤에도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성찬은 원빈에게 끈질기게 말을 걸었다. 원빈은 그게 퍽 귀찮았다. 전학과 동시에 학교의 인기남으로 등극한 정성찬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대부분 애가 새로 개발 중인 지역으로 이사 가고 없어서 같은 방향에 사는 사람이 정성찬 하나인 것도, 그가 대외적으로 보이는 다정한 면모와 살가운 미소도 달갑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정성찬은 아침잠이 많아 가끔 버스를 놓칠 때가 있다는 거였다. 그런 날에 정성찬은 자전거를 타고 등교했다. 원빈은 창가 자리에 앉아 정성찬이 힘차게 페달을 구르며 교문을 통과하는 모습을 몇 번 보았다. 창문을 열기 시작한 즈음엔 더 많이, 더 자주 눈에 들어왔다.
아무튼, 원빈이 정성찬의 버스비를 대신 내준 것은 한 번이었다. 그 빚도 이미 빚진 다음 날 다 갚았는데 잊을만하면 왜 자꾸 그 ‘빚’ 얘기를 꺼내냐는 거다. 좁디좁은 한동네에 살고 통성명을 한 사이라지만 사정도 듣지 않고 재워주겠다는 건 좀 너무했다. 서울 사람이라 무른 건가. 그렇게 생각해도 영 찜찜했다.
“두고두고 고마운 일도 있는 거지, 뭘.”
정성찬이 제게 티셔츠와 바지를 내밀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팔이 댕겅 잘린 반소매 티셔츠였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라 얌전히 옷을 받아 들고 좁은 욕실로 들어가 씻었다.
좁기만 했지 있을 건 다 있는 욕실이었다. 비누 하나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씻는 원빈과 다르게 정성찬은 샴푸에 린스, 샤워젤까지 따로 쓰고 있었다. 세수할 때만 쓰는 폼클렌징도 있었다. 이걸 써서 얼굴이 그렇게 하얀 건가. 찔끔 짜서 괜히 더 뽀득뽀득하게 닦았다.
“아, 원빈아. 칫솔.”
문 앞에서 정성찬의 목소리가 들렸다. 원빈은 벗어둔 교복을 손에 들고 머리에 수건을 두르곤 문을 열었다. 바로 앞에서 마주친 성찬의 시선이 원빈의 말간 얼굴에 닿았다가 똑똑 떨어지는 머리칼에 닿았다가 곳곳에 멍이 든 팔에 닿았다. 원빈은 그런 성찬을 비켜서 벽에 기대 세워놓은 가방을 열었다. 교복은 잘 접어 옆에 두고 혹시 몰라서 항상 챙겨 들고 다니는 칫솔을 꺼내 들고 다시 성찬을 지나쳤다. 정성찬이 욕실로 들어서려는 원빈의 어깨를 붙들었다. 몰랐는데 그쪽도 타박이 있는지 얼굴이 절로 찡그려졌다.
“너….”
순간 원빈은 새삼 정성찬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적어도 아무것도 묻지 않겠다는 약속은 지킬 줄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정류장에선 언제나 귀찮게 꼬치꼬치 캐묻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원빈은 쉽게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다시 욕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문을 걸어 잠그고 문에 기대어 눈을 질끈 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원빈은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렸다. 방은 어느새 캄캄해져 있었다. 성찬은 TV를 켜놓고 매트리스 위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졸려?”
“…아니요.”
“그럼 게임 할까?”
“게임이요?”
정성찬이 제가 앉은 옆자리를 탕탕 쳤다. 원빈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그 자리에 가 앉았다. 이 야밤에 웬 게임. 저 형 고3 아닌가. 그런 생각은 속으로나 했다. 잠도 오지 않는데 졸리다고 해서 나란히 누웠다간 괜히 쓸데없는 말이나 늘어놓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게임 잘 해?”
“아니요.”
“다행이다. 나도 막 잘하진 않아서.”
그가 컨트롤러 하나를 내밀었다. 원빈은 그걸 양손으로 쥐었다. 게임 여러 개 있긴 한데. 뭐할래? 철권 할 줄 알아? 정성찬은 능숙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형 근데 이 게임기 어떻게 하는 거예요? 가만히 있던 원빈이 뒤늦게 물었다.
“어…? 플스 처음 해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골에, 컴퓨터 없는 집도 허다한데 하물며 플스를 가진 애가 있을 리 만무했다. 들어본 적은 있는데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마주친 눈을 굴리던 정성찬이 컨트롤러를 쥔 원빈의 손을 덥석 덮었다. 마디가 불거진 손등 위에 닿는 손바닥이 널찍했다.
“이게, 방향이고…이게, 게임 조작. 점프는 이렇게. 이거는 필살기.”
“…….”
원빈의 엄지 위에 엄지를 갖다 대곤 세심하게 설명한다. 왼쪽에서 정성찬의 숨이 느껴질 때마다 더위가 훅 끼치는 것 같았다. 뺨이 쉽게 달아올랐다. 겹쳐진 팔뚝이 닿을 때마다 등골이 오싹하기도 했다.
“할 수 있겠어?”
“…….”
“어려운가? 그러면.”
“아, 아니요. 해볼게요.”
몸을 틀어 정성찬에게서 떨어졌다. 워낙 게임엔 소질이 없기도 하고 방금 성찬에게 배운 것은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계속 손바닥을 맞대고 있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을 것 같다. 성찬은 원빈에게서 조금 비켜 앉더니 바로 게임을 실행시켰다. 읍내 오락실에서 가끔 해봤던 철권이었다.
“캐릭터 먼저 고르고.”
“뭐, 뭐가 좋아요?”
“글쎄? 나는 골고루 하는 편인데.”
성찬이 날렵해 보이는 캐릭터를 골랐다. 원빈은 일부러 제일 근육이 빵빵해 육중해 보이는 캐릭터를 선택했다. 게임은 딜레이 없이 바로 시작됐다. 두 캐릭터가 대련 자세로 맞섰다.
“어, 어, 피해야지, 원빈아.”
“아니…어, 어떻게요? 아니, 잠깐만요.”
연달아 몰아치는 성찬 캐릭터의 발차기 공격에 원빈의 캐릭터는 속수무책으로 체력이 줄어들고 있었다. 방향키를 눌러야지. 뒤로 해서. 정성찬은 공격과 겨루는 상대를 가르치는 것을 동시에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원빈이 겨우 공격 하나를 피했다. 이게 필살기랬나. 조준도 하지 않고 키를 눌러 허공에 두툼한 주먹이 뻗어져 나갔다.
“붙어서. 조금 더 붙어서. 다시 해봐.”
“어, 이렇게요? 이렇…게?”
원빈의 캐릭터 앞으로 다가온 성찬의 캐릭터가 겨우 한 대를 맞았다. 그러더니 바로 다시 발차기를 날린다. 원빈은 틈도 주지 않고 제 캐릭터를 압살 중인 성찬을 휙 돌아보았다.
“와….”
“왜?”
원빈도 막무가내로 주먹을 뻗고 발차기를 날렸지만 성찬은 원빈의 공격을 족족 피했다. 공격하느라 가까워진 거리를 빨리 벌리지 않으면 반격이 너무 쉽게 들어왔다. 처참한 패배였다. 성찬이 억지로 맞아주지 않았다면 한 대도 때리지 못할뻔했다.
“…형 못한다면서요.”
“나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닌데. 네가 처음이라 그러지.”
정성찬이 실실 웃었다. 웃는 낯은 어두운 방 안에서도 분위기 파악 못 하고 해맑은 것이 느껴질 정도다. 이렇게 압도적인 피지컬 차이로 지는 것은 왠지 분했다. 게임 컨트롤 실력만 생기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판 더 해요.”
“응?”
“한 번 더 하자고요.”
그러려면 연습만이 살 길이었다. 성찬이 눈을 접어 웃었다. 그러더니 게임 오버가 뜬 화면을 처음으로 되돌린다. 컨트롤러를 쥔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갔다. 달큰한 샴푸 향이 코끝에 내내 맴돌았다.
*
“일어났어?”
“몇 시에요?”
“7시.”
“네?!”
성찬은 까치집이 진 머리를 긁적이며 맹하게 웃었다. 7시 반까지 가야 하는데 7시에 일어나놓고 태평하게 웃고 있으면 어쩌잔 거야. 원빈은 이불을 홱 걷어버리고 무릎으로 기어가 접어두었던 교복을 들었다. 늘 타던 버스는 이미 떠났을 테니 대충 세수랑 양치질만 하고 뛰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해.”
“뭘 천천히 해요. 뛰어도 지각인데.”
팔을 교차시켜 반팔을 훌렁 벗어 던졌다. 서둘러 교복 셔츠에 팔을 끼우곤 낙낙했던 바지도 툴툴 털어 벗었다. 교복 바지를 쑥 올려 입고 셔츠의 단추를 채우는데 매트리스 위에 앉은 정성찬의 시선이 느껴졌다. 휙 돌아본 곳엔 성찬이 멍한 눈을 하고 있다. 잠이 덜 깼나, 넋이 나간 몰골이었다. 버리고 가도 상관은 없다만. 그래도 재워준 사람이라 마음에 걸렸다.
“학교 안 가요?”
손톱만 한 단추를 빠르게 채워 내렸다. 정성찬은 이불을 품에 끌어안고 앉아서 아, 하는 바보 같은 소리나 내고 있었다.
“저 먼저 씻고 갈게요.”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원빈은 과감히 정성찬을 버리기로 했다. 욕실로 들어가 거의 동시에 세수와 양치를 끝마쳤다. 앞머리에서 물기가 뚝뚝 흐르는 상태로 밖에 나갔을 땐 성찬이 흰 반팔 티셔츠 위에 하복을 입고 있었다.
“어, 원빈아. 잠깐만 기다려.”
“먼저 가고 있을게요. 빨리 오세요.”
성찬이 원빈을 붙잡으려 팔을 뻗었다. 그러나 이번엔 원빈이 조금 더 빨랐다. 가방을 어깨에 걸쳐 맨 원빈이 신발을 빠르게 구겨 신었다. 재워줘서 고맙다는 인사는 눈으로 대신했다.
그로부터 두 시간이 넘게 게임을 하다 자는 게 아니었다. 거의 졸려서 쓰러지기 직전까지 정성찬의 캐릭터에 덤벼들었다. 이기고 싶으면 져줄까? 정성찬은 그렇게 물었다. 원빈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져주지 마요. 절대. 그게 화근이었을까. 정성찬은 정말 원빈에게 져주지 않았다. 그 말은 즉 원빈이 두 시간을 덤벼도 정성찬을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원빈아!”
학교까지 반쯤 왔을까, 뒤에서 정성찬의 목소리가 들렸다.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다 진이 빠졌을 때였다. 성찬은 한 손으로는 손을 흔들며 자전거 페달을 굴렸다. 얼마나 부지런히 걷고 뛰었는데, 금세 붙잡힌 거리에 한숨이 나왔다.
“타. 안 힘들어?”
성찬이 바로 옆에 멈춰섰다. 어제처럼 매몰차게 거절하고 싶었지만 결국 정성찬이 아니면 지각을 면할 수 없다는 현실에 굴복했다. 오전부터 뜨거운 태양에 입고 있는 춘추복이 너무 답답하기도 했다. 원빈은 숨을 크게 한 번 내쉬고 성찬의 뒤에 매달렸다.
“같이 가자니까.”
“같이 가잖아요.”
“그거 말고.”
