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
by. 육각
1983年, 경주
불티야, 밥 먹자. 말을 뱉기가 무섭게 뒤집개에 얹어 건넨 새까맣게 탄 두부가 날름 삼켜졌다. 입가와 얼굴에 시커먼 잿가루를 묻힌 불티가 입을 오물거리며 아궁이 옆에 웅크려 앉았다.
“맛이 좋으냐?”
대답 대신 커다란 눈을 굴리며 다시금 입을 벌려오는 모습이란. 이번엔 태운 것 대신 예쁘게 익힌 두부를 대령해보자. 태운 것은 한입에 꿀꺽 삼키더니, 사람 먹을 것을 주자 맨 손으로 소중히 집어 들곤 모서리진 부분부터 아껴 베어 무는 것이 퍽 재미있는 모습이다.
녀석의 이름은 불티. 몸 여기저기 시커먼 잿가루를 묻힌 모습에, 종일 아궁이 옆에서 웅크려 지내는 천덕꾸러기다. 부엌에 사람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먹을 것을 얻어먹으려 곁에 기웃대는 것이 하는 일의 전부인 녀석. 그래봐야 사람 기준으로 맛있는 음식은 어림도 없거늘.
개밥으로도 못 쓸 지경으로 까맣게 태운 것도 음식이라고 날름날름 잘도 받아 삼키는 이 우중충한 녀석은, 어느 날 불쑥 아궁이 옆에서 나타난 이후 여태까지 구박데기 취급을 받으며 어찌저찌 얹혀살고 있다.
그 집은 당산집이라고 불렸다. 천 년간 한 자리에서 이곳 서목마을을 지켰다는 당산나무와 가장 가까이에 자리한 집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예로부터 곳간과 재물이 풍요롭고 대대손손 벼슬을 지내오는 등 부귀영화를 모두 누려와, 이 집안에 당산신의 각별한 보살핌과 가호가 따르고 있다는 의미가 이후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오래전 이 나라에 왕조가 존재하던 시절에는 나라의 녹을 먹고 산다 하여 대감댁이라 불렸고, 그때부터 마을의 논밭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어 지주댁이라고도 불리다 해방 전후로 땅을 처분하고부터는 그저 당산집이라고만 불리게 됐다.
본디 마을에서 대가大家로 통할 만큼 집의 규모가 크고 거느린 식솔들도 많았으나, 행랑살이 하던 이들이 품삯을 모은 돈으로 자신들 몫의 전답을 꾸리며 하나둘 자연스레 떠났고,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다른 가족들도 울산의 자동차 부품 공장이나 조선소, 부산의 광업 사무소 등지에 취업하여 독립을 하게 되면서 집안 규모는 점차 축소되었다. 이제는 큰어르신인 할아버지와 장남네 부부 그리고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막내네만이 남아 대가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당산집이 그저 텅 비어 휑해진 것만은 아니다. 아주 어릴 적 당산집에서 행랑살이 했던 기억이 남아있는 명숙이가 시집간 후에도 여전히 집을 오가며 부엌일이나 빨래, 바느질 등의 소일거리를 돕고는 그 대가로 품삯을 받곤 했다. 그 외로도 당산집 큰어르신이 마을에서 가장 웃어른인 격이다 보니 매일같이 문안인사를 드리러 온다거나, 말동무를 해드리러 드나드는 사람들도 여럿이었다. 당산나무에 기도를 드리러 오는 이들은 모두 인사치레로 당산집에 얼굴이라도 비추고 갔고, 특히 봄에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당산집에서만 피어난다는 귀한 모란꽃을 보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이들이 당산집을 들락거렸다. 식구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었지만, 여전히 당산집을 오가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 셈이다.
이런 집안에서, 불티라는 요물이 여태 제 자리 부지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굳이 내쫓을 필요가 없을 만치 존재감이랄 게 없는 덕이다.
잘못 건드렸다간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화로 속 불똥 같다 하여 붙여진 불티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녀석은 전혀 그 이름값이라곤 하지 못했다. 당산집이 지주댁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지금껏 얹혀살아오는 내내 소란을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부엌에 종일 처박혀 지내는 것이 대부분이라 집안의 사람들과 마주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필요로 하는 것은 오로지 요기를 달래는 일 뿐인 것으로 보였다. 그마저도 사람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까맣게 태워버린 음식만 먹어 식량을 축내지도 않았다.
집안에 피해를 주는 일 없이 순하고 얌전했던 불티를 집안 어른들은 굳이 내치지 않았다. 대신에 인간과 불티가 무탈하게 공생하기 위한 한 가지 원칙을 내세웠다. 불티를 사람 취급하지 않을 것. 예컨대 사람 먹는 음식을 주거나, 이름을 지어 부르거나, 새카매진 맨발을 안쓰럽게 여겨 신발을 신겨주거나, 말과 글을 가르치려는 행동. 요물을 사람처럼 대하면 정말로 사람 행세를 하기 시작해서 주변을 골탕 먹이고 곤경에 빠뜨린다나 뭐라나.
설령 거기까지는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아궁이 옆에서 탄 음식 받아먹고 지내는 요물이 사람 될 순 없는 거였다. 요물이 순해 봐야 순한 요물일 뿐 아니겠는가. 무심코 불티에게 말이라도 건네는 자에겐 곧장 집안 큰어르신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갓 시집온 어린 새아기라거나, 장난기 많은 어린 아이들이 딱 개고양이 신기해서 찔러보는 정도로 불티에게 호기심을 가지는 일이 종종 있어왔지만 큰어르신의 불벼락 같은 호통 한 번 겪고 나면 그 뒤론 불티 근처엔 눈길도 안 줬다.
그렇게 당산집의 아궁이 요물에 대한 행동강령은 대대로 철저히 지켜지는 듯했다. 앞서 말한 어르신들께서 금해둔 행동ㅡ예컨대 사람 먹는 음식을 주거나, 이름을 지어 부르거나, 새카매진 맨발을 안쓰럽게 여겨 신발을 신겨주거나, 말과 글을 가르치려는 행동ㅡ을 모조리 어기고도 반성의 기색 하나 없는 웬 망나니 하나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지.
이제부터는 그 망나니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망나니는 사실 집안 사람들 모두가 금이야 옥이야 예뻐하는 당산집 외아들이다.
부부는 십 년이 넘도록 후사를 보지 못했다. 그런 그들이 금줄 두른 당산나무에 간절한 마음으로 천일기도 올리고서 마침내 귀하게 얻은 자식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인품이 곧고 덕망이 있으며, 용모 또한 수려하여 어디를 가든 이목을 끌고 칭찬을 받았다. 그뿐이랴, 학식 또한 깊고 영민하며 글 쓰는 솜씨도 일품이었다. 망나니는커녕 태어날 적부터 매 순간 사랑만 받아온 귀하디 귀한 도련님이었다.
올해로 나이 여든을 넘겼음에도 여전히 호랑이처럼 무서운 기세를 떨치는 이 댁 큰어르신도 손주 앞이라면 언제나 흐늘흐늘 풀어진 얼굴만 보였다. 내내 심기가 언짢다가도 손주 녀석이 지나가며 건넨 인사 하나에 대번에 주름진 미간을 풀었고 허허 기분 좋게 웃었다. 꼬장꼬장한 성정만큼이나 입맛도 보통 까탈스러우신 것이 아니라 웬만한 다과는 입에도 대지 않으시는 양반이, 고사리손으로 건네는 오란다 과자나 사랑방 사탕은 싫은 내색도 없이 잘도 받아 잡쉈다. 그 정도로 손주라면 껌뻑 죽던 큰어르신이, 이제는 그의 이름만 나와도 혀를 끌끌 차게 된 것이다.
그 망나니 도련님의 이름은 성찬.
그는 기실 젖먹이를 벗어난 직후부터 아주 싹수가 노랬다고 할 수 있겠다.
성찬이 여섯 살 되던 해에 온 마을에 열병이 퍼졌던 적이 있었다. 밤새 앓던 도련님을 위해 정성껏 잡아 고아낸 귀한 씨암탉 다리가 아니 글쎄 불티의 입에 물려져 있었다지 뭔가. 그걸 명숙이 보고 놀라서 소리를 지르자 불티가 바닥에 닭다리를 떨구었고, 성찬이 그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먹더란 이야기는 그 뒤로 두고두고 회자가 됐다. 이 일이 큰어르신 귀에 들어가면 큰 사달이 난다며 다그치는 어머니께, 불티가 곁에 있어 준 덕분에 병상에 누워서도 외로울 일 없었다며 너스레를 떨어대었던 일화 역시도.
이후로 불티와 단 둘이 겸상을 하다 걸린 것은 셀 수없이 많아 하나하나 입에 올리는 일도 버겁다. 그때마다 성찬은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흰 쌀밥에 기름기 좔좔 흐르는 생선 살을 꼭꼭 눌러얹은 밥숟갈을 불티의 입 앞에 바지런히 들이밀고 있었다고 했다.
이불보를 뒤집어쓰고 제 옆에 그 요물을 꼭 끼고 앉아 책을 읽어주던 일 역시도 일상다반사였다. 길목에만 나가면 볼 수 있는 친구들 다 두고서 굳이 그 요물 녀석하고 단 둘이 숨바꼭질을 하면서 놀았고, 종종 봉두난발을 한 불티의 머리카락을 빗으로 곱게 빗겨주기도 하고, 꼬질꼬질 잿가루가 묻은 얼굴을 비눗물로 박박 문질러 닦아 씻겨주기도 했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어디서 '원빈'이라는 새침데기 같은 이름을 가져와서 몇 번 불러보더니, 급기야는 마을 또래들에게 제 동생이라며 인사를 시키고 종일 어울려 놀기까지 했다. 단언컨대 충장공파 정씨 가문 일대를 통틀어서 이런 별종은 없었노라. 불티를 대하는 행동이 어찌나 유별나고 애틋한지, 그렇지 않은 걸 아는 이들도 그 둘이 피를 나눈 형제라 착각에 빠질 뻔했다.
'사람이 아닌 거를 자꾸 사람 대접하면 어째? 저러다가 말 배워서 사람 홀리고 장난질 하고 다닌다잖아.'
'어머니 저는요, 설령 그렇게 된다 해도 원빈이한테 밥도 지금보다 더 잘 먹이고 말도 걸어주고 글도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걔가 탄 음식 먹는 도깨비가 아니라 사람 잡아먹는 귀신이라고 해도요. 인간이든 짐승이든, 따스운 밥 먹이고 쓰다듬어주고 예뻐라 해줘야 바른 맘 먹고 올곧게 크지 않겠습니까?'
못말리는 도련님은 풀 죽는 기색 하나 없이 도리어 어머니에게 훈수를 두며 젠체하다 등짝 두어대를 아프게 얻어 맞았다. 이때가 겨우 아홉 살 때였으니 이후 머리 크고 나서 어땠을지는 불 보듯 훤한 이야기겠다.
성찬이 열 셋쯤 되었을 무렵 당산집에서 갓 눈 뜬 새끼 강아지 하나를 들인 일이 있었다. 외둥이로 자라다 보니 정을 나눌 형제가 없어서 저러는 것이라며, 개라도 한 마리 키우면 이런 기행들은 자연스레 잦아들 것이라 호언장담하던 큰어르신 말씀을 따른 것이었다. 그때 이미 당산집 마당에는 잔반을 푸짐히 얻어먹고 지내는 누렁이 한 마리가 있었지만, 성찬의 흥미를 끌만한 어리고 예쁘게 생긴 새끼를 수소문까지 해가며 부러 구해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큰어르신의 묘수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고르고 골라온 강아지가 하필 성찬과 상성이 맞지 않는 것인지, 둘 사이가 아주 좋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강아지는 성찬이 하얀 털을 슬쩍 만지기만 해도 마구 성을 내며 덤벼들었고, 그러면 성찬은 약이 올라 강아지를 더 짓궂게 놀려댔다. 그 짓을 반복하다보니 결국 화해도 못 할 만큼 사이가 틀어져 버려 나중엔 성찬도 강아지도 서로를 보는 둥 마는 둥 하게 됐다. 애초에 서로 관심이 크게 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불티 녀석이 강아지와 사이가 좋았다. 아니지, 그 정도면 강아지의 일방적인 구애로 봐야함이 옳았다. 성찬에게는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대던 녀석이 불티가 품에 안고 쓰다듬기만 하면 대번에 얌전해지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그러고는 불티의 얼굴을 그렇게 샅샅이 핥아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모습이 성찬은 영 마음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언제부턴가 성찬은 불티에 대해서 묘한 독점욕을 드러내고는 했는데, 아마도 이 때가 시작점이었으리라. 이후 작정이라도 한 듯 불티 옆에 바짝 붙어 강아지처럼 불티의 얼굴 구석구석에 입술을 맞추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남들이 보든 말든, 아랑곳없이 그저 저 좋을 대로 불티를 옆에 끼고 종일 쪽쪽 거리며 지냈다.
어르신들 입장에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기껏 강아지까지 들여가며 정붙일 상대를 구해다 줬더니 오히려 불티와 더 가까워지게 만든 꼴이 된 것이다. 그것도 아주 볼썽사납게.
⋯⋯그러니 성찬이 아무리 총명하고 영특하다 한들 큰어르신이 진저리를 치시는 데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야 했다.
마을에서 크게 당산제가 열렸다. 성찬이 대학에 합격하여 서울로 올라가기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오색천이 매달린 당산나무 앞에는 돼지머리가 놓였고, 마을 사람들은 그 주변을 둥글게 에워쌌다. 꽹과리와 해금 소리가 울려 퍼지며 춤판이 벌어졌다.
남들보다 키가 큰 성찬은 굳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어 들어가지 않고, 멀찍이 뒤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성찬에게 마지못해 붙들려나온 모양새로 엉거주춤 선 원빈은 영락없이 성찬의 동생으로 보였다.
“너도 제사가 보고 싶어?”
문득 불티의 두 발이 번쩍 들렸다. 성찬이 목말을 태운 것이다. 성찬의 어깨 위에 얹어져 높게 솟아오른 불티가 낯선 느낌에 발버둥을 쳤다. 우어어⋯ 불티는 말을 하는 법을 몰라서 크게 놀라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저 이렇게 짐승같은 소리만 낼 줄 알았다.
“괜찮아, 안 떨어져. 내가 너 잡고 있어.”
성찬이 안심하라는 듯 원빈의 다리를 힘주어 잡았다. 여전히 겁을 집어먹은 불티는 성찬의 목을 있는 힘껏 끌어안고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었다. 그러다 문득, 인파 속에서 우뚝 솟아오른 원빈의 모습이 아버지의 눈에 띄고야 말았다.
“성찬이 네 이 놈! 제사 중에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그 놈 내려놓고 이리 오지 못해!”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깜짝 놀란 원빈이 손바닥으로 성찬의 얼굴을 문질러 버렸다. 아버지의 호통에 성찬이 그대로 줄행랑을 친 탓이다. 시야가 가려진 성찬은 몇 걸음 떼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결국 담벼락 앞에 나동그라지고야 말았다. 웃음이 터졌다.
“원빈아, 머리 넘겨봐.”
당산집 담벼락에서는 봄마다 희고 붉은 모란꽃이 피었다. 그 자태가 누구라도 이목을 빼앗길 만큼 크고 화려했고, 부귀영화의 상징인 만큼 서목에서 오로지 당산집에서만 구경할 수 있는 꽃이기도 했다. 그래서 모란이 한창일 때면 벌과 나비 대신에 모여든 마을 사람들이 그게 그렇게 곱다고들 아주 야단법석이었다. 그러나 성찬은 예전부터 풀꽃 아무렇게나 꽂은 원빈의 얼굴이 그 명물이라는 당산집 모란꽃과도 비교할 수 없이 곱다고 여겼다.
석양을 등진 얼굴을 느릿하게 눈에 담았다. 기분 탓일까. 자신이 스무살이 되도록 나이를 먹은 만큼 불티 역시 같은 세월을 보내오며 함께 자라온 듯한 모습이었다.
“너도 자라는구나. 그렇지?”
성찬이 양손으로 원빈의 두 볼을 감쌌다. 이내 이마에 입술 도장을 꾸욱 내리찍었다.
“나 없이도 기죽지 말고, 밥 잘 얻어먹고. 귀염받으면서 지내라. 아궁이 옆에 처박혀만 있는 것이 심심하거든 영진이나 수남이한테 같이 놀자고 말이라도 건네보렴. 혹시라도 구박이라도 하는 이가 있거들랑 네 몸에 잔뜩 묻은 잿가루를 그 놈 코에다가 묻혀버려. 알았어?”
성찬은 부러 자기 코와 눈 아래에 잿가루를 묻히고는, 표정을 구겨 익살스러운 얼굴을 지어 보였다.
“이렇게 시커멓게 묻히면 그게 누구라도 아주 우스운 꼴이 될 거다.”
원빈이 대답 없이 배시시 웃었다. 성찬은 바닥에 쭈그려 앉아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나뭇가지를 쥐고는 흙바닥에 글씨를 썼다.
“글씨 쓰는 솜씨가 늘었는지 어디 한 번 보자.”