정성찬은 착한데 뒤끝이 좀 있는 타입인 것 같다. 멋대로 그를 분석했다. 그럼 언제 나올 줄 알고 거기서 발 동동 구르면서 기다리냐. 원빈은 성찬의 교복 셔츠를 붙잡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으아, 덥다.”
“형은 왜 알람도 안 맞춰놔요?”
“깜빡했어. 게임 하다 바로 잠들어서.”
“깜빡할 게 따로 있지….”
“그래도 재밌었지?”
읏쌰. 성찬이 야트막한 오르막을 오르며 물었다. 원빈은 대답하지 않았다.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재미있었다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두 시간을 내리 지기만 했는데 어떻게 재밌었겠어.
“아…원빈이가 나를 이기는 날이 언제 올까…?”
“시끄러워요….”
“언제든 연습 상대가 되어주지.”
정성찬이 마치 게임 캐릭터 같은 말투로 말했다. 원빈은 주먹을 꾹 쥐었다. 그래 봤자 정성찬의 옷을 더 세게 움켜쥔 것밖에 되지 않았다.
학교 근처에 다다르자 주변에 등교하는 애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원빈은 화들짝 놀라 성찬의 등을 두드리며 소곤댔다. 형. 저 내릴래요. 내릴게요. 성찬은 그 말을 무시하곤 더욱 힘껏 자전거 바퀴를 굴렸다. 달리는 자전거에서 뛰어내릴 수도 없는 일인데 정성찬은 주목받기 너무 좋은 외모였다. 원빈은 그 와중에 등교하는 용준까지 마주치고 말았다.
“형, 형…?”
내린다니까요? 원빈이 성찬의 옷깃을 붙잡고 거의 빌다시피 했다. 성찬은 울음 섞인 목소리가 재밌기라도 한 건지 큭큭대며 웃었다.
“거짓말 안 한다고 하면 내려줄게.”
“네?”
“어제 갈 데 있다고 거짓말했잖아, 너.”
장난스러운 목소리였다. 그땐 진짜 갈 데가 있을 줄 알았다. 적어도 정성찬 집은 아닐 줄 알았고. 성찬이 등교하는 애들 사이로 자전거를 몰았다. 원빈은 성찬의 등에 거의 고개를 처박고 알겠다는 말을 연거푸 내뱉었다. 정성찬이 거짓말처럼 자전거를 멈추었다. 원빈은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자전거에서 내려서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문을 향해 달렸다.
자기도 핸드폰 없다고 거짓말했으면서.
그 사소한 게 억울했던 건지 가슴이 자꾸만 울렁거렸다.
*
정성찬의 옥탑방은 원빈에게 제법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집에 들어갈 수 없는 날이나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날이면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정성찬을 기다렸다. 그러면 정성찬은 고3만 하는 오후 보충수업을 마치고 나타나 원빈을 자전거 뒤에 태우곤 살금살금 보건소 옆집 계단을 올랐다. 한 번도 만나자고 약속한 적 없는데 늘 같은 루틴이었다.
정성찬 뒤에 매달려 등교한 날부터 용준은 원빈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애원했다. 야. 제발. 그 형한테 경포대 가자고 꼬셔줘.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했지만 허사였다. 대학보다 연애가 먼저인 용준의 뜻을 꺾을 수가 없었다. 슬슬 양심에 찔리기도 했다.
“형 방학하면 뭐 해요?”
“응? 나?”
“네.”
그게 벌써 거의 한 달째. 오늘도 장소는 정성찬의 옥탑이었다. 이젠 아주 제집 같이 드나들었다. 교복을 벗고 씻고 나와 정성찬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옥탑엔 에어컨은 없었지만 오늘은 종일 비가 내려서 그런지 그다지 덥진 않았다.
“공부하겠지?”
“그, 렇죠?”
“응. 그건 왜?”
정성찬이 잘생겼는가. 예스. 그러니까 용준이 그렇게 마르고 닳도록 애원했겠지. 그럼 다음. 정성찬이 박원빈이랑 친한가. 예스냐 노냐 따지면 예스. 그래서 진짜 물어보기 싫었는데 물어는 봐 주는 거다. 그렇다면 마지막. 정성찬이 고3이냐. 그것도 예스다. 고3이 수능을 코앞에 두고 할 게 공부 빼면 뭐가 있단 말인가. 당연히 예상했던 답이었다.
“그…아니에요.”
“뭔데?”
“…친구가 형 방학하면 뭐하냐고 물어보래서요.”
“원빈이 네 친구가? 왜?”
그러니까 내 친구가 왜 뜬금없이 형을. 조합부터가 말이 안 되잖아. 원빈이 얼굴을 팍 구겼다. 성찬은 제가 말을 꺼내놓고 그런 표정을 짓는 원빈을 의아하게 보았다. 아무리 시달린다고 한들 물어보지 않는 게 나았을 것 같다. 너무 늦은 후회였다.
“방학하면 경포대 가자고…아, 그냥 무시해요.”
“너 가게?”
“네?”
“너 가면 나도 가고.”
정성찬이 산뜻하게 답했다. 저 형 고3 맞나. 저, 저는 갈 생각 없는데요. 원빈이 고개를 젓자 성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네. 네 친구한테 그렇게 전해. 성찬이 씻으러 들어가며 흰 반팔 셔츠를 훌렁 벗었다.
원빈이 성찬의 옥탑에서 하는 일은 별로 많지 않았다. 정성찬은 가끔 저녁밥과 간식거리를 아래서 가지고 올라오곤 했는데, 그걸 노나 먹고 푸데푸데 자거나 문제집을 푸는 성찬의 뒤에 엎드려서 공부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둘이 늦도록 게임을 하는 게 다였다. 매일 자고 가는 건 아니었다. 다 큰 남자애 둘이 눕기엔 매트리스가 너무 좁았기 때문이었다.
성찬이 어디서 베개와 여분의 이불을 가져오긴 했지만 그래도 둘이 함께 잘 수는 없었다. 정성찬의 슈퍼싱글 매트리스는 꼭 붙어서 자지 않으면 굴러떨어질 만큼 좁았다. 정성찬이 유독 덩치가 산만했기 때문이었다.
성찬은 대부분 원빈을 매트리스 위에 올려두고 바닥이 더 시원하다는 핑계를 대가면서 제가 바닥에서 자곤 했다. 원빈은 그게 못내 미안해서 웬만하면 늦더라도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요 며칠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길어지는 장마에 원빈의 집에 거의 매일 불청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찬도 그걸 알았다. 원빈은 아예 일찌감치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금세 씻고 나온 성찬이 머리를 털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덥다아.”
“형 모기 물렸다.”
“엉. 어제 창문 열고 잤더니 어디서 들어왔나 봐.”
성찬의 희멀건 한 팔뚝에 붉은 자국이 있었다. 원빈은 저도 모르게 살짝 부어오른 반점을 꾹 눌렀다. 성찬이 흠칫 놀라더니 물린 데를 벅벅 긁었다. 그리곤 멀쩡한 원빈의 팔다리를 훑는다.
“너는 왜 안 물려?”
“저요? AB형이라서?”
“그런 게 있어?”
“어디서 들었는데 AB형은 모기 잘 안 물린대요.”
“왠지 억울하네.”
성찬이 선풍기를 향해 얼굴을 가까이 대고 젖은 머리를 탈탈 털었다. 전혀 억울한 얼굴은 아녔다.
원빈은 자연스럽게 TV 앞으로 앉아 주섬주섬 게임기를 챙겼다. 저녁 시간은 이미 지났고, 늦게까지 여기 있으면 딱히 이것 말고는 시간을 때울 일이 없었다. 혼자 한 판 하고 있어. 성찬이 숙제가 있다며 원빈을 등 뒤로 지나쳤다. 원빈은 혼자 능숙하게 게임팩을 고르고 ‘박원빈’ 이름으로 레이싱 트랙을 돌았다. 도전 모드였다.
아래서 약 가져와요. 원빈이 넌지시 말했다. 성찬이 원빈을 힐끔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나중에. 주무셔.
정성찬의 부모님은 이상하리만치 아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옥탑에 뻔질나게 드나들면서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아무리 시골 사람들은 해만 지면 잔다지만 아들이 고3이니 공부는 잘 하고 있나 궁금할 법도 한데 가끔 본인이 직접 내려갈 때 보는 거 말고는 교류도 없는 것 같다. 원빈에겐 그게 외려 고마운 일이긴 했지만 한편으론 은근히 궁금한 일이기도 했다.
“형은 형제 있어요?”
“응?”
1등부터 5등까지의 기록이 저장되는 이 레이싱 게임 순위엔 각각 정성찬, 성찬, 성찬이, JSC, SC0913, 다섯 플레이어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원빈은 제가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도 5위 안에도 들 수 없음이 억울했다. 제가 기록을 깨려고 도전할 때마다 옆에서 1위 플레이어 정성찬의 고스트 차량이 약 올리듯 앞서나갔다. 막 싫증이 나려고 할 때 성찬이 공책을 덮더니 불을 끄곤 책상 아래로 내려와 게임기를 쥐었다.
원빈은 철권에서도 정성찬을 이기는 법이 없었다. 게임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응용은 빠른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만큼을 할 수 있게 되면 정성찬은 다른 기술로 저를 K.O 시켰다. 모든 캐릭터를 플레이 해봤다더니 뭘로 덤벼도 결과가 똑같았다. 원빈은 이제 정성찬이 게임을 잘하지 못한다는 말을 믿지 않기로 했다.
“형이나 동생있냐구요.”
“어? 어. 있지. 누나랑 형 있어.”
첫판을 시작하자마자 성찬이 화려한 돌려차기로 원빈 캐릭터의 턱주가리를 날렸다.
“아.”
처음 듣는 소리에 맹한 소리를 뱉었다. 성찬의 캐릭터가 틈을 놓치지 않고 원빈의 캐릭터를 몰아붙였다.
“둘 다 나랑 나이 차이가 좀 많이 나. 아. 그, 누나는 여기 보건소 간호사인데.”
“어…?”
놀라 돌아본 사이에 성찬이 연달아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원빈의 캐릭터가 벌러덩 나자빠졌다. 그대로 또 K.O. 보건소 간호사라면 할머니와 가끔 들를 때마다 봐서 얼굴을 안다. 분명 이름도 정, 어쩌고 였던 것 같기도 했다.
“…하나도 안 닮았는데.”
“응.”
생기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 정성찬이 곧바로 새 게임을 시작하는 화면을 불러냈다.
“엄마가 달라.”
“…….”
“여기 엄마는 내 친엄마 아니야.”
가벼운 질문엔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을 들으려는 의도는 없었다. 원빈은 얼어붙고 말았다. 성찬과 눈이 마주쳤다. 성찬이 내려오면서 스탠드 불을 꺼서 오로지 TV 불빛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눈동자가 파랗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중학생 때까지는 엄마랑 살다가 고등학교 들어와서 아버지 가족이랑 살게 됐어. 미움받거나 그런 건 아냐. 근데 내가 같이 있으면 아버지가 어머니 눈치를 좀 많이 보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여기 올라와서 지내는 것도 있어.”
“…….”
“누나랑은 잘 지내고, 형은 서울에 살아서 잘 못 봐. 그래도 사이가 나쁜 편은 아니야. 플스도 형이 사준 거야.”
“…….”
서울에서 온 키가 크고 피부가 뽀얀 형. 시골 중의 시골 가현리 유일한 의사의 아들. 틈만 나면 옆 여고 학생들한테 고백받기 일쑤인 인기남. 원빈은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사람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그리고 세상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아까 하던 거 할까? 아직 기록 못 깼지?”
잠깐의 침묵 후에 성찬이 옆에 있던 게임팩을 실행시켰다.
“내 생각인데 원빈이 너는 면허 딸 때 고생 좀 하겠다.”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냥, 느낌. 그니까 내가 먼저 따서 알려줄게.”
정성찬이 웃었다. 그 미소가 왠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형한텐 안 배울래요.”
집중 끝에 게임 한 판이 빠르게 끝났다. 이번에도 원빈은 정성찬을 이기지 못했다. 엄청난 간극이었다.
“왜?”
“학원 가면 되죠.”
“돈 들잖아. 뭐 하러.”
“운전 가르쳐주다가 많이 싸운대요.”
면허 딸 때까지 이렇게 붙어 지내자는 걸까. 지금도 매일이 아슬아슬했다. 어느샌가 원빈은 성찬이 곁에 있는 것이 익숙해졌고 그러면 그럴수록 성찬은 한 동네 사는 동생에겐 과분한 다정을 베풀었다. 친한 형, 친한 동생. 그보다 가까운 사이인 건 맞는 것 같은데 이 관계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단어가 뭔지는 모른다. 거진 한 달을 내내 붙어 있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식구나 가족은 아닌데.
“너는 나랑 싸우는 게 싫어?”
“…….”
“왜?”
싸우고 멀어지는 게 싫어서요. 그리고 싸우고 화해해서 더 깊어지는 건 무서워서요. 왜 갑자기 그런 답이 생각났는지는 모르겠다.
“…우리 엄만 제가 어릴 때 도망갔어요.”
원빈의 엄지가 컨트롤러의 버튼 위에서 좌우로 움직였다.
“아빠가 버는 족족 노름에 쏟아부어서. 그거뿐이면 모르겠는데 손버릇이 좀 안 좋아요.”
“…….”
“둘이 얼굴만 보면 싸웠어요. 생각해 보면 저는 엄마랑 아빠가 서로 죽일까 봐 무서웠던 것 같아요.”
“…….”
“전 엄마 원망 안 해요. 저도 할머니만 아니었으면 진작 도망갔을 테니까.”
“…….”
“그렇게 싸우다 죽느니 어디선가 살아 있는 게 나은 것 같아요.”
단짝인 용준에게도 이런 얘기는 깊게 털어놓은 적 없었다. 굳이 친구에게 우중충한 집안 얘기를 해봤자 우울함만 가중될 뿐이다. 얼핏 느끼기로는 용준도 제 사정을 눈치채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스스로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할 생각은 지금도 앞으로도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태어나 처음으로 남에게 털어놓는 고해성사 같은 거였다.
“어른이 되면 할머니만 모시고 다른 데로 가서 살 거예요.”
“…….”
“아직 1년 반이나 남았지만….”
막연히 꿈꾸었던 얘기를 털어놓는 것도 처음이었다. 이 시골에서 상경해서 대학에 가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제 손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벌 수만 있게 되면 가장 먼저 아버지와의 지긋지긋한 악연부터 끊어버리고 싶었다.
“그럼 나랑 같이 서울에 가자.”
“…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정성찬이 꺼낸 말에 원빈의 눈이 커다래졌다.
“스무 살 되면.”
“…….”
“난 서울로 대학 갈 거야. 그러니까 너도 와. 같이 살자. 할머니도.”
“…….”
정성찬의 맑은 눈이 깜빡거렸다. 눈빛으로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능력은 없었지만 막연하게 그냥 뱉는 말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빈은 입을 반쯤 벌리고 가까이에 있는 성찬을 마주 봤다. 다시 생각해봐도 내년에 정성찬이 서울로 대학을 가고, 내후년에 제가 어른이 되면 함께 살자는 얘기는 지나치게 현실감이 없었다.
“집은 내가 마련할게. 엄마가 대학 가면 쓰라고 준 돈 있어.”
“어떻게 그래요. 저는 할머니까지 모시고….”
“왜 안 돼? 그냥 내가 사는 집에 들어오면 되는 건데.”
원빈이 도리질 쳤다. 정성찬의 제안이 아무리 달콤하다지만 덥석 믿어도 되고 아닌 게 있다. 알다시피 정성찬과 제 나이 차이는 한 살. 그러니 성찬은 적어도 1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무슨 변수가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였다. 성찬의 마음이 변할 수도, 원빈이 서울로 갈 수 없게 될 수도 있었다.
“나는, 원빈아.”
정성찬이 바닥에 컨트롤러를 내려두고 원빈에게로 몸을 반쯤 돌렸다.
“네가 오는 게 좋아.”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들려오면 원빈은 돌연 출렁다리 위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네가 왔으면 좋겠어.”
공기 중에 그가 뱉은 낱말이 분해되어 떠돌았다.
왔으면, 좋겠어,
네가, 좋아.
손목이 맥없이 풀썩 꺾이며 허벅다리 위에 컨트롤러가 툭 떨어졌다. 정성찬의 파란 눈동자가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시야에 정성찬이 가득해서 아찔했다. 토할 것 같아. 빤히 바라보는 눈동자에 졌다. 정성찬의 숨결이 느껴져 원빈은 눈을 감는 것을 택했다. 흡. 숨을 참았다. 닫힌 기도 아래서 심장이 펄떡댔다.
창을 때리는 빗소리만 오래 울렸다. 원빈은 한동안 눈을 뜨지 못했다. 숨을 참는 것이 괴로워질 때쯤, 정성찬의 손이 원빈의 뺨을 톡 건드렸다.
“약속한 거다.”
“…….”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질끈 감았던 눈을 한쪽씩 조심스럽게 떴다. 정성찬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게임기를 쥐고 정면을 보고 있다. 내가 언제 약속 같은 거 했는데요. 원빈은 의미 없이 게임기를 만지작거리는 성찬을 봤다. 꽤 오랫동안 다음 게임은 시작되지 않았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성찬이 꼭 제 입술에 딱풀을 발라놓은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시퍼런 불빛에도 정성찬의 귀 또한 붉게 물든 것이 너무나 잘 보였기 때문이었다.
*
철부지 아들 노릇을 졸업하고 가장 먼저 새 출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취직한 윤혁이었다. 동창회에서 청첩장 모임을 하는 게 어디 경우 없는 짓이냐며 용준이 얼굴을 팍 구겼다.
“나 아빠 된다.”
윤혁이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술잔을 들었다. 얌마, 그럼 그렇다고 얘기를 하지. 한잔하자. 용준이 바로 표정을 풀고 술이 넘치게 잔을 부딪쳤다. 스티커로 밀봉된 종이 청첩장을 받으며 원빈도 윤혁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벌써 친구에게 청첩장 받을 나이가 됐나. 혼자서는 핸드폰 개통도 하지 못하던 제가 지나온 세월이 허무했다.
“맞다. 너희 기억나?”
윤혁이 근처에 앉은 애들에게 운을 띄웠다. 원빈은 그의 대각선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갔다.
“그, 한 학년 위에 되게 잘생긴 형. 그, 보건소장 아들.”
“어어. 기억나지.”
원빈을 뺀 주변 애들이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윤혁은 두루뭉술하게 설명했지만 우리 학년에서 ‘한 학년 위의 잘생긴 형’으로 통하는 인물은 딱 하나였다. 정성찬.
“우리 팀에 되게 예쁘고 집도 부자인 신입이 있는데.”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 잔을 꾸욱 쥐었다.
“애인 없는 것 같기에 저번 회식 자리에서 내가 남자 소개나 시켜 줄까 물었거든? 근데 자기가 2년 넘게 쫓아다닌 남자가 있다고 그러더라고? 대체 누구냐니까 사진 보여주는데 그 형이더라. 와, 이런 우연이 있냐?”
“그래서, 아는 척했어?”
“아니. 안 했지. 뭐하러 해. 그러고 나서 이번엔 진짜 대차게 까였다고 말하면서 울던데. 거기다가 불 지필 일 있냐.”
윤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전히 여자한테 고백받고 사나 보네, 그 형은.”
“잘생기고 볼 일이지.”
원빈은 잔에 담긴 맥주를 홀짝였다. 그의 존재를 떠올렸을 때부터 입이 바짝 마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걔네 집이 진짜 돈이 엄청 많아서 결혼하면 건물 관리하면서 골프만 치고 살아도 될 텐데. 2년이나 쫓아다녔으면 그냥 만나지.”
“그런 여자가 쫓아다니는 삶…부럽다.”
누군가가 푸념을 늘어놓았고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거절한 이유가 첫사랑을 못 잊어서라고 그랬다는데.”
윤혁이 은밀하게 속삭였다. 아직 누굴 좋아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고. 그렇게 계속 거절하다가 이번엔 해외 지사로 발령 났다고 쐐기를 박더래. 해외 어디로 가는지도 말 안 해주고. 완전 쫑난 거지.
“착한 쓰레기네.”
누군가가 말했다.
“고등학교 때 첫사랑이랬다는데. 그 형이 누굴 사귀었었나? 나 이거 너희 만나면 물어보려고 얼마나 벼르고 왔는지 아냐?”
“몰라? 고백은 엄청 받았었던 것 같은데.”
정성찬이 고백받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우리에게 드문 일도 아니었다. 아마 그 당시 가현 여고 학생 거의 반은 정성찬을 좋아했을 거다.
“야, 근데 그 형이 졸업은 우리 학교에서 안 하지 않았냐? 다른 학년이라 기억이 잘 안 나네. 여름 이후로 잘 안 보였던 것 같은데.”
윤혁의 앞에 앉은 애가 고개를 저었다. 다들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는 반응이었다. 어쨌든 신기하더라고. 세상 진짜 좁구나 싶더라니까? 사진 보는데 예전이랑 얼굴이 똑같아. 못 알아볼 수가 없었어. 너희도 봤어야 했는데. 윤혁이 아쉽다는 듯이 눈썹을 늘어뜨렸다.
“아. 박원빈 너 그 형이랑 친하지 않았냐?”
이야기가 마무리된 무렵 윤혁이 불쑥 물었다.
“내가…?”
“어. 그때 보건소 근처에 살던 거 너밖에 없지 않았나?”
“…안 친했어. 잘 몰라.”
“그래?”
짧게 수긍하곤 잔을 말끔히 비운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냐는 말엔 화장실이라고 대충 둘러댔다. 무표정한 원빈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12월의 거리엔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었다. 원빈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술집 앞 공터를 서성였다. 입에선 하얀 입김이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짙어지는 숨을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었다.
알고 싶거나 듣고 싶거나 찾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궁금했고 그리웠고 보고 싶었다. 어디선가 잘살고 있길 진심으로 바랐다. 무심히, 고요히. 정성찬에 대한 마음은 이제 바싹 마른 낙엽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당연한 소식을 들은 것만으로도 손이 덜덜 떨리고 표정 관리도 되지 않을 만큼 속이 시끄러운 자신을 발견하고 만다.
어리석었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외면한 것밖에 되질 못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작 한 줌의 기억이 여태 원빈을 흔들고 있었다.
그 짧았던 여름의 기억이 대체 뭐라고 떠올릴 때마다 이다지도 괴롭고 힘들어야 하는 걸까. 나는 형한테서 이만 벗어나고 싶어. 눈을 내리깔고 속으로 소리쳤다. 시간이 해결해줄 수 없는 일이라면 원빈은 정성찬이 지구 반대편, 아니 될 수 있다면 더 멀리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주었으면 했다.
어쩌다 마주친다면 틀림없이,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 같았다.