회갈색 바닥 위로 글자가 삐뚤빼뚤 그림처럼 그려졌다. 전부터 성찬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려면 제 이름 쓰는 법 정도는 익혀둬야 한다며 원빈에게 지금처럼 종종 글씨를 쓰도록 가르치곤 했다.
나뭇가지를 쥐고 끙끙대는 원빈의 모습에 웃다가도 어쩐지 목이 메었다. 성찬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불티는 당산집에서 백 년이 넘도록 잘 살고 있었다던데, 그런 불티를 두고 서울로 떠나는 것이 왜 이리도 걱정스러운지 몰랐다. 서목산 너머로 해가 천천히 숨어들며 붉게 노을이 져 갔다. 마을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 가까이 오고 있었다.
*
“야야, 똑바로 좀 잡아봐라.”
“아 햄님! 제 머리 쥐어 뜯지 말라고요오오!”
백양로 정문으로 이어지는 가로수길 구석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청바지 차림의 청년 하나가 목말을 탄 채 수십분간 나무를 붙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팔락팔락한 나팔바지가 팽팽하게 당겨져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그리고 그 아래, 성찬이 있었다. 이리저리 제멋대로 움직여대는 선배의 몸뚱이를 받쳐내느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 밤새 동아리 사람들과 달리느라 밤을 꼴딱 새우고, 방금까지 해장술을 기울이다 온 참이라 그러잖아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 무게가 꽤 나가는 육중한 몸이 어깨 위에 올라타서는 다리로 목까지 졸라대니 정말로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바지 잡아당기지 말라고!”
한바탕 씨름 끝에 청년은 아카시 나무에 박힌 최루탄 파편을 뽑아냈다. 그것을 성찬에게 들어 보이며 혀를 끌끌 찼다. 권재영. 그는 교내 독서 동아리를 주도하는 82학번 선배로, 실상 대부분의 동아리들이 그러하듯 이 모임 역시 독재 정권을 규탄하는 대자보 작성을 주력으로 하는 운동권 모임이었다.
“나무는 죄가 없잖아, 나무는. 이딴 걸 사람한테 던지는 것부터가 문제지만.”
국문학도들이 으레 그렇다지만, 그는 그중에서도 나이에 비해 유난히 애늙은이 같은 구석이 있는 형이었다. 장자 노자의 시집을 한데 쌓아놓고 탐독하며, 술만 들어가면 하늘 땅 자연 타령을 입에 달고 사는 것만 봐도 그랬다.
성찬이 나고 자란 서목은 경상북도 경주 월성 서편의 외딴 시골이었다. 마을은 태백산맥으로부터 멀리 뻗어 나온 지맥에 딸린 서목산에 폭 안긴 듯한 모양새를 했고, 전체를 다 해도 열 가구를 조금 넘길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인 그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외부와는 철저하게 고립된 곳이었다. 따라서 마을 사람들은 바깥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찬은 서울에 올라온 이후, 자신이 일평생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라왔다는 사실을 매일 뼛속 깊이 절감하고 있었다.
학문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은 더 이상 학생들이 안전하게 학업에만 매진할 수 있는 장소와는 거리가 멀었다. 백양로에 하루가 멀다하고 전경과 학생들의 대치가 벌어졌다. 교정 곳곳이 최루탄 냄새와 유혈 사태로 얼룩졌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군부 정권 물러가라며 확성기에 고래고래 외치다 끌려간 선배들은 짧으면 사흘, 길게는 몇 주 안에 몸 곳곳에 주렁주렁 매 자국을 달고 나타났다. 그러고도 이 정도면 훈방이라며 기념으로 전공 책 팔아 술이나 사달라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 듣는 이들도 우는 소리 없이 막걸리 사발이나 맞부딪혀 주곤 했다. 피멍에 피딱지가 얼룩진 채 돌아온 선배들의 모습에 처음에는 충격을 받고 눈물까지 흘리던 신입생들도 점점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무뎌져 갔다. 비일상도 지천에 널리 퍼지면 그것이 곧 일상이 된다는 사실을 매일같이 실감하게 되는 나날이었다.
그러니 그날도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이제 최루탄에 눈물 콧물 좀 흘리는 일도 흔해빠져서 무용담으로 삼기조차 민망할 지경이었으므로 '평소'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줄로 알았다. 강의실에 군부 사람들이 들이닥쳤고, 학생들은 수배된 자를 보호하기 위해 겹겹이 벽을 이루며 그를 둘러쌌다. 그러나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곤봉 세례와 폭력에 학생들의 대열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결국 강의실 안쪽에서 이번 타깃이 된 학생 하나가 질질 무력하게 끌려 나갔다. 정부를 규탄하는 대자보를 써 붙였다는 시시한 죄목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군부 정권에 들어서고부터는 이런 일쯤 흔히 벌어졌었다고들 하니, 이번에도 부러 심각하게 여겨 호들갑 떨지 않으려 했다.
돌아오겠지. 돌아올 거야. 지금까지 그랬으니까.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은 감추지 못해, 방학이 시작되었음에도 누구 하나 본가에 내려가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사흘이 흐르고 몇 주가 지날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던 그 선배는 두 달 후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바로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성찬과 함께 학교 앞 국밥집에서 해장술을 기울였던 그 형.
백양로 아카시 나무에 박힌 최루탄 파편을 뽑아내던 재영이 형이었다.
학생운동은 실의에 빠졌다. 함께 수업을 듣고 술을 들이켰던 벗의 죽음을 겪는 일은 처음이었다. 그간 들끓는 정의감으로 나라의 앞날을 위해 공권력에 맞서왔지만, 대다수가 20대 초반의 어리디어린 청년들이었다.
최소한의 안전도 미래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공포가 그제야 피부에 와닿았다. 독재 정권 퇴진은 너무나 멀리 아득하게 보였지만, 재영이 형의 죽음은 곧장 모두의 눈앞에 있었다.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여 스스로 행동하고 학우들을 독려했던 일이 결국 스스로는 물론 주변까지 사지로 몰아가는 결과를 낳았다는 죄책감이 청년들의 가슴을 옥죄었다.
학생 시위는 일시적으로 해산을 결정했다. 불순 사상을 전파하는 학생들을 숨겨주었다는 의혹을 받고 교수들이 한무더기로 연행 되었고, 그에 따라 강의 일부는 무기한 휴강 공지가 내려졌다. 연일 이어지던 시위 행렬에도 활기를 잃지 않았던 캠퍼스는 삽시간에 죄의식과 무력감으로 물들었다. 학생들은 서둘러 짐을 꾸려 본가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어 떠났다. 이 모든 악몽으로부터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성찬 역시, 그중 하나였다.
불 티
근래 고향 땅에 크고 작은 산불이 끊이질 않는다는 소식은 익히 들은 바가 있었다. 마을 어르신들 몇몇은 이를 두고 갑산괴가 나타난 것이라고들 했다. 갑산괴는 나라가 전란 등으로 혼란스러울 때 활개 치는 놈이니 녀석이 나타났다는 것은 곧 나라가 망할 징조라고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숨 쉬기가 어려울 정도의 매캐함이었다. 가정집 몇 군데에서 쓰레기나 볏짚을 태우는 정도로 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냄새의 진원지를 알 수 있었다. 마을을 에워싼 서목산 한 자락이 새까맣게 타고 남은 흔적이 보였다. 진한 회색빛 연기가 꼭 뱀과 같은 형상을 하고 하늘을 향해 구불구불 치솟고 있었다.
집으로 걷는 길목마다 잿가루 냄새가 지워지지 않았다. 어쩐지 휑한 느낌이 들었다. 인구는 적지만 복작복작 사람 모여 사는 냄새 가득한 마을이었는데, 걸어가는 내내 인적이 뜸한 걸 넘어 사람이 사는 곳 같지가 않았다.
서목산과 이어진 언덕 초입에 당도하여 본 당산나무는 여전히 깊게 뿌리를 내린 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잎사귀가 모두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와, 나무 밑둥을 감싼 금줄에 엮인 하얀 한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을 전체를 뒤덮은 매캐한 냄새는 역시나 본가의 마루까지도 배어있었다.
“서울은 최루탄, 여기는 산불인가⋯⋯.”
냄새를 떠올리는 것 만으로 흰 천이 덮인 재영이 형의 주검이 어른거려 몸서리가 쳐졌다. 필사적으로 그 기억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부엌으로 걸음했을 때는 불티는 보이지 않고, 아궁이의 불씨가 잠잠한 것만 눈에 들어왔다. 부지깽이로 시커먼 잿불을 뒤적이자 꺼진 듯 보였던 불씨가 아주 미약하게 숨을 쉬고 있는 것을 발견해냈다.