*
올해 여름엔 비가 유독 자주, 많이 내렸다. 가현리 같은 농촌에 비가 많이 오는 것은 썩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논농사며 밭농사, 하물며 염전에도 일정량 이상의 강수는 독이었다. 그 무렵 애들은 부모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잔뜩 기가 죽어 다녔다. 한 해 농사 망치면 당장 대학 등록금이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원빈의 아버지는 비가 연달아 오는 날이면 거의 집에 들어오곤 했다. 노름하는 사람들에게도 징크스 같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원빈은 언제서부터인가 비 오는 날이 되면 이상하게 몸이 아팠다. 그건 비가 올 때마다 돌아오는 아버지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서이기도 했고, 먹구름이 몰려올 때마다 그 아픔을 기억하는 몸이 떠올리는 환상통 같은 거기도 했다.
분명 하교할 때까지는 맑았다. 원빈은 조용한 집에서 숙제를 하는 중이었다. 내내 부엌에서 잔일을 하던 할머니가 갑작스럽게 방으로 들이닥쳤다. 무릎이 시원찮은 노인치고 민첩한 몸놀림이었다.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냅다 팔을 펼치고 원빈의 앞을 막아섰다.
“아가. 가라, 빈아. 짐 챙겨갖고, 얼른.”
바닥에 펼쳐둔 교과서를 챙기기도 전에 대낮부터 술이 거나하게 취한 아버지가 혁띠를 풀어헤치며 좁은 문 앞을 가로막았다. 최근엔 정성찬 덕택에 매번 피할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덕분에 화풀이를 하려 원빈을 찾았을 때마다 축적된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너 이 새끼 잘 만났다. 어딜 그렇게 쥐새끼처럼 싸돌아다녀?”
할머니가 필사적으로 아버지의 앞을 막아섰다. 원빈은 채 다물리지 않은 책가방을 들었다. 젖 먹던 힘까지 해서 달리면, 그렇게 피해서 어디 숨어 있다가 정성찬에게로 가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원빈은 지레 겁부터 먹었다. 평소보다 남자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우악스러운 손길이 마른 팔뚝을 붙잡았다. 속절없이 몸뚱어리가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원빈이 슬금슬금 구석으로 붙는 사이 할머니가 다시 한번 원빈의 앞을 막아섰다.
“애비가 왔는데 코빼기도 안 비추고. 어디서 뭐 하고 다니는 거야?”
원빈은 이부터 악물었다. 몸을 둥그렇게 말고 필사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엄만 비켜요. 이 새끼 이거 아주 지 애비가 우스운 줄 알아. 버릇을 고쳐줘야 해. 지 엄마 닮아서 영 싸가지가 없어. 그 년도 바깥으로 나돌다가 지 자식까지 버리고 튄 거 아냐. 재수가 없으려니까. 핑계가 좋았다.
반 애들도 다들 부모님에게 훈육을 핑계로 맞는 줄 안다. 학교에서 가끔가다 수업시간에 졸면 선생님에게 손바닥을 맞기도 했다. 그건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피해갈 수 있는 일이었다. 애초에 기저에 깔린 짙은 혐오로부터 나오는 사내의 폭력과는 다른 결이었다.
원빈은 눈을 질끈 감고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 빌었다. 언제나 영겁 같은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엔 그 영겁을 함께 견뎌줄 사람이 있었다. 문득 정성찬을 떠올린 까닭이다.
정성찬이 제게 했던 약속을 생각했다. 틀림없이 허풍일 거라고 생각했던 말이었다. 흘리듯 뱉은 말이라고 넘겼던 말이었다. 약속 같은 건 대부분 지켜지지 않는 거니까 기대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투명한 눈과 상냥한 눈웃음을 떠올렸다. 장난기 많은 웃음소리와 조곤조곤한 말투, 짧게 자른 뒷머리나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 같은 걸 떠올렸다. 그러면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성찬의 곁에 있으면 즐겁고 편했다. 그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고통은 잠깐일 뿐이라고, 내일 해가 뜨면 다시 그의 옆에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괴로움이 덜했다.
멋대로 행복 회로를 돌린다. 이 지긋지긋한 삶도 조금만 더 버텨내면, 그리고 정성찬이 먼저 서울에 가 있는 1년만 잘 견디면 그 뒤엔 아마 서울에서, 빠듯하고 고될 수는 있겠지만 마음 놓고 돌아갈 안락한 집에서….
나는, 원빈아.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사람과….
네가, 좋아.
어쩌면 우리라는 이름으로…….
원빈은 울었다. 맞은 데가 아파서 우는 것만은 아니었다. 우는 소리가 듣기 싫다는 이유로 남자의 발길질이 거세졌다. 머릿속에 누군가의 생각이 가득 찬 것은 처음이었다. 어느샌가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텅 빈 버스정류장에서 나타나지 않는 저를 기다릴 정성찬이 몹시 보고 싶었다.
*
학교를 쉬었다. 이틀째였다. 온몸이 멍투성이에 때아닌 몸살감기까지 겹쳤다. 할머니가 끝까지 뜯어말리지 않았더라면 어디 한 군데가 부서졌을 수도 있었다. 날이 개자 원빈의 부친은 홀연히 떠났다. 원빈은 이불 속에서 끙끙 앓았다. 물 말고는 아무것도 삼킬 수 없었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아침에 보건소에 다녀온 할머니가 열이 절절 끓는 몸에 연고를 발라주었다.
할머니.
원빈이 입술을 달싹였다.
우리 나중에 서울 가서 살자.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 홍조가 올라온 뺨에 닿았다.
도망가자. 내가 어른만 되면, 우리 둘이 아부지 모르는 데에 가서 살자. 그때까지만 조금만. 조금만 참자.
원빈은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할머니가 안쓰러운 몰골을 어루만졌다. 주름이 깊게 팬 할머니는 가현리 탈출을 반기는 눈치가 아니었다. 어찌 됐거나 제 부친도 할머니에겐 자식이었기 때문일까. 원빈은 쓰디쓴 침을 삼켰다. 목에 칼 심을 박아둔 듯 인상이 찌푸려졌다.
“계세요?”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할머니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원빈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았다. 이 대낮에 들려와서는 안 될 목소리였다.
“원빈아? 집에 있어?”
할머니가 저를 봤다. 할머니, 내 친구. 멋대로 나이 한 살을 깎아 말했다. 할머니가 창호지 바른 문을 빼꼼 열자 마당에 멀대 같은 남자 하나가 우뚝 선 것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원빈이 친구인데요….”
방을 나선 할머니와 마주친 정성찬이 허리를 꾸벅 숙였다. 할머니가 방바닥에 누운 원빈을 돌아봤다. 정성찬이 성큼 툇마루 위로 올라섰다.
“원빈아, 너 괜찮아?”
원빈은 누워서 눈만 깜빡였다. 정성찬은 교복에 가방을 메고 있었다. 하얀 얼굴이 더위에 붉게 익었다. 학교는 어쩌고. 원빈이 힘겹게 꺼낸 말은 겨우 그거였다. 거의 천장에 닿을 것 같이 커다란 성찬이 제 옆에 와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팠어? 감기야?”
원빈의 팔다리는 이불 속에 있었다. 원빈은 정성찬의 눈이 글썽이는 모습을 봤다. 키만 컸지 생긴 건 영락없이 여름 향기 손예진 닮았다. 풀 하우스 송혜교 같기도 했다. 시커먼 남자 주제에 울먹이는 게 꼴사납지 않고 예쁘장했다는 말이었다. 맞으면서 멋대로 생각해서 좀 미안했는데 정성찬 꼴을 보아하니 굳이 사과까지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원빈아.”
“형은 내 이름 안 웃겨요?”
“응?”
“나한테 ‘박원빈’ 안 하고 ‘원빈아’ 하는 거 형밖에 없어서요.”
학교까지 째고 찾아온 정성찬 얼굴을 보니까 속이 또 이상하게 울렁거렸다. 약 기운 때문일까. 뭐라도 딴소리를 지껄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겨우 이틀이었는데. 이틀 버스정류장에 나타나지 않은 거로 여기까지 무작정 찾아올 이유가 뭘까. 제 옥탑에서 지내기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 그런 걸 묻지 않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원빈이를 원빈이라고 하는 게 뭐가 웃겨?”
정성찬이 등에 붙어 있던 가방을 옆으로 내려놓았다. 대체 그게 왜 지금 궁금하냐는 눈치다.
“네 이름이잖아. 그렇게 부르면 안 돼?”
“그건 아닌데….”
웃기잖아요. 가끔 그 많고 많은 이름 중에 왜 하필 원빈으로 지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엄마가 지은 거래요. 엄마는 이제 없으니까 물어볼 수도 없고. 지을 거면 차라리 조금 덜 유명하고 덜 잘 생긴 사람 이름으로 짓지. 원빈이 허공을 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원빈 본명은 따로 있는데 뭐.”
“…….”
“따지자면 네가 진짜 원빈이지.”
너는 본명이잖아. 그 연예인 진짜 이름은 도진인가 그럴걸. 정성찬이 제법 진지하게 대답하는 바람에 농담으로 웃어넘기려고 했던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 덕에 둘 사이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학교는, 쨌어요?”
“응.”
“…서울로 대학 가긴 글렀네.”
“이틀이나 짼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성찬이 눈을 흘겼다. 학교 이틀이나 안 간 건 어떻게 알았대. 속으로만 생각하는데 정성찬이 네 친구한테 다 물어봤어, 그런다.
“원빈아.”
“네.”
“이렇게 해봐.”
정성찬이 어깨까지 끌어올려 덮은 이불을 목에 감아 원빈을 일으켰다. 이불이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도록 앉은 몸 위에 충분히 휘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계절감이 없는 행색이 됐다. 오한이 드는 게 아니었으면 더위를 견디지 못했을 거다. 팔이며 다리가 온통 멍이라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을 알았던 걸까. 정성찬은 머리만 비죽 내놓은 원빈을 보며 뿌듯하게 웃었다.
“이대로 우리 집에 갈까?”
“응? 이러고요?”
“어. 내가 둘러메고 갈게.”
“밖에 엄청 더운데요?”
“응. 33도야, 오늘.”
열린 문 사이로 잠깐 보인 바깥이 온통 땡볕이던데 보쌈이라니. 그거야말로 웃기는 제안이었다. 원빈은 고개를 저었다. 성찬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무룩해졌다. 아파서? 아파서 그래? 근심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더워서 이러곤 못 가요.”
밖에 잠깐만 있어요. 교복 입고 나갈게요. 그 말엔 거짓말처럼 다시 얼굴이 밝아졌다. 참 읽기 쉬운데 그래서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성찬이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원빈은 성찬이 나가고 난 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춘추복을 꺼내 입었다. 하복은 가방에 접어 챙겼다.
“형 자전거는요?”
“오늘은 버스 탔어.”
“더워서요?”
“빨라서.”
마당으로 내려선 원빈에게 성찬이 팔을 뻗었다. 할머니한테 인사만 하고요. 원빈은 비척대며 걸어가 부엌에 할머니께 인사하고 약을 챙겨 들었다. 성찬이 쪼르르 달려와 저도 문간 뒤에서 꾸벅 인사했다. 나 괜찮아, 할머니. 내일부터는 학교도 갈게. 할머니를 꼭 안아드리고 나와 뜨거운 태양 아래 선 성찬에게로 걸었다. 성찬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원빈은 홀린 듯 그 손을 맞잡았다.