한참동안이나 화로와 씨름을 한 끝에 불을 살려내는 데에 성공해냈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아내며 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제서야 눈 앞에 불티가 나타났다. 늘상 부엌에 붙박이처럼 붙어있기만 하던 녀석이 어디서 뭘 하고 돌아다닌 건지, 아예 온 몸이 새카만 잿가루 투성이였다. 우스꽝스러운 꼬락서니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우리 원빈이. 형 없이 잘 지냈어? 밥은 잘 얻어먹었어? 매일 탄 것만 먹었겠지? 이름 쓰는 연습은 열심히 했어? 괴롭히는 놈들 코에 잿가루는 묻혀 주었을까?”
서울 생활을 하며 가장 그리워하던 불티를 곧장 품에 안고는 두런두런 말을 붙였다.
돌아왔구나.
하지만 이렇게 대답을 돌려받으리라고는 조금의 기대도 예상도 하지 못했다.
“너, 말을 할 줄 아는구나.”
성찬의 머리가 하얗게 비어 덩달아 몸까지 굳었다. 그 물음에 응답이라도 하듯.
이번엔 말소리 대신 손바닥이 성찬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뒤통수를 따라 내려온 손이 목을 지나 성찬의 등에 안착했다. 성찬은 그간 흘리지 않던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서울에서 겪은 모든 일을 알고서 위로해주는 것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어루만지는 불티의 손길이 그리도 다정했으니 말이다.
한참을 엉겨붙던 두 입술이 간신히 떨어졌다. 긴 손가락이 마른 날개뼈 위의 살갗에 느릿하게 머물렀다.
책과 신문 따위를 펼쳐본 지 오래였다. 글을 쓰는 일도 관뒀다. 대학에 합격했을 때 어머니께서 사주신 만년필은 불티의 손에 쥐여주었다. 저는 쓸 일이 없으니 원빈이라는 이름이나 마음껏 써보라며, 원없이 연습하라고 했다.
성찬은 자신이 대학생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사람처럼 굴었다. 온종일 원빈을 껴안고 입술을 맞대며 숨을 나누는 즐거움에만 빠져 지냈다. 이전과 달라진 모습의 성찬이 걱정돼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집안 사람들은 번번이 난감한 장면을 마주하기 일쑤였다.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해서 볼썽사나운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랑방 문 앞에 잠시 머물기만 해도 방 안에서 사탕을 빠는 듯 요란스레 혀를 얽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결국 큰어르신을 제외한 식솔 모두가 못 볼 꼴을 보거나 강제로 소리를 듣는 불상사를 겪고 나서, 성찬의 방은 접근 금지 구역으로 공공연히 낙인이 찍혔다.
'차라리 계집질을 해라. 망측스럽구로 이게 다 뭐고?'
예전에도 저렇게 여기저기 입술을 대고 쪽쪽 대는 짓이 여간 골칫거리인 게 아니었지만, 그저 사람 아기나 동물 새끼 대하듯 하는 행동이겠거니 하고 귀엽게 보아 넘길 수준은 되었다. 하지만 작금의 모양새는 민망할 지경으로 착 달라붙어 엉켜있는 몸 하며 이상야릇하게 풀어진 눈빛 하며⋯⋯ 어떻게 보아도 이전과 같은 변명은 갖다 댈 궁리도 못 할 만큼 낯부끄럽기 이를 데가 없었다.
이러한 기행이 큰어르신 귀에 들어가면 단박에 회초리가 날아들고도 남을 일이기에 식솔 모두가 이 사실을 쉬쉬했는데, 큰어르신은 언젠가부터 성찬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도 않았고, 성찬이 지내는 사랑방 쪽을 찾아가는 일도 없었다. 서울에 다녀온 이후 일전과는 비교도 없을 만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일삼는 손주를 꾸짖는 대신 아예 모른 척 해버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었다.
그러니 당장에 큰 소리가 나는 일은 없기야 했다만, 집안 사람들은 매일이 좌불안석이었다. 그리 영특하던 당산집 장손이 서울에서 무슨 험한 꼴을 봤길래 저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냐는 수군거림이 집 안팎으로 돌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찬은 방 안에서 불티의 볼을 쓰다듬고 혀를 섞는 일에만 바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성찬은 다른 것만은 다 잊어도 끼니만큼은 거르지 않았다.
문 앞에 놓인 소반에서 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갓 준비된 식사가 소반 위에 정성스럽게 올려져 있었다. 성찬은 문 앞에 수북이 쌓인 신문을 지나쳐 소반을 방 안으로 들였다. 맛을 먼저 보지도 않은 닭고기 반찬과 쌀밥 한가득 퍼올린 숟가락은 당연하다는 듯 원빈에게로 향했다. 성찬은 원빈을 품에 안고 입을 맞추는 일도 좋았지만 함께 식사를 하는 이 시간이 가장 좋았다.
아주 웃긴 것이, 개밥으로도 못 쓸 만큼 탄 것만 받아 먹고 살던 녀석에게도 음식에 있어 나름의 기호라는 게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소고기보단 돼지고기를, 돼지보단 닭고기를 좋아했고 슴슴한 나물 반찬 보다는 짭짤하고 씹는 맛이 있는 버섯볶음을 좋아했다. 단단하거나 바삭한 것보다는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을 선호해, 도대체 이런 입맛을 그간 어떻게 숨기고 석탄처럼 새카만 것만 먹고 지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이제 불티는 음식을 당연히 받아먹는 것에도 익숙해지고, 심지어 먹고 싶은 반찬이 있으면 그쪽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맛있게 먹고 난 뒤엔 소반을 툭툭 건드리며, 이것 빨리 치우라는 듯 성찬에게 눈빛을 쏘아대기도 했다. 사람 먹을 것을 받는 게 낯설어서 음식을 입에 직접 넣어주기 전까지 멀뚱히 쳐다보기만 하던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성찬의 손을 잡고 마을 뒤편의 연못으로 가 물을 튀기며 장난을 치거나 팽이를 쥐여주며 놀아달라 어리광을 부리기까지 했다. 그런 모습은 꼭 형에게 놀아달라 보채는 어린 남동생과 하나도 다를 데가 없었다.
이렇듯 불티가 하는 짓이 워낙 깜찍하다보니 성찬은 불티와 함께하는 생활이 하루하루 즐겁고 행복할 따름이었다. 보기만해도 웃음이 나고, 매일 푹 빠져들게 되었다. 그 애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면 서울에서의 모든 악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었다. 영원히 불티의 곁에만 머무르고 싶었다. 서울이라곤 정말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제 제법 쌀쌀해진 밤공기에 숨 쉴 때마다 뽀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신나게 팽이를 치며 놀던 둘은 못가에 나란히 앉아 버들군락이 바람에 흐늘대는 것을 구경했다. 먹물 같은 어둠이 깔린 밤하늘에는 별이 쏟아졌다. 이 마을의 것이라면 아주 작은 잎사귀 하나까지도 당산신이 직접 가꾸고 돌본다던데, 과연 밤에 보는 서목은 여전히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듯 빛나고 아름다웠다.
저 멀리 산등성이에서 자그마한 빨간 불빛이 반짝 떠올랐다. 성찬은 그것이 무엇인지 한 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이내 까만 연기가 솟아오르고서야 알았다.
“⋯⋯또 불이야?”
성찬은 솟아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다 골치가 아프다는 듯 얼굴을 구겨버렸다. 냅다 풀숲 위로 몸을 눕히자, 원빈이 성찬의 그 행동을 따라 누웠다. 눈높이가 같아진 두 얼굴이 몹시도 가까웠다.
성찬은 원빈의 입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장난스레 헤집다가, 문득 겸연쩍은 얼굴로 손가락을 뺀 뒤로는 한참을 말없이 먼 산만 바라보았다. 별이 수놓아진 밤하늘 위로 산불 연기가 능선을 그렸다.
“매캐한 냄새⋯⋯.”
정말이지, 다시는 서울에 가고 싶지 않았다.
*
성찬이 경주에 내려온 이후로도 크고 작은 불난리가 끊이질 않았다. 작은 산불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꺼졌지만, 날이 갈 수록 큰 산불이 더 자주 발생하는 것이 문제였다.
큰불이 났다는 소식이 들리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팔을 걷어붙이고 물 양동이를 들고 산으로 달려가 보았지만, 불을 진압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간간이 단비가 내렸지만 그 정도로는 서목 사정에 별 도움이 못 됐다. 산불은 빗물이 끼얹어져도 쉬이 사그라지지 않고 마을 전체에 자욱한 회색 연기를 내뿜으며 몇 날 며칠을 타올랐다. 마을을 둘러싼 서목산 곳곳이 까맣게 멍들어갔다.