처음 잡는 손은 부드럽고 단단했다. 맞닿은 체온이 바깥 온도보다 조금 더 높았다. 저보다 손가락이 조금 더 길어 손등을 완전히 감싸는 느낌이었다. 내밀길래 자연스럽게 잡긴 했는데 걷다 보니 아무리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시골길이라고 해도 다 큰 남자애 둘이 손잡고 다니는 게 영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빈이 슬그머니 잡은 손의 힘을 풀었다. 이에 성찬의 손도 그대로 풀어지나 했다.
“형.”
“놓지 마.”
놀랍게도 그 형이 택한 방법은 깍지였다. 손가락 사이사이를 정성찬이 단단하게 붙들었다.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좁은 논두렁을 걸을 땐 성찬이 앞장서고 원빈이 뒤를 따랐다. 길이 넓어지면 나란히 걸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어깨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비….”
소나기였다. 정성찬은 원빈의 손을 붙들고 근처 논 옆에 붙은 작은 정자 아래로 달렸다. 논일하는 사람들이 잠시 새참을 먹거나 비나 더위를 피하는 장소였다. 성찬의 집까지는 걸어서 오 분 정도. 뛰기엔 충분히 가까운 거리였지만 지금은 원빈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둘은 흠뻑 젖기 전에 겨우 정자 지붕 아래에 다다를 수 있었다.
“미안해. 우산을 깜빡했어.”
“…….”
“그칠 때까지만 여기 있자. 괜찮아? 아픈 덴 없어?”
성찬이 머리며 교복 군데군데가 젖은 원빈을 살폈다. 아예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앉아 얼굴에 떨어진 물방울을 닦아주기까지 했다. 원빈은 여전히 타인의 관심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만 정성찬은 제게 이름 없는 친절을 베풀었다. 이쯤이면 얼른 익숙해지라고 하는 것처럼.
“형.”
성찬이 젖어버린 원빈의 교복 셔츠 팔 부근을 주무르다가 고개를 들었다. 같은 거리를 달려온 만큼 성찬의 까만 머리며 드러난 팔에도 빗 자국이 그득했다.
“제가 불쌍해요?”
원빈은 제게 베풀어지는 친절의 출처를 잘 알았다. 폭력을 일삼는 부친과 어린 애를 버려두고 떠난 모친, 거동이 불편한 늙은 조모의 손에 자란 아이. 시골이라고 해도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는 핸드폰도 없는,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급식비로 끼니를 때우는 가난한 학생을 보면 누구나 가지는 측은지심이다.
타인이 원빈에게 주는 관심은 늘 잉여로 남은 마음이었다. 가지고 있어도 딱히 쓸모는 없으니 불우한 애라도 돕자는 선택적 선행의 일종이다. 그 마음들은 때로는 1이기도, 2이기도, 0이기도 했다. 내키는 만큼 떨어지는 부스러기 같은 마음은 일정하게 쏟아지는 애정일 수가 없었다.
정성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형도 그래요? 원빈은 묻고 싶었다. 형이 나한테 다정하게 구는 것도 전부 그럴 마음이 ‘남아 있어서’ 인가요? 형의 마음도 어느 날은 1이다가, 또 어느 날은 10이다가, 어느 날엔 0이 될까요?
“너는 어때?”
“네?”
“너는 내가 불쌍해? 아버지가 바람피워서 낳은 자식이라 더러워?”
원빈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닐 텐데 제가 판단할 일도 아니었다. 원빈이 묻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누가 더 불쌍하고 아니고를 따지자는 게 아니라 다정하고 자상한 손길이, 상냥한 말들이 동정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거였다.
“나도 똑같아.”
너무나 쉽게 대답이 떨어졌다. 정성찬의 마음은 값싼 동정이 아니었다.
“그, 그럼….”
“…….”
“왜 저한테 잘해줘요…?”
“…….”
“불쌍해서 그러는 거 아니면 왜요?”
“…….”
“다른 사람한테도 똑같이 잘해줘요?”
정성찬 생각으로 발길질을 견뎌낸 뒤에 문득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정성찬이 내게 줄 마음은 0인데 10을 바라게 될 날이 오면 어떡하지. 서울에서 같이 살자는 말도 없던 일로 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나기의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둘이 앉은 정자 처마에서도 빗방울이 쉴 새 없이 떨어져 내렸다. 원빈은 이어지는 침묵이 답답했다. 가시지 않은 열기에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았다.
“원빈아.”
한참 만에 성찬이 입을 뗐다.
“너 키스 해본 적 있어?”
“…….”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쿵. 쿵. 갑자기 거세진 심박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뚫을 것만 같았다. 성찬이 어느새 원빈의 손목을 그러쥐고 있었다. 가까이로 훅 당겨지는 것도 금방이었다.
“한 번 해볼래?”
“네?”
“그리고 답해줄게.”
웃기는 소리 좀 하지 말고요. 원빈의 말은 성찬의 입술에 먹혔다. 진득하게 대고 있던 입술이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제 입술을 핥고 빨았다. 그때부터 원빈은 딸꾹질을 시작했다. 성찬이 원빈의 두 귀를 감싸 쥐었다. 감기로 뜨끈한 점막 안으로 정성찬의 혀가 침투했다.
눈앞에 정성찬의 속눈썹이 팔랑거렸다. 포유류로 태어나 코로 숨을 쉬는 법을 까먹은 느낌이었다. 정성찬이 숨을 쉴 때마다 반 박자 느리게 따라 쉬었다. 서투른 몸짓을 밀어내지도 못하고 밀어낼 생각도 못 했다. 저를 붙잡은 정성찬의 팔뚝을 부여잡았다. 애처롭게 매달린 수준이었다.
잡아먹힌 입술 안에서는 난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키스란 생각보다 깔끔하고 아름다운 행위는 아니었다. 입가가 온통 축축했다. 원빈은 간헐적으로 딸꾹질을 하다가 성찬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냉큼 눈을 감았다. 성찬의 입술이 뚝 떨어져 나갔다.
“흐…끅.”
정성찬이 놓아버린 머리가 맥아리 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원빈은 가슴 위에 주먹을 쥐어 올렸다. 옷 위를 누르는 것으로는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진이 빠져 당장이라도 풀썩 쓰러져 누워버리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고 있기만 했다.
“원빈아.”
“…….”
“원빈아.”
재차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거짓말처럼 빗소리가 잦아들었다. 동시에 더위가 훅 끼쳤다. 정성찬의 붉은 입술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는 입술만큼 붉어진 귀에 시선이 갔다.
“싫으면 귀 막아도 돼.”
“…….”
“나 지금부터 너한테 고백할 거거든.”
“…….”
“좋아해.”
“…….”
“들, 들었어…?”
귀 근처에 손도 가지 않은 것을 똑똑히 보고도 들었냔다. 성찬의 목덜미까지 벌게지는 것이 실시간으로 보였다. 제가 불쌍해서 잘해주는 거냐고, 다른 사람한테도 나한테 하듯 똑같이 하냐고 물었는데 돌아온 답은 따지자면 답도 아닌 벼락같은 고백이었다. 넋을 놓을 정도로 잘생긴 얼굴에 하마터면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다.
“비 그쳤어요.”
가요. 원빈이 주섬주섬 가방과 운동화를 챙겼다. 신발을 신고 일어설 때까지 멍하게 있던 성찬이 뒤늦게 부랴부랴 원빈의 뒤를 따랐다. 원빈아? 소심한 목소리를 듣고도 원빈은 느릿느릿 보건소를 향해 걸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태양이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어색하게 손등이 닿는가 싶더니 다시 깍지가 끼워졌다.
원빈은 힐끔 정성찬의 얼굴을 살폈다. 고백을 받는 것에만 익숙하던 얼굴에 서운함이 잔뜩 서린 것을 보니 웃음이 나와 얼른 고개를 숙여야 했다.
바보.
그걸 꼭 입술까지 맞대봐야 아나.
*
“같이 천천히 돌아줄까?”
“왜요?”
“나란히 골인하면 좋잖아.”
싫은데요. 왜? 기록 게임이니까요. 원빈이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럼 처음부터 봐주면서 살살 하든가. 이미 실컷 이겨놓고 인제 와서. 직선 코너로 빠지면서 속력을 조금 더 높였다. 원빈은 몸까지 앞으로 마중 나가며 안간힘을 쓰는데 성찬은 손가락이나 튕기면서 그 뒤로 금세 따라붙었다.
“개인전에선 5위 했던데.”
“…….”
“잘했어.”
“…봤어요?”
“응.”
성찬의 손이 원빈의 뒤통수를 슥슥 쓰다듬었다. 정성찬, 성찬, 성찬이, JSC, SC0913 중에 겨우 SC0913 하나를 제쳤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본체인 성찬에게 다시 따라잡힐 가능성이 농후했다.
“형. 집중하는데 건들지 마요.”
“응? 아, 미안.”
“괜히 봐주지도 말구요.”
“들켰네.”
원빈이 성찬을 휙 째렸다. 성찬의 차가 비등비등하게 달리는가 싶더니 간소한 차이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원빈은 끝까지 전력 질주를 감행했지만 오늘도 결승선을 먼저 통과한 것은 성찬이었다.
“나 안 해.”
“안 해? 잘 거야?”
성찬이 얼른 이부자리를 살폈다. 지는 게 이리 싫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일부러 져주는 건 더 싫었다. 정정당당하게 제힘으로 정성찬을 이기고 싶었다. 딱 그러고 나면 받아주겠다 다짐했는데 오늘도 다 틀려먹었다.
“형은 공부 좀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먼저 잘래?”
정성찬은 요즘 부쩍 공부량이 늘었다. 본업이 고3이니 당연한 일이다. 수능이 100일 하고도 며칠 남았더라. 수시 1차는 개학하고 금방 접수이기도 하니까 여름이 중요한 시기인 건 맞았다. 의사 아들이니까 공부도 꽤 잘 하겠지. 이 시골서 근처 광역시가 아닌 서울로 대학 간다는 말을 그냥 뱉진 않았을 거다. 원빈은 얌전히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성찬이 가까이에서 눈을 휘어 웃었다.
“오늘은 뽀뽀해도 돼?”
“잘생긴 거로 공격하지 말랬죠.”
“먹혀 들어야 공격 아닌가.”
“…….”
존재 자체로 위협이 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정성찬은 알아야 했다. 원빈이 배 위에 올려둔 손을 까딱했다. 성찬이 기다렸다는 듯이 사슴처럼 기다란 목을 수그렸다. 쪽. 쪽, 쪽. 양쪽 볼과 입술에 각 한 번씩 입술이 닿았다.
“왜 세 번이나 해요?!”
“횟수 제한 있었어?”
“…….”
그런 건 아닌데 이러면 왠지 자꾸 닳는 느낌이었다. 정성찬이 제가 묻는 말에 정확한 답을 하면, 정성찬을 실력으로 정정당당히 이기면, 정성찬이 대학에 붙으면, 제가 성인이 되면, 하고 미리 정해둔 조건이 수십 가지나 됐다. 뭐 하나라도 제대로 걸리면 못 이긴 척 받아주려는 계획이 다 있는데 이렇게 야금야금 뽀뽀도 하고 매일 잘 때 끌어안고 팔베개도 하고 가끔 키스도 하면 기껏 세워둔 기준이 다 뭐가 되냔 말이다.
“다음엔 시간제한으로 줘.”
“왜요?”
“내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어.”
“그럼, 1초?”
그건 너무하지. 성찬이 망연자실했다. 말을 뱉은 원빈도 그건 너무하다 생각했다. 한편으론 정성찬의 기록이 궁금하기도 했다.
“아, 오늘은 원빈이가 뽀뽀도 세 번이나 하게 해줬으니까 열공해야지.”
정성찬이 웃으며 멀어졌다. 스탠드 불빛 안 밝나? 책상 앞에 앉은 성찬이 물었다. 괜찮아요. 원빈은 옆으로 돌아누워 성찬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샤프를 쥔 손가락. 등과 어깨가 판판하게 당겨진 티셔츠. 하얀 목덜미와 살짝 젖은 단정한 머리칼. 회전으로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와 열어둔 창밖에서 들리는 빗소리. 원빈은 느리게 눈을 끔뻑였다. 평온하다. 이렇게 잔잔할 수가 없다. 제 인생에도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
성찬이 귀에 이어폰을 꽂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에 천천히 눈을 감았다.
공부할 때 음악 들으면서 하면 정신 사납지 않아요? 언젠가 원빈이 물었다. 성찬은 가만히 원빈의 귀에 제가 듣던 노래를 들려주었다. 피아노와 기타 선율이 잔잔한 발라드였다.
소녀시대나 원더걸스는 없어요?
요새 원빈의 친구들은 다 그런 노래를 들었다. 성찬이 사슴처럼 맑고 커다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텔 미? 없는데?
텔 미가 언제 건데요.
그래?
죄다 옛날 노래뿐이네.
성찬의 MP3 노래 목록엔 유행이 지나가 버린 남자 가수들의 발라드만 가득했다. 원빈은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제목은 모르겠지만 전부 익숙한 멜로디와 쉬운 가사. 더불어 슬프고 애절한 목소리였다.
성찬이 제 귀에 꽂았던 이어폰 한쪽을 원빈의 귀에 마저 꽂아 주었다. 가느다란 이어폰 줄이 양 뺨에 닿았다. 성찬이 볼륨을 조금 더 높였다. 노래가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었다.
정성찬이 입 모양으로 무언가 중얼거렸다. 고요 속의 외침인 건가. 원빈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집중해서 보기 위함이었다. 앞에선 계속해서 같은 입 모양을 반복했다. 마침 노래 가사도 반복되는 중이었다. 이번엔 미간을 좁혔다. 제가 본 것이 맞는 답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성찬이 웃으며 원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맞춰보라는 듯 기다리는 눈빛이 얄미웠다. 정성찬의 눈빛을 매몰차게 피했다. 그러자 밤색 시선이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치사하게 내 목소리로 먼저 들으려고. 배 째란 심보로 아예 돌려 앉았다. 성찬이 집요하게 치댔다. 무방비하게 끌어 안겨져 입술이 몇 번이나 닿았다. 심장이 간질간질했다.
덥다아.
원빈이 정성찬의 무릎 위로 누워 뱉은 말은 그거였다. 뜨거운 햇살에 살이 바싹 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대로가 좋았다.
형. 이거 이승철 목소리죠.
원빈의 말에 성찬이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폰 두 쪽은 여전히 원빈의 귀에 꽂혀 있었다. 노래 듣느라 집중해서 형이 뭐라고 했는지 못 봤어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한낮 여름 더위에 어울리지 않는 느리고 쓸쓸한 노래 한 곡이 무한 반복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른 노래를 틀어달라고 하려다가 관뒀다.
원빈의 얼굴 위로 들이친 햇빛을 성찬의 커다란 손바닥이 가로막았다. 적당히 위로 가려져 원빈의 낯에 온통 그늘이 졌다.
나도요.
성찬이 만들어낸 그늘 아래서 원빈은 또한 입 모양으로만 몰래 대답했다.
*
가현리에는 따로 사교육이랄 게 없었다. 원빈은 짧은 방학을 맞은 성찬이 일찍부터 보충수업을 위해 학교에 불려 나가면 느지막이 일어나 가방을 챙겨 아무도 없는 옥탑에 왔다. 핸드폰도 없고, 친구들과 어울릴 용돈도 없는 원빈에게 정성찬은 무려 간식거리와 게임기와 MP3까지 제공하는 통 큰 형이었다.
꼭두새벽부터 가만히만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게 더운 여름의 한 가운데였다. 정성찬은 점심때가 돼야 집에 돌아올 거였다. 원빈은 선풍기를 틀어놓고 엎드려 노래를 들었다. 그러면서 고딩 양심상 문제집도 조금 풀었다. 그러다 노곤해져 잠들어버리기라도 하면 어느샌가 돌아온 정성찬은 제 얼굴에 솔솔 부채질을 해주며 놀리듯이 오늘도 종일 잠만 잤지, 네가 고양이야? 하고 묻는 거다.
“공부도 했어, 진짜로….”
“진도 어디까지 나갔는데?”
“여기서부터…여기.”
원빈은 고작 한 바닥인 페이지를 손으로 훑었다. 성찬이 하하 웃었다. 민망해져 얼굴이 달아올랐다. 커다란 손바닥이 앞머리를 흩뜨렸다.
“원빈아.”
“응?”
“우리 내일은 바다 갈까?”
“바다요?”
“응. 여기 근처에 바다 있지?”
정성찬이 가현리로 이사 온 것은 새 학기가 시작할 무렵. 그때부터 지금까지 버스로 금방인 바다에 가볼 생각도 않았다는 것에 원빈은 놀라고 만다. 지금까지 여름엔 연례행사처럼 친구들과 마을 앞쪽 바다에 나가 놀곤 했다. 올해 여름엔 용준이 경포대에 갈 생각에 부풀어 얘기를 꺼내지 않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 바다 한 번도 안 가봤어.”
“진짜요?”
“응. 서울엔 바다가 없거든.”
“촌스럽다.”
“그치. 그러니까 네가 데려가 주라.”
난 바다에서 수영도 할 줄 아는데. 정성찬 앞에서 괜히 으스대고 싶어졌다. 원빈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다 정성찬이 저보다 나은 것 같은데 바닷가에선 처지가 뒤바뀔 것 같다는 생각에 은근히 기분이 들뜨기도 했다.
다음날 정성찬은 학교 보충을 쨌다. 생각보다 날라리인가. 학교에서의 정성찬은 원빈이 잘 모르는 분야였다. 둘은 나란히 교복을 입고 가방 하나씩을 짊어지고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의 회차 지점이 바닷가였다.
가현리 앞바다까지 해수욕을 하러 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보통은 동네 사람들이 놀러 오는 거였는데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유독 백사장이 한산했다. 성찬은 바다를 보자마자 와, 하더니 반짝이는 윤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원빈은 그게 꽤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도시 사람다운 건가. 그다지 놀랄 것도 없는 늘상 보던 동네 앞바다 풍경에 저렇게 눈이 초롱초롱해진다는 게 우습기도 했다.
“파라솔 빌리면 좋은데.”
해운대도 아니고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성찬이 챙겨온 까만 장 우산을 들어 보였다. 아쉬운 대로 우산을 펴고 쏟아지는 대강 햇빛을 가린 뒤 작은 돗자리를 펴곤 바다 방향으로 앉았다.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형 수영할 줄 알아요?”
“아니.”
“그럼 바다에는 왜 오자고 했어요?”
“그냥. 너랑 오고 싶어서.”
물놀이 안 할 거면 바다엔 왜 와. 원빈이 인상을 썼다. 당장이라도 신발을 벗고 바지 걷어붙이고 파도 위로 뛰어들어야 할 것 같은데 정성찬은 바다 처음 보는 사람 아니랄까 봐 지나치게 고요했다. 마치 뜨거운 햇살을 고스란히 받고만 있는 모래알 같았다.
“예쁘다.”
“들어가면 시원해요.”
“이따가.”
소금기 섞인 바람에 머리가 잔뜩 헝클어졌다. 원빈은 정성찬의 하얗고 동글동글한 이마를 원 없이 봤다.
“원빈아.”
“네.”
“서울엔 바다가 없어.”
“알아요. 어제 말했잖아요.”
“그러니까 많이 봐 둬.”
“…….”
성찬의 잔잔한 목소리가 부서진 파도 소리와 어우러졌다.
“네가 여기가 그리워졌다고 해도 안 보낼 거니까.”
“…….”
정성찬이 살짝 고개를 틀어 원빈을 바라봤다.
“원빈아.”
“…….”
“너는 바다가 좋아 내가 좋아?”
“…….”
마주쳤던 시선이 어긋났다. 그런 거 묻지 말지. 교복 바지 위에 내려둔 손을 성찬이 감싸 쥐었다. 의미도 없는 질문이었다. 정성찬은 뭘 더 얼마나 압도적으로 이기고 싶은 걸까.
“나랑 언제 사귀어줄 거야?”
“…….”
우산이 만들어낸 그늘은 너무 좁았다. 원빈은 어깨를 나란히 한 사내에게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었다.
“응?”
“…제, 제가 형 이기면요.”
“응?”
“제가 게임에서 1등 해서 형 이기면….”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지껄였다. 원빈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 그냥 홀라당 넘어가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싫다는 말은 또 하기 싫었다. 까만 눈동자가 데구르르 굴렀다. 정성찬이 살풋 웃었다. 으응, 금방이네.
“기다릴게.”
“…….”
“한 10년 기다리면 되려나.”
“아…, 진짜….”
“원빈아.”
“네?”
“나는 바다가 다 말라 없어져도 네가 좋아.”
“…….”
그런 답 하지 말지.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아 모래 위에 시선을 고정하고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정성찬의 엄지손가락이 원빈의 손등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잡힌 손이 뜨끈한 뺨에 닿았다. 태어나 그런 말은 처음 들었다. 울먹이는 눈을 들키기 싫어 눈을 감았다. 천천히 두 입술이 포개어졌다.
*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원빈은 여느 날처럼 정성찬의 옥탑방에 있었고, 정성찬은 곧 하교할 시간이었다. 성찬과 원빈의 사이는 바다에 다녀온 뒤 부쩍 더 가까워져 있었다. 원빈은 성찬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달려가 안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성찬은 그런 원빈을 마다한 적이 없었다.
며칠째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가며 계속되는 날이었다. 뉴스에선 지구 온난화니 어쩌니 하며 환경 운동가와 정치인들이 나와 떠들어댔다.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늘어지는 날이었다. 어제는 길바닥에 고구마를 구워 먹어도 되게 생겼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빗방울이 떨어졌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쳤다가 여름답지 않게 창을 때리는 센 바람도 불었다.
날씨가 꿉꿉해 막 세 번째인가 세수를 마쳤을 때였다. 옥탑방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원빈은 목에 수건을 두른 채로 기쁘게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러나 눈앞에 보인 것은 눅눅한 교복의 정성찬이 아닌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여성이었다.
“…….”
“…….”
원빈은 그 여자가 누군지 단박에 알아챘다. 정성찬과 닮은 구석은 없었지만 가끔 보는 보건소 간호사 은주 누나와 똑 닮아 있었다. 그녀는 손에 얼음을 넣은 보리차와 정성찬의 빨래를 들고 있었다. 평소엔 늘 정성찬이 아래층에서 직접 가져왔던 것들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어른을 봤으니 일단 인사를 했다. 같은 동네 사는 동생, 아니 친구라고 둘러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원빈이 얼른 이름을 대서 선수를 치면 되지 않을까 그런 잔머리를 굴리는 와중에 그녀는 얼핏 봐도 두 사람의 살림살이가 가득한 옥탑을 눈으로 훑어 상황파악을 끝낸 뒤였다.
“원빈아 나 왔어.”
원빈이 뭐라고 변명의 말을 꺼내려는 찰나 간발의 차로 정성찬이 등장했다. 평소와 같이 정성찬은 지나치게 해맑은 표정이었다. 우산을 접고 문을 열고 들어서던 성찬이 사색이 된 원빈과 마주쳤다. 바로 앞엔 제 어머니가 버티고 서 있어서 좁은 현관으로는 들어오지도 못했다.