서목은 혼란에 빠졌다. 마을 어르신들 몇몇 입에만 오르내리던 갑산괴 이야기를 이제는 믿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전설 속의 그 요괴가 나타나 산 곳곳에 불을 지르고 다니며 서목의 산신을 모욕하고 사람들을 실컷 희롱하다가, 종내에는 마을 전체를 파멸로 이끌 것이라는 공포가 확신으로 이어졌다. 외양간 집 구씨네 막내아들이 불 끄러 산에 올랐다가 기괴하게 웃으며 불을 지르고 다니는 그것을 직접 봤다며 앓아누운 뒤부터는 갑산괴에 대한 소문이 날개를 달았다.
근래에는 성찬 또한 근심이 끊이질 않았다. 자신이 손 잡고 밖에 데리고 나가는 게 아닌 이상에야 늘 아궁이 옆에 지박령처럼 붙어 지내던 원빈이 요새 자꾸만 바깥으로 나도는 탓이었다.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 건지 한참을 사라졌다 겨우 나타날 적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엉클어진 머리, 곳곳에 묻은 까만 재, 새카만 발바닥, 코를 찌르는 듯한 타는 냄새⋯⋯.
속이 타들어가는 마음으로 원빈을 기다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부뚜막에 기대어 졸음을 참으며 기다리던 성찬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고 들어온 원빈은 또 그 몰골이었다. 엉클어진 머리카락과 검댕이 묻은 얼굴. 그 모습을 누가 볼세라 재빨리 물가로 데리고 갔다.
“원빈아, 대체 어디서 뭘 하다 오는 거야?”
손에 물을 묻혀 얼굴을 씻겨주며 물어보았지만 이번이라고 대답이 돌아올 리가 없었다. 더 캐묻는 대신, 성찬은 그에게서 탄 냄새가 지워질 때까지 몇 번이고 물을 끼얹어 벅벅 닦아내고는 했다.
당산집네 귀한 외아들이 그 정체모를 것을 품에 싸고 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에 여태 대놓고 해코지를 하진 못했지만, 이제 마을에는 원빈의 정체가 산불을 내는 갑산괴일 것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몇 대 째 정씨 집안 부엌에서 누구를 해코지하는 일 없이 얌전히만 지내온 걸 아는 사람들인데도 그랬다.
본디 요물이라는 것이 그렇지.
수천년을 살아가는 요물이, 백여년간 성미 죽이고 살다 본색 드러내는 일이 대수일까.
그 댁 외아들이 그 요물한테 사람 음식 주고 사람 이름 지어 부르는 것 모르는 사람 있어?
갸가 요물에게 숨을 불어 넣었구먼.
급기야 면전에서 성찬을 힐난하는 사람들마저 하나둘 늘어갔다. 불난데 기름 붓는 격으로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이제는 산불로도 모자라 몇 가구 되지도 않는 서목에서도 원인 모를 화재가 나고 있었다.
당산집은 서낭당 옆에 판자로 만든 대피소를 마련했다. 하루 아침에 집과 재물을 잃고 갈 곳 없어진 화재 피해자들을 위해 그들이 머물 곳은 물론 구호 물품과 식량까지 나누어줬다. 대피소는 대단히 안락한 곳은 못 되어도 집 잃은 사람들이 며칠 따뜻하게 몸 뉘이고 배를 채울 수 있는 정도는 됐다.
딱히 불티에 대한 이야기가 나도는 것을 의식하여 무고함을 주장하려거나 소문을 잠재우려는 의도는 아니었고, 서목의 논밭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던 대감댁 시절부터 마을에 종종 기근이 들거나 수해가 들 때 곳간을 열어 베풀던 가풍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었다. 갑산괴가 나타났다느니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느니, 뜬소문들이 돌아다니는 상황이라고 해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을 그간의 재해와 달리 취급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저 그간 그래온 것처럼 당산집이 마땅히 나서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뭐가 달라도 한참 달라 보인 모양이다. 딱히 덕망을 쌓으려 베푼 일은 아니었다지만 감사 인사는커녕 아무래도 켕기는 것이 있으니 저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만 되돌아왔다.
와중에 마을 내외로 흉흉한 소문이 더해졌다. 갑산괴의 장난질에 놀아나고 있는 저 서목산 너머에 사상 불순한 빨갱이들을 집어넣는 교화 시설이 지어졌는데, 말이 좋아 교화지 그 곳에서 행해지는 고문이 어찌나 혹독한지 한 번 끌려가면 반 불구는 각오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그 곳에 잡혀간 경주 사람들이 벌써 여럿이라고도 했다.
서목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마을도 이제는 마냥 외부와 단절된 세상으로 보기만은 어려웠다. 뉴스며 신문이며, 괴뢰 세력들에 의해 일어난 폭도들을 진압하는데 성공했노라는 소식이 연일 이어졌다. 경찰과 군인들이 경주는 물론이고 이런 첩첩산중의 깡시골까지 드나드는 일이 잦아지면서 외부 사정에 까마득했던 마을 사람들도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게 되었다. 군부 사람들은 군복을 입고 오기도 했지만 종종 사복을 입고 나타나 평범한 외지인처럼 행세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들은 불시검문이랍시고 가정집에 들이닥쳐 멀쩡한 서재를 뒤엎고, 사상 검증을 이유로 들며 이웃끼리 서로 감시하게끔 지시를 내리곤 했다.
그 무렵 성찬은 온 몸에 최루탄 냄새 풀풀 풍기던 재영이 형의 시신이 벌떡 일어나 자신의 목을 조르는 꿈을 매일 꾸게 되었다. 식은 땀에 온통 젖어 눈을 뜨고 나면 코끝에 매캐한 냄새가 맴돌아 떠나질 않았다.
그 때마다 성찬을 달래주는 건 어느새 곁을 지키고 있던 원빈이었다. 성찬이 쉬이 잠에 다시 들지 못하면, 원빈은 성찬이 제 무릎을 베게 하고는 새근거리는 소리가 날 때까지 어깨를 어루만져 줬다. 이제 성찬은 원빈을 곁에 두지 않고서는 불안한 마음에 잠을 청하지도 못했다.
악몽에 시달려 잠에서 깨어나는 시각은 꼭 새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는 깊은 새벽이었다. 이제 계절은 가을을 지나 시린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살갗에 닿아오는 한기에 품 안을 데워주던 불티의 온기가 간절했다.
요즘 서목 분위기가 심상찮으니 밖에 나돌아다니지 말라는 당부도 하고, 그걸로 모자라 손에 깍지까지 꽉 낀 채 잠들었는데도 영 말을 들어먹지를 않았다. 또 그 엉망인 꼴로 바깥을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 뻔한데,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 모르니 속만 까맣게 탔다. 다시 잠에 들지 못하고 불티를 기다리며 마루를 서성이고 있으면, 어디에선가 매캐하게 타는 냄새가 찬 기운을 가르고서 바람과 함께 흘러 들어왔다.
불티야, 날이 차고 밖은 험하다.
이 시간에 어딜 쏘다니는 거니.
내 너를 얼마나 아끼는지 모르니.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기 전의 마을이었다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맞섰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마을에 빨갱이 같은 건 없다고. 소란 일으키지 말고 썩 꺼지라고. 당신네가 함부로 들쑤시고 다닐 마을이 아니라고. 설령 누군가 정말로 정체를 숨긴 빨갱이라 밝혀진다고 해도 숨겨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빨갱이이기 이전에 같은 땅에서 함께 살아온 나의 이웃이니까. 몇 대에 걸쳐 같은 곳에 터를 잡고 삶을 꾸려온 마을 사람들 간에 쌓아온 유대감이란 게 그랬다.
하지만 저마다의 마음에 공포심과 의심이 깃들어버린 지금에 와서 그런 것을 기대하기란 힘들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미워하게 하는 마음. 그 불안이야말로 전설 속 갑산괴의 정체일는지도 모르겠다.
갑산괴가 피워낸 불길은 오늘 밤도 기세 좋게 몸집을 키워갔다.
*
이쯤에서 소 팔아서 밥벌이 해 먹는 구씨네 막내아들 상황을 아니 짚고 넘어갈 수 없겠다. 갑산괴가 산에 불 지르며 기괴한 소리로 웃는 광경을 눈으로 본 이후로 정신을 놔버렸다는 가엾은 이, 구씨네 막내 영진 말이다.
사람 몇 되지도 않는 폐쇄된 시골에서는 특히나 어린 아이가 귀해 위아래 다섯살 차이 정도는 또래 나이대로 치고 어릴 때부터 한데 어울려 놀고는 했는데, 영진은 그중에서도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고 공놀이를 즐겨 성찬과 가깝게 지내던 또래였다.
“형아 동생이라고?”
성찬이 원빈의 손을 잡고 나타났을 때 영진은 못미덥다는 듯 원빈의 행색을 위아래로 훑었다.