“누구니?”
“친구요.”
“아는 동생이요.”
성찬과 원빈의 답이 갈렸다. 친구라고 답한 성찬이 아는 동생이라고 저를 정의한 원빈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러더니 곧바로 어머니 팔을 잡고 아쉬운 소리를 냈다.
“사정이 있어서…잠깐 지내는 거예요.”
“아버지도 아시니?”
“…….”
아버지란 말에 정성찬이 입을 다물었다. 원빈은 직감적으로 성찬의 아버지 귀에 들어가면 안 될 상황임을 알았다.
“너는 집이 어디니? 집 전화번호가 뭐야?”
심장이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여기 어른들은 애들이 엇나가는 걸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친구 집 놀러 가서 하루 자는 것도 꼭 허락이 있어야 했다. 상호 간에 오간 말이 없으니 정성찬의 어머니는 원빈이 가출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따지고 보면 일종의 가출은 맞았지만 소재를 알리기 위해 집으로 전화를 해서는 안 됐다.
“…지금 들어가려고 했어요.”
“원빈아.”
“허락도 없이 죄송합니다.”
정성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원빈은 자연스럽게 목에 걸었던 수건을 내려두고 바닥에 있던 가방을 챙겼다. 성찬의 어머니는 조금 못마땅한 표정이긴 했지만 딱히 말을 더 얹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마 원빈이 이곳을 떠나고 나면 다시는 저런 애랑 어울리지 말라며 한소리를 늘어놓을 작정인 것 같긴 했어도.
“안 돼요.”
신발을 신으려는 원빈의 손목을 움켜쥔 성찬이 제 뒤로 원빈을 숨겼다. 원빈은 팔뚝을 잡은 손을 풀어내려 팔에 힘을 잔뜩 주었다.
“얘 거기 가면 안 돼요.”
“형….”
“적어도 오늘은 안 돼요. 네?”
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는 정성찬의 눈이 초조했다. 최근엔 정성찬과 붙어 있느라 아버지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였다. 또 기척도 없이 사라진 원빈을 한창 벼르고 있을 거였다.
“형, 저 괜찮아요. 갈게요. 실례했습니다.”
잡히지 않은 손으로 정성찬의 손을 뜯어내다시피 뿌리쳤다. 여기서 정성찬의 어머니와 더 길게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것 자체가 위험이었다. 잠깐, 어디 조용히 쥐죽은 듯이 숨어 있다가 다시 나타나는 게 나았다. 그때까지 원빈은 이 안락한 쉼터를 잃고 싶지 않았다.
“가지 마. 가지 마, 원빈아. 응?”
“안녕히 계세요.”
원빈은 꾸벅 인사를 하고 우산도 없이 밖으로 나왔다. 정성찬이 곧장 원빈을 쫓아 나왔다. 그의 어머니가 아리송한 눈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빈아. 가지 마. 응? 내가 잘 얘기할게.”
“저 괜찮아요. 들어가세요.”
빗속에서 한참의 실랑이가 있었다. 난데없이 조용하던 옥탑에서 나는 소리에 아래층에서 노란색 우산을 쓴 보건소 간호사 누나가 올라왔다. 그녀도 예상외의 장소에서 나타난 원빈을 보고 놀란 눈이었다.
“누나. 누나가 어머니한테 말 좀 해줘. 원빈이 여기 있게 해달라고.”
“응?”
“얘 오늘 거기 가면 큰일 나….”
“그게 무슨….”
“누나…….”
성찬이 원빈을 붙들고 제 누나에게 애원했다. 원빈은 고개를 저었다. 맞아도 내가 맞고 아파도 내가 아픈 건데 왜 본인이 더 야단법석인지 모르겠다. 여태 정성찬 하나에 끼친 민폐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좋아한다는 감정에 매몰된 비용이 가늠도 되지 않았다. 그의 가족에게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이 가진 우울한 사정을 동네방네 떠벌리기도 싫었다.
“좀…간다고요, 그냥.”
“원빈아….”
“놔요, 형 도움 필요 없으니까.”
원빈이 매몰차게 성찬을 뿌리쳤다. 쫓아 붙는 몸을 차가운 눈빛으로 떼어냈다. 성찬아. 계단을 내려가는 원빈을 따라 내려오려는 성찬을 누나가 불러세우는 것이 들렸다. 정성찬이 제 누나와 어머니에게 무어라고 소리를 치는 것이 들렸다.
원빈은 비 내리는 흙길을 냅다 달렸다. 정성찬에게서 멀리 떨어지기 위함이었다. 쏟아지는 비에 가방과 옷이 젖어 몸이 무거웠다. 앞을 가리는 빗물에 숨이 막혔다. 그 형을 만나기 전엔 늘 이런 식이었는데, 그 몇 달 사이에 이만한 일도 견디기 힘들어져 버렸다. 그러니까 더 멀리 가야 해. 길을 잃어 돌아올 수 없는 데까지 가야 해. 원빈은 울었다. 아무리 달려도 여전히 돌아가는 길이 더 짧았다.
*
그렇게 심하게 두들겨 맞은 건 아니었다. 웬일로 크게 딴 모양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형편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술에 얼큰하게 취해 적당히 피할 수 있었던 것뿐이다.
하루쯤 누워있다가 버스정류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하교 시간이 되어도 정성찬이 나타나지 않았다. 늦나 싶어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데도 그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뒤로 하루는 아침 일찍부터 기다렸다. 학교에 가려면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길인데 오전 내내 기다려도 정성찬 비슷하게 생긴 사람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렇게 갔다고 화났나. 본인 탓도 있으니 반쯤은 체념했다. 닷새째 되는 날엔 할머니 약을 타러 보건소에 갔다. 거기서 정성찬의 누나를 만났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너구나.”
정성찬은 근신 중이라고 했다.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 새어머니? 하여튼 아버지의 본부인에게 대든 벌이라고 했다. 걔가 우리랑 지내면서 그런 적이 없었는데…, 라며 간호사 누나는 말을 골랐다.
성찬이는 우리 집에 오고 나서 늘 얌전하고 착했어. 울지도, 떼를 쓰지도, 속썩이거나 반항한 적도 없었어. 솔직히 사춘기 남자애랑 같이 사는 거 힘들 줄 알았는데 의외였지. 불안한데 편했어. 착하기만 한 애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걔가 그날 이후로 집에서 말 한마디를 안 해. 엄마한테는 바락바락 대들고 나서 눈도 안 쳐다봐. 아버지한테 된통 혼나고 두드려 맞아도 죄송하단 말을 안 해. 집을 나가겠대. 자긴 잘못한 게 없대. 다 어른들 잘못인 거래.
“아버지는 그게 다 당신 잘못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
“네?”
“당신이 잘못해서 성찬이가 비뚤어졌다고.”
어른들은 가끔 너무 섣부르고 너무 단편적인 경향이 있었다. 정성찬이 생전 안 하던 짓을 저지르고 근신 처분까지 받은 이유는 순전 박원빈 때문이었다. 나만, 박원빈만 정성찬 삶에 끼어들지 않았더라도 정성찬의 십 대 끝자락은 숱한 여학생들의 고백과 지루한 수능 공부로 평탄히 지나갔을 거였다.
“어린 애를 엄마한테서 떼 놨으니…친구 하나 없는 시골에 덜컥 데려오질 않나.”
“…….”
“그래서 맘 붙일 데가 없어서 엇나갔다고 생각하셔.”
“…….”
“다시 친엄마한테 보낼 생각인가 봐.”
“…네?”
“성찬이는 아직 몰라. 중요한 시기에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도 힘들겠지만 중요한 시기니까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잖아.”
네가 그 애랑 친한 사이면 맘 좀 돌려줄 수 있을까? 누나가 부탁했다. 원빈은 입술을 깨물며 발끝만 바라보았다.
“낮엔 방에 처박혀서 게임만 하는 것 같아.”
“…….”
“사흘 정도는 집을 나가겠다고 악을 쓰더니 이젠 조용해.”
“…….”
“계속 이렇게 지내다간 정말 전학이라도 시키실 것 같은데….”
정성찬을 찾아가 달라고 했다. 집을 나가겠다고 난동을 피운 탓에 핸드폰도 뺏기고 거의 감금되다시피 했다고 그랬다. 지켜보는 게 안쓰러우니 부모님께 사과하고 다시 착한 아이로 돌아오게 설득해달라고 했다. 잠깐의 방황이니 부모님도 이해하실 거라고, 동생이 그렇게 폐인처럼 지내는 걸 두고 보기 힘든 심정이라고 호소했다.
“저는…….”
원빈은 오랜 침묵 끝에 입을 뗐다.
“형이 여길 떠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원빈의 말에 누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왜? 우리가 그 애한테 뭘 잘못했다고 그러든? 그 애가 여기서 우리랑 같이 지내는 게 싫대? 당혹감이 서린 목소리에 정성찬을 망가뜨린 장본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형을 위해서 더 나은 선택일 것 같아요.”
“우리랑 떨어져 지내는 게…?”
우리,
가 떨어져 지내는 게.
그게 맞다. 원빈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정성찬의 곁에 제가 있는 것이 독이 된다는 것을. 원빈은 당장 이곳 가현리를 떠날 수 없는 처지였다. 도망치고 숨어도 언제나 좁디좁은 마을 안이었다. 그렇다면 정성찬을 떠나보내는 게,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몸이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질 거예요. 어쩌면 정성찬은 저를 까맣게 잊을지도 몰라요. 그런 애가 있었지, 라는 기억 한 조각으로 남을 수도 있어요. 저는 딱, 형한테 그런 존재이고 싶어요. 한여름 소나기처럼, 불쑥 내렸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라버리는. 원빈은 제 소망을 꾹꾹 눌러 담으며 억지로 미소 지었다.
누나의 표정이 쓸쓸했다. 닮은 구석이 없다고 생각했던 까무잡잡한 얼굴에서 언뜻 정성찬이 보였다. 누나. 저 다치면 가끔 여기 찾아와도 되죠. 누나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다친 데 있니? 얼굴에 드리웠던 먹구름을 곧장 걷어내고 본업인 간호사로 돌아온다. 원빈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정성찬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가현리를 떠났다. 어른들은 혹시나 그가 성인이 된 뒤에 돌아올까 싶어 옥탑에 있는 짐도 정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해 가을 원빈은 인기척이 없는 보건소 옆 이층집 근처를 자주 서성였다. 원빈아. 성찬이가 자기 게임기 너 주래. 누나가 어느 날 말했다. 원빈은 도리질 쳤다. 원빈은 여전히 게임에 소질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정성찬과 함께해야 의미 있는 오락거리였다.
정성찬은 가끔, 종종, 자주 제 누나를 통해 박원빈의 안부를 물었다. 원빈은 점점 보건소 근처에 발길을 끊게 됐다. 겨울이 되고 원빈은 고3이 됐다. 정성찬은 스물이 됐다.
원빈은 성찬이 스물이 되자마자 자취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중에 서울서 같이 살자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그즈음 이었다. 조촐한 장례를 치르고 원빈은 보건소 근처 집에서 나와 학교 근처 고시원에서 수험 생활을 보냈다.
원빈이 스물, 정성찬이 스물한 살이 됐다. 원빈은 대학에 합격해 가현리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은 낯설고, 빠르고, 아주 비쌌다. 이제야 비로소 정성찬과 같은 서울 땅을 밟고 살게 됐지만 정성찬과 꿈꿨던 서울살이는 현실에 없었다.