“야는 불티 아니가. 당산집 아궁이에서 태운 음식 먹여 키우는 거 모르는 사람도 있나.”
“이제부턴 내 동생 하기로 했어. 원빈이라고 불러라.”
더 이상 대거리를 할 생각일랑 관두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뒷맛이 영 찝찝했지만 어쩌겠는가. 다른 사람도 아닌 정성찬인데. 이 나라에 왕조가 존재하던 시절부터 여기 살던 사람들이 지주댁 대감댁 하며 받들던 그 당산집 외아들인데. 아니 다 떠나서 그냥 정성찬이잖아. 오늘부터 얘 이름은 원빈이고 자기 동생 하기로 했다는 황당무계한 소릴 해도 누가 거기다 토를 달 수 있겠냐고⋯⋯.
그날 종일 마을 뒤편에서 꽁꽁 얼어붙은 못에 구멍을 내고선 낚시를 하고 놀았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영 낯설은지 성찬의 뒤에 서서 가만히 웃고만 있기에, 방금 건져 올린 송어를 눈 앞에 들이밀어 보여줬더니 놀라 펄쩍 뛰던 모습이 생생했다.
이후로도 종종 불티는 성찬의 손을 잡고 나와 딱지치기나 말뚝박기, 과일 서리 등을 하며 마을 아이들과 한데 어울려 놀곤 했다. 아주 적극적으로 놀이에 나서는 편은 아니었다만, 그렇다고 마냥 깍두기처럼 뒤로 빠져 있지도 않았다. 그때 불티와 한 번이라도 시간을 함께 보내본 사람이면, 얘는 절대 해코지 같은 걸 할 애가 아니라던, 오히려 너무 순해 빠져서 걱정이라던 성찬의 말을 모두 이해하고도 남았다.
영진의 어머니인 최경자 역시 아들로부터 불티와 직접 어울리고 놀았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한들 당산집네 요물을 의심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사실 전부터 궁금했다. 그 집 아들은 어째서 사람도 아닌 것에 그렇게까지 정을 주고 품에 싸고도는 것인지. 수백 년간 힘을 잃고 쥐 죽은 듯 살던 영한 것이 사람의 음식과 말을 배우고서 힘을 얻어 사람을 곯리고 다니더라는 이야기는 옛이야기만 하더라도 숱하게 등장하는데 말이다. 문제의 발단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애초에 그런 요물을 부엌에 두고 함께 생활한다는 것부터가 말 안 됐다. 그 옛날 대감댁만 아니었더라면 진작에 마을 사람들이 합심하여 부엌간을 엎어놓고도 남았을 일이다.
막내가 몸져누운 지 보름이 넘어가고 있었다. 영진은 이제 눈꺼풀을 희번뜩 뒤집어까고서 갑산괴, 불티, 당산댁, 정성찬 같이 토막 난 말들만 간간이 뱉어낼 줄 알았다.
구씨 집안에 닥친 불운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막내아들 걱정만으로도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거늘, 외양간의 소들마저 말썽이었다. 멀쩡하던 소들이 하루아침에 하나둘씩 죽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들으면 소들 간에 전염병이라도 돈 것 아닌가 하겠지만, 문제는 그 모양새가 퍽 특이하다는 점에 있었다. 죽어 나가는 소마다 죄다 번개라도 맞은 양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고서 새까맣게 타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필경 누군가의 장난질이 아닐 리 없었다.
기어코 일이 벌어졌다. 당산집 큰어르신이 경주의 대종가를 방문하기 위해 아들 부부와 함께 집을 비운 날이었다.
신발도 제대로 챙겨 신지 못한 채, 성찬이 마을 뒤편으로 허겁지겁 달려왔다. 얼어붙은 물가 위에 마을 사람들 여럿이 모여있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꽁꽁 언 연못 위 뚫어놓은 구멍으로 원빈이 물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그전에 이미 몇 대나 따귀를 얻어맞은 건지 볼이 퉁퉁 부어올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팔은 뒤로 꺾여 잡혔고, 그대로 뒤통수는 차가운 물 속에 밀려들어 갔다. 옆에 서서 이를 지시하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구씨의 아내, 최경자였다.
“원빈아!”
원빈이는 무슨. 불티, 아니 갑산괴겠지. 사방에서 비웃음이 날아들었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깨진 얼음 파편처럼 날카로웠다.
“왜 이러십니까? 다들 원빈이 알잖아요. 저희 집에서 조상님부터 대대로 아무 문제없이 잘 데리고 있었던 거 모르지 않잖아요!”
“이 음침한 요물 고마 바로 불태워 죽여삐지 않은 것만 해도 당산집 체면 많이 봐 드린 거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원빈의 머리통이 얼음물 속에 잠겨들어갔다.
“그동안 우리가 많이 참아줬제. 부엌에 이런 거를 데리고 사는 걸 여태 봐줬다 아냐. 온 동네가 양옥 올릴 동안, 마을에서 제일 잘 사는 부잣집이 고작 그 요물 갈 곳 잃을까봐 낡은 부엌 그대로 쓰는 것도 수상했고. 귀하신 이 집 도련님께선 그리 요물을 사람처럼 먹이고 업어 키우더만, 아니 글쎄 서울 가더니 빨갱이 물 먹고서 데모를 그래 하고 다녔다고 하데요?”
“아주머니!”
계속해서 물질을 당하는 것은 원빈이지 저가 아니었는데도, 성찬은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최루탄 가스를 들이마신 것처럼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울며 불며 사정을 해도 사람들은 자신의 양 팔을 붙잡고서 절대로 놔주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식구들과도 다름 없이 가깝게 지내온 이웃이라는 사실이 기가 막혔다. 지난해 늦장가를 든 점방집 동열이 형님. 당산제에서 소리를 했던 김씨 아저씨. 어릴 적 원빈과 함께 얼음못 낚시를 하고 과일을 서리하며 함께 놀기도 했던 동갑내기 수남이.
모두가 낯설게 느껴졌다.
이 순간 성찬은 차라리 원빈의 정체가 갑산괴이길 바란다. 사람들의 터전을 빼앗고 삶을 망가뜨린 그 악랄한 괴물이기를. 그래서 지금 바로 그 무시무시하고 잔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어디에든 불이라도 내주었으면. 그래서 저 사람들을 혼쭐 내주고 자신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했으면. 아니면 최소한 달아나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어떤 식이든 좋으니 이렇게 바보처럼 아무 것도 못하고 당하고 있지만은 않아야 했다.
“너 바보야? 왜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당하고만 있어, 어?”
원빈의 젖은 머리통이 물 속에서 쑥 건져졌다. 성찬이 내지른 악다구니가 먹혀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원빈을 뭍으로 건져내 이 쳐죽일 놈의 갑산괴 요물새끼 하며 매타작을 하고 있었다. 최소한의 방어태세도 없이 축 늘어진 몸이 매질에 사정없이 내리쳐졌다. 사람들의 분노를 잠자코 제 한 몸에 다 받아내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 꼴에 성찬은 더욱 서러워졌으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눈물을 쏟아내는 일 뿐이었다.
광기에 휩싸인 분노는 이제 성찬과 당산집을 향해 번졌다. 구씨네 아주머니가 거리낄 것 없이 소리를 질렀다. 당신네가 싸고돌던 괴물 하나가 우리 모두를 망쳤으니 이제 우리도 더 이상 쉬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당산집에서 예전부터 경향신문 받아보는 거 이 마을에 모르는 사람 있느냐고. 지금 온 나라가 빨갱이 잡느라 뒤집어진 것 모르냐고. 당장 경찰들 불러 빨갱이 여기 있다 고발하겠다고. 성찬은 지금 사람들이 지껄이는 말들 중 단 하나도 귀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그저 매타작과 발길질에 속수무책으로 얻어맞고 있는 원빈을 꺼내와야 한다는 생각만이 간절했다.
그런 와중에도 저 녀석이 신음 하나 흘리지 않는 것이 몹시도 거슬렸다. 저렇게 죽을 만큼 두들겨 맞고 물고문까지 당하는데도 왜 반항은커녕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걸까. 누가 구박하면 코에 잿가루를 묻혀 못생기게 만들어주라고 가르친 내가 잘못인 걸까. 그럼 이 모든 게 내가 병신 천치라서 벌어진 일인가.
그래, 그런 거였나 보다. 이 모든 게 내가 천치라서 벌어진 일이구나. 불티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 사람 음식을 먹였고 말을 붙였으며 사람들과 어울리게 했었다. 원래부터 유순하고 얌전한 불티였으니 사랑을 주고 사람처럼 키우기만 하면 다른 이들도 나처럼 그 애를 예뻐할 줄로만 알았다. 내가 해온 행동이 그 순한 애를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미움을 사게 할 날이 오리라고는 정말 몰랐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절대로 사람들 앞에 불티를 내보이지 않았을 텐데. 나만 보고 나만 아끼고, 직접 지어준 그 이름도 마음속에 숨겨두고 혼자서만 불러봤을 것을.
옳다고 믿었던 행동들이 결국 불티를, 그리고 재영이 형을, 또 나 스스로를 포함한 우리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고 죽음에 몰아넣은 걸까⋯⋯. 어디선가 또 다시 날아든 매캐한 냄새가 폐 속 깊이 아프게 박혔다.
물가가 사람들의 절규와 울부짖음으로 뒤덮였다. 이제 그들은 불 붙인 짚더미를 높이 들고 당산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는 온전한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여기저기 타들어간 서목산, 하루아침에 허망하게 전소된 집들, 그리고 하나둘씩 타죽어 가던 구씨네 외양간 소들처럼, 그들은 성찬의 집 또한 불태워버리기로 결심한 듯했다. 일부는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환호했고 또 다른 일부는 격앙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 채 고함을 지르거나 마치 어딘가에 단단히 홀린 사람처럼 연신 중얼거렸다. 빨갱이, 갑산괴, 당산집, 불티, 그런 단어들을⋯⋯.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섭게 번진 화마가 마당을 넘어가더니 결국 당산나무에 불길이 옮겨붙었다. 천 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이 마을을 보살펴 온 바로 그 신목에.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나간 사람처럼 불을 보며 웃어재끼던 여인이 문득 눈을 비볐다. 병상에 누워 보름째 제대로 앉지도 못하던 막내아들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어머니, 불티를 놓아주세요.”
영진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끝에는 온 몸이 두들겨 맞아 피떡이 진 채, 못가에서부터 질질 끌려온 원빈이 있었다. 힘없이 축 늘어진 꼴이 마치 사냥당한 짐승과 다를 바 없었다. 이미 숨이 넘어간 듯 보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 모습이 처참했다.
“제가 갑산괴의 잔상에 시달릴 때마다, 밤새 제 곁을 지켜주던 아이입니다. 불티가 저를 딱하게 여겨 열 오른 이마를 쓰다듬고 손을 잡아주면, 그때만큼은 신기하게도 갑산괴에 대한 두려움이 걷히곤 했지요. 그 덕에 제가 아직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생사를 넘나들며 몇 날 며칠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고 했다. 영진의 안색은 거무튀튀했고 고목나무처럼 말라붙은 살가죽 위로 뼈대마저 드러났으나 눈에는 형형한 빛이 돌았다. 영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또렷한 정신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니를 가지고 노는 기다! 이 요물이 니를 병들게 하고는 헷갈리게 하면서 농락하는 기라⋯⋯.”
“아니요⋯ 아닐 거예요.”
영진이 고개를 저었다. 흙바닥에 쓰러진 원빈은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성찬은 여전히 귀가 먹먹해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었다.
“갑산괴는 지금 이 자리에 있어요. 불신에 눈이 멀어, 대대로 우리 마을 사람들을 돌보고 재해로 굶주리거나 갈 곳을 잃은 이들에게 먹을 것과 쉼터를 마련해 주었던 당산집에 불을 지른 것으로도 모자라⋯ 천 년을 지켜온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나무를 태워버린 그 삿된 것이 갑산괴가 아니면 무어겠습니까.”
또박또박 들려오는 영진의 목소리에 사람들 사이에 일순 침묵이 감도는 듯 했다. 그러나, 누군가의 말을 시작으로 이내 다시 아비규환이 되었다. 아까 볏짚에 처음으로 불을 붙인 사람이 누구냐. 그걸 들고 뛴 자가 누구냐. 당산나무에 옮겨붙게 한 것이 누구냐. 조금 전까지 합심하여 불티를 고문하고, 성찬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무릎을 꿇리고, 짚불을 들고 당산집으로 달려가던 이들은 이제 서로에게 불 붙은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여인 하나가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저 여자가 이 모든 일을 시작하고 우리를 전부 눈 멀게 했다! 사람들의 눈 하나하나마다 광기가 어려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까 두려운 마음에 눈 앞의 제물에 더욱 매정하게 굴었다. 순식간에 그녀가 갑산괴라는 결론을 내려버리고는, 즉결처형을 해야 한다며 흥분에 휩싸여 외쳐댔다. 사람들의 격렬한 싸움 속에서 화마는 계속해서 몸집을 불려 갔다. 당산집을 집어삼키고도 여전히 허기가 가시지 않는지 마을 전체를 태워버릴 기세로 입을 쩌억 벌렸다. 숨이 막힐 정도로 매캐한 냄새가 끊임없이 퍼져 나왔다.
그때 괴기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가까이서 크게 울려 퍼지다가, 갑자기 아주 먼 곳에서 아득하게 들려오기도 했다. 뱀의 형상을 닮은 새카만 연기가 구불구불 하늘로 치솟았다. 사방으로 튀는 불꽃들이 귀신의 춤사위처럼 매섭게 타올랐다.
영진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갑산괴다.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당산집에서 다시금 괴이한 웃음소리와 함께 뭔가를 긁는 듯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귀를 막고 주저앉았다. 단 하나, 원빈을 제외하고.
그를 꽁꽁 묶고 있던 밧줄은 절로 스르륵 풀어졌다.
모든 뼈가 으스러지고도 남았을 그 몸을 일으켰다.
원빈은 타오르는 당산집 가까이 저벅저벅 다가갔다.
내 너를 크게 꾸짖어 돌려보낸 것이 고작 삼십년 전이거늘⋯⋯.
목소리는 얼핏 당산나무로부터 흘러나오는 듯 했다. 성찬 역시 이전에 한 번 들은 바 있었기에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건 불티의 목소리였다. 불티가, 저 나무가, 그리고 마을을 둘러싼 서목산 전체가 호령하고 있었다. 모두가 발을 딛고 선 바닥과 공기가 크게 울렸다.
갑산괴 네 놈은 어찌 이 곳에 다시 나타난 것이냐.
먼 산 너머로 둥둥 북소리가 들려왔다.
어찌하여 이들의 마음에 의심과 공포를 퍼뜨리고 다니는 게냐.
사방이 불바다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누구도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바닥에 머리를 조아린 모두가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이것은 인간이 감히 개입해서도, 구경거리 삼아서도 안 될 신의 진노.
원빈의 몸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서목의 곳곳에 상처를 내어 나의 자식들을 이간질하고, 서로에게 활을 겨누게 한 그 죗값을 어찌 치르려는가.
고막이 찢겨나갈 듯 소리가 울려댔다.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났다. 여인의 목소리를 내던 그것은 힘없는 노인 흉내를 내다가 이제는 되는대로 악을 써가며 울부짖고 있었다. 흐느끼는 곡소리는 이내 사그라지는 불길 속에서 점차 잠잠해져 갔다. 당산집을 집어삼키고 타오르던 화마는 물 한 방울 끼얹은 사람이 없는데도 스스로 누그러지고 있었다.
이 곳에 두 번 다시 얼씬도 말아라.
마침내 당산집의 불길이 멎었다.
새까맣게 타다만 나무와 당산집, 그리고 적막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원빈아!”
성찬이 울먹이며 소리쳤다. 안 돼, 안 돼⋯⋯ 원빈의 몸이 끊이지 않고 타올랐다. 성찬은 맨손으로 불길을 끄려고 애쓰며 온 몸으로 그를 부둥켜안았다. 그럼에도 성찬은 화상을 입기는커녕 조금의 뜨거움도 느끼지 못했다.
모두가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도 무어라 입을 열지 못하는 사이, 적막 속에서 성찬의 울음소리만 미어지게 울려 퍼졌다.
*
이른 아침부터 당산집 앞이 소란했다.
검게 탄 당산나무 금줄이 새 것으로 갈아 끼워졌다.
“새까맣게 타버린 나무에 이런 것을 두르는 게 의미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베어내고 새 나무를 심는 게⋯⋯.”
일손으로 불려나온 점방집 동열은 기가 죽어 말끝을 뭉갰다. 큰어르신의 형형한 눈빛이 그 지난 밤 자신의 행동을 낱낱이 꿰뚫어보는 듯 했다. 눈을 마주치기는커녕 그 분 앞에 제대로 서있기조차도 쉽지 않았다. 사실 동열의 말이 어리석게 들릴 순 있어도,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무리 천 년을 살아온 신목이라지만 저렇게까지 타버린 나무에 어찌 영험한 기운이 남아 있으리.