가현리가 그립지는 않았다. 되돌아봐도 너무 힘들고 고된 시절이었다. 그런데 가끔, 아주 드물게 낭만도 운치도 없던 가현리 앞바다가 불쑥 생각나긴 했다.
서울엔 바다가 없어.
그래.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게 조금은 아쉬웠던 것 같다.
*
-여보세요.
누나?
교류가 전혀 없던 번호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것에 망설임은 없었다. 실수로 잘못 누를 번호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제게 전화를 걸 일도 없고, 걸 사람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도 전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연말연시에 안부를 묻는 사이도 아니었다. 오랫동안 서로의 핸드폰에 저장된 열 한자리 번호는, 그저 언젠가 닿았던 인연의 실타래일 뿐이었다.
-원빈아.
원빈은 핸드폰을 귀에서 떼고 액정에 적힌 이름을 봤다. 은주 누나. 번호의 주인과 다른 낮은 목소리에 몸이 얼어붙었다.
-나야.
-…….
-잘 지냈어…?
주변이 소란했다. 원빈은 마시던 물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연락이 없길래…….
-…….
-내가 보낸 거 못 봤어…?
끊어. 그냥 실수로 받아진 것처럼 끊어버려. 그럼 돼. 할 수 있잖아. 원빈의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렸다. 그렇지. 은주 누나가 나한테 전화를 할 일이 없지. 형이 아니면. 정성찬 네가 건 게 아니면.
-원빈아…?
원빈의 시선이 거실 한편을 차지한 상자에 닿았다. 진작 버렸어야 했어. 후회해도 한참 늦었다. 저걸 지금껏 버리지 못하고 안고 있어서 이 사달이 났다. 윤혁을 통해 소식을 들었을 때 치워버렸어야 했다.
-원빈아. 듣고 있어?
-전화 왜 했어요.
-원빈아.
-용건이 뭔데요.
차가운 목소리로 무미건조하게 물었다. 마지막에 보였던 태도와 달라짐이 없는 원빈의 반응에 정성찬은 잠시 답이 없었다. 그러더니 봤냐, 못 봤냐 그것만 되풀이해 물었다.
-봤어요.
-봤어…?
-네.
-…….
-그거 확인하려고 전화했어요?
이제 와 제게 유행 다 지난 게임기를 보낸 이유가 뭐냐 묻지 않기로 했다. 알아봤자 아무 의미도 없을 테니. 태연하게 대꾸하고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전화를 끊으면 그걸로 끝인 거다.
-나 외국으로 나가. 회사 해외 지사에서 일하게 됐어.
정성찬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시켰다. 윤혁의 팀 신입이 좋아한 남자가 정말 정성찬이 맞는 모양이었다.
-이번에 나가면 언제 올지 몰라.
-…….
-아마 앞으로 한국엔 안 들어올 수도 있어.
정성찬은 예나 지금이나 이런 심각한 얘기를 뜬금없는 맥락에서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쩌라고요, 하고 받아치기엔 제가 가볍게 끼어들 사인이 아니라 입을 다물게 만드는 그런 얘기들이었다.
-혹시나….
-…….
-내가 안 기다렸다고 오해할까 봐.
-…….
목소리가 씁쓸했다. 원빈은 침묵을 지켰다.
-원빈아.
-…네.
-아픈 덴 없지?
-…네.
불쑥 형은요? 하고 되묻고 싶었다. 그러나 박원빈이 정성찬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짓도 없었다. 그런 건 사랑하는 사람끼리나 하는 짓이었다.
-그래.
-…….
-가봐야겠다.
-…네.
멀리서 안내 방송이 들렸다. 주변이 왜 이렇게 시끌벅적한가 했더니 장소가 공항인 것 같았다. 그의 ‘가봐야겠다’라는 말은 정말 곧 이 나라를 떠나겠다는 말이었다. 마지막이구나. 가슴이 먹먹했다.
-원빈아.
-네.
-거긴 바다가 없대.
-…….
-다 말라서 사막이 됐대.
-…….
-그럼, 잘 지내.
다정한 목소리가 안녕을 말한다. 형도요. 원빈은 거짓으로 평온한 목소리를 꾸며냈다. 말없이 한참 백색 소음이 들리던 전화가 끊겼다. 금세 적막이 찾아와 원빈을 휘감았다.
커터칼을 가져와 밀봉해두었던 박스를 뜯어냈다. 아예 못쓰게 사방을 잘라내곤 가운데에 들었던 플레이스테이션3의 본체를 꺼냈다. 컨트롤러 두 개와 게임팩을 들어내자 한쪽 구석에 있던 정성찬의 MP3가 보였다. 전에 박스를 대충 열어봤을 땐 보이지 않았던 물건이었다.
MP3엔 그 시절 줄 이어폰이 돌돌 감겨 있었다. 원빈은 조심스럽게 이어폰을 풀어냈다. 그리곤 전원 버튼을 눌러보았다. 놀랍게도 배터리가 남아 있었는지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그때 이후로 안 썼으면 켜질 리가 없는데. 분명 누군가가 최근 충전을 해두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불이 반짝이는 MP3를 보다가 게임기에 눈이 돌아갔다. 정성찬의 옥탑방 TV에 연결되어 있던 것처럼 거실에 있는 TV에 게임기를 연결했다. 조작은 어렵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전원을 켰다. 오래 사용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게임기는 오랜 로딩 없이 메인 화면을 나타냈다.
게임팩. 원빈의 눈이 바빠졌다. 그 당시 정성찬과 했던 게임은 여러 가지였다. 가장 많이 했던 건 아무래도 철권이었다. 그런데 정성찬이 제게 보낸 게임팩은 레이싱 게임 하나가 전부였다. 혹시나 빠뜨린 게 있나 박스를 샅샅이 뒤졌지만 다른 게임팩은 보이지 않았다.
케이스를 열고 게임 CD를 꺼냈다. 반짝이는 뒷면에 네임펜으로 무언가 글씨가 쓰여 있었다.
열 한자리. 전화번호였다.
넋이 반쯤 나간 상태로 핸드폰에 CD에 적힌 전화번호를 눌렀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바로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혹시나…내가 안 기다렸다고 오해할까 봐.
원빈에게 소포가 도착한 것은 벌써 몇 달 전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정성찬은 저를 기다린 게 맞았다. 굳이 제게 보내려고 시골집 어딘가에 처박혀 있던 게임기를 꺼내 CD 뒤에 전화번호를 썼다. 내가 이걸 보면 틀림없이 제게 연락할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왜…? 어째서…?
열여덟 여름 질리도록 했던 게임이었다. 특별한 룰도 없이 각자 고른 차량으로 트랙을 출발해 가장 빨리 결승선을 통과한 사람이 이기는 아주 단순한 게임. 원빈은 끝까지 게임에 서툴렀고 정성찬을 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본체에 CD를 삽입했다. 게임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로딩 화면이 떴다. 둘이 함께하는 경쟁하는 모드와 1인 플레이어가 시간 단축을 목표로 하는 도전 모드 두 가지가 화면에 나타났다.
정성찬의 옥탑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원빈은 불을 끄고 돌아와 컨트롤러를 쥐었다. 귀에는 정성찬의 MP3를 꽂았다. 그러자 마치 그 언젠가의 여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재생 버튼을 눌러두고 도전 모드를 선택했다.
TIME TRIAL MODE
RANKING
1 박원빈 (01:23:15)
2 원빈아 (01:24:02)
3 사랑해 (01:25:33)
4 사랑해 (01:27:01)
5 사랑해 (01:27:57)
이게…….
그럴 리가 없는데…….
원빈의 게임 닉네임은 언제나 ‘박원빈’이었다. 그리고 박원빈이란 닉네임을 달고 1등을 한 적은 단연코 없었다. 원빈의 기억으론 겨우 SC0913을 꺾고 5등 자리를 꿰찼던 것이 다였다. 저건 가짜였다. 틀림없이 가짜였다. 정성찬이 만들어둔 환상이었다.
도전 모드로 플레이를 하게 되면, 현재 1위 기록을 가진 유저의 리플레이 데이터가 반투명한 상태로 트랙을 함께 달리게 된다. 그리고 영광의 1위 기록을 깬 플레이어는 제게 도전하는 플레이어나 자신을 위해 코멘트를 남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원빈이 열여덟이고 성찬이 열아홉이던 그 여름 1위 플레이어 ‘정성찬’의 메시지는 ‘쉽네ㅋㅋ’ 였다. 원빈은 그 짧은 메시지에 긁혀 손이 얼얼할 때까지 트랙을 돌곤 했다. 그런데 새 1위 플레이어인 ‘박원빈’이 남긴 메시지는 한낱 상대를 향한 장난 섞인 도발이 아니었다.
[TOP Ghost : 박원빈 (01:23:15) - Message : 그리워하면언젠가만나게되는어느영화와같은일들이이뤄져가기를]
진짜 ‘박원빈’이 출발선에 섰다.
3. 2. 1.
1등 플레이어 ‘고스트’ 박원빈과 ‘진짜’ 박원빈이 트랙을 돌기 시작했다.
정성찬의 꽁무니만 쫓아 달리던 예전과는 달리 원빈은 제가 선택한 차종의 고유 능력치를 파악하고 경로 별 가속도를 계산한 뒤 적절한 시점에 부스터 아이템을 사용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기술도 요령도 없던 열여덟 박원빈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몇 번의 도전 끝에 도전자 ‘박원빈’은 탑 플레이어 ‘박원빈’의 랩타임을 거의 따라잡을 수 있게 됐다.
이기고 싶으면 져줄까?
져주지 마요. 절대.
정성찬은 끝까지 약속을 지켰다. 박원빈이 그렇게 이기고 싶던 정성찬에게 져주지 않고 박원빈을 이기게 해주었다. 그래놓고 한다는 말이 고작 ‘사랑해’ 따위였다.
원빈은 같은 트랙을 돌고 또 돌았다. 한 번쯤은 진짜로 정성찬을 이기고 싶었다. 이제는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처음부터 같은 노래가 반복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랑해
정성찬에게 처음 그 말을 들었던 날에 듣고 있던 노래였다. 우습게도 당장이라도 뒤돌면 그날의 정성찬과 박원빈이 있을 것 같았다.
여름은 다 지났는데. 이제 우린 그날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데. 이어폰을 빼고 형 목소리를 들을걸. 손바닥 아래 숨어서 대답하지 말고 소리 내 말할걸. 시간이 너무 오래 우리를 잡아먹게 두지 말걸.
후회해도 늦었다. 정성찬은 이미 아주 멀리 떠나고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안녕을 빌고 그렇게 처음처럼 비로소 남이 됐다. 앞으로는 또 다른 후회로 가끔씩 정성찬을 떠올리며 슬퍼하는 박원빈이 되겠지.
거긴 바다가 없대. 다 말라서 사막이 됐대.
원빈아.
나는 바다가 다 말라 없어져도 네가 좋아.
오랜 도전 끝에 원빈은 ‘고스트’ 박원빈을 근소한 차로 앞섰다. 도전자 박원빈이 박원빈을 이기고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자 화면 가득 폭죽이 터졌다. 원빈의 눈에서도 아주 오래 참아왔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NEW Record’
정성찬이 세워둔 ‘박원빈’의 기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새 1위 플레이어에게 메시지를 입력하라는 창이 떴다. 원빈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그 칸을 텅 비워 놓았다. 이제 이런 건 아무 의미도 없었다. 원빈은 눈물에 젖은 손으로 게임 종료 버튼을 눌렀다.
저장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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