마른 바람이 불어오자 남아 있던 재들이 흩날리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크게 역정을 내실 거라 생각한 것과 달리 큰어르신은 까맣게 탄 당산집과 나무를 보고도 담담했다. 모든 일을 전해들은 뒤에는 오히려 알 수 없는 얼굴을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마을 사람들 모두가 죄스러워 당산집 근처에는 얼씬도 못 했다. 마을을 지켜주던 나무가 이제는 반대로 마을을 저주한대도 할 말이 없었다. 당산신에게 버림 받는 것은 물론이요, 천벌이 내려진다고 한들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처지였다.
“삼십 년 전 전쟁이 한창일 때 당산나무에 벼락이 내린 적이 있었지.”
큰어르신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흘러나왔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그 기세가 여전히 호랑이 같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국군과 인민군이 번갈아 가며 들이닥치던 때였다네. 꼭 지금처럼, 갑산괴의 짓거리로 시작된 서목산의 불길이 마을 사람들의 싸움으로 번졌었지. 그때 인민군에게 협력했다는 고발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자가 여럿이었네.”
유난히 산불이 크게 타오르던 그날, 어디선가 폭음과 함께 북소리가 들렸어. 땅이 어찌나 크게 울려대는지 천지가 꺼지는 줄 알았지. 그건 중공군이 터뜨린 폭탄이 아니었어. 당산나무에 벼락이 내려치는 소리였다네. 이후 거짓말처럼 산불이 멎고 인민군이 마을을 들쑤시는 일도 없었지. 휴전 협정을 맺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이후 열 달도 지난 후의 이야기였네. 그러니⋯⋯
“⋯⋯당산나무는 그 때부터 속이 텅 비어있었던 게지.”
큰어르신은 잠시 말을 멈추고 타들어간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사이 희끗한 머리칼이 찬바람에 흩날렸다.
“자연의 큰 뜻 앞에서 인간은 늘 어리석은 선택만 한다지. 내 많은 날을 살아왔지만, 죽는 날까지도 그 뜻을 헤아릴 만큼의 덕망을 쌓지 못할 것 같으이. 부끄러울 따름이지⋯⋯.” 세월의 슬픔이 쌓인 노인의 눈꺼풀이 천천히 감겼다 떠졌다.
어느새 나무 앞에 모인 머리수가 늘어나 있었다. 그들은 누구의 지시도 없이 각자 일을 맡아 했다. 성찬의 부친은 나무 주변을 돌며 흙을 꼭꼭 밟았고, 아침 일찍 트럭을 끌고 경주 시내의 대형 마트에 다녀온 막내 삼촌은 나무 앞에 술상을 차렸다. 명숙의 남편 염씨는 나무 앞 울타리를 부지런히 손봤다.
“당산나무는 죽은 걸까요.” 그러다 누군가가 물었다.
“당산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당산신이 깃든 나무일 뿐만 아니라, 저기 보이는 서목산 그 자체야. 당장에 불태워지고 벌목하며 욕보인다 해도 산이 생명을 잃지 않듯, 나무도 죽지 않았네. 다만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데는 시간이 걸릴 뿐이야.”
“그렇습니까⋯⋯.”
“산에게 있어 인간들이란 품에서 나고 자란 자식과도 같아. 패륜을 저지른 자식이라 한들 그보다 큰 천륜으로 껴안는 부모일세. 그러니 당산신이 마을을 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두게. 다만 이렇게 나무를 가꾸는 일은, 모두 신이 아닌 인간들을 위한 것이라네. 마을을 보살피는 존재가 언제고 자신들의 곁을 지키고 있다는 믿음과 위안을 얻기 위한 것이지.”
모두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 당산신이 자신들을 버리거나 해코지 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말씀에 속 편히 위안 삼기만 할 줄 아는 인물은 못 되었다.
사람들의 낯빛이 깊은 후회와 부끄러움으로 물들어갔다. 그 말씀대로 자신들은 모두 패륜을 저지른 못난 자식이었다. 당산신에게, 불티에게 그런 짓을 저질렀는데. 요물이라며 업신여기고, 마을에서 흉흉한 일이 나면 의심하고, 결국 호되게 물고문을 하고 두들겨 패기까지 했는데. 그런데도 우리를 미워하거나 괘씸히 여기기는커녕 또 다시 지켜주었구나.
동열 역시 숙연함에 고개를 푹 숙이고는 말 없이 당산나무에 두른 새끼줄을 재차 묶었다. 나무에서는 손대지 않아도 검은 가루가 파사삭 떨어져 내렸다.
“그나저나 손주 도련님은 떠날 준비 다 되셨답니까?”
“자자, 정성찬 나갑니다아-”
판자를 대어 둔 사랑방에서 성찬이 간소한 짐 보따리를 싸서 나왔다. 불티가 종적을 감춘 이후 마을 사람들 모두가 당산집 도련님 기분을 살피기 바빴다.
그러나 성찬은 오히려 씩씩해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나 모두를 당황케 했다.
“성찬아. 너 괜찮으냐.”
“뭐가요? 동열이 형님?”
“⋯⋯”
“말을 하다가 마시네. 아무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버스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볼품없이 타버린 당산나무를 등지고, 성찬은 걸음을 재촉했다. 당산집은 새까맣게 타버린 집채 일부를 허물고 새로 벽돌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성찬이 지내던 사랑방이나 그 옛날 행랑살이 하던 이들이 쓰던 바깥방은 안까지 불이 붙지는 않아 조금만 손을 보면 되었지만, 불길이 시작된 부엌간과 안채는 손쓸 방법이 없어 아예 이참에 양옥으로 뜯어고치려는 것이었다.
시간 내로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두 편의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굽이진 시골길을 따라 서낭당, 영진네 외양간, 어릴 적 서리를 하고 놀았던 과일밭, 점방집을 하나하나 지나쳤지만, 성찬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마을은 잠깐 어수선하기야 할 테지만, 전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별일 없이 평화로울 것이다. 그러나 공사가 끝나고 새로 지어진 당산집에서는 더 이상 전과 같은 재래식 부엌도, 아궁이에 불씨를 지피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을 터였다.
“서울 남부 갑니다.”
성찬은 턱을 괸 채 버스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형산강 너머로 보이는 서목산의 얼굴은 마치 그간의 일이 거짓말이라도 되는 듯 적막하고 평온해 보였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엄살 하나 없이 저리도 잠잠할 수가 있나. 저래서야 사람들이 저 산 아래에서 벌어진 일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입김은 흰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저 서목의 땅에 다가가면 보이는 것들. 숨겨진 말들. 우리만이 아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가슴 안에서 여러 사념들과 기억이 엉킨 실타래처럼 뭉쳐 돌아다녔다. 입김을 피워내듯, 한숨을 뱉듯, 성찬은 제 안을 헤집고 다니는 이 응어리를 반드시 토해내야만 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남의 것이 아닌 나의 목소리로 직접 이야기를 이어 나가 보려 한다.
나는 불타오르던 그 몸을 안고서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불을 끄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함께 타버리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보내주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마지막 순간에 묻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불티는 떠났다. 그러니 바라던 답은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지어준 원빈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쏙 들었다고.
나의 벗이자 아우로 지내는 시간이 즐거웠다고.
마을 뒤편에서 한데 어울려 즐겨했던 팽이치기와 과일 서리의 기억이 생생하다고.
너를 품에 넣고 어르며, 집안 어르신들의 눈을 피해 한 이불 속에 쏙 숨어들었던 시간이 그립다고.
헝클어진 머리를 빗어주던 손길이 기분 좋았다고.
서울로 공부하러 떠났던 나를 다시 만난 것이 뛸듯이 기쁘고 반가웠다고.
내가 주었던 마음이, 영겁의 세월을 지나온 네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고⋯⋯.
그리 듣고 싶었었는데.
궁금하다기보다는 확인 받고 싶은 마음에 가까웠다. 우리가 그동안 주고받은 것은 대체 무엇이었는지. 너의 시간은 내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길고도 아득해서, 나와 함께한 그 짧은 순간은 그저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못한 채 기억 저편에 가라앉아 버리는 것은 아닐런지. 맞다. 그 순간까지도 나는 내가 불티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그 애가 어떤 마음으로 나를 대했을는지 따위를 확인받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결국 마지막까지도 나는 불티를 안고 어리광을 부린 것이나 다름없던 것이다. 물론 이것마저도 지극히 내 입장에서만 비롯된 바보같은 생각일지도 몰랐다. 행복, 기쁨, 슬픔, 호기심, 그리고 정이나 위로, 혹은 애틋한 마음. 이런 감정들은 모두 짧은 생을 살아가는 인간들 간에나 오갈 수 있는 사소하고 덧없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불티에게는 이 모든 것을 느낄 새도 없이 그저 찰나에 스쳐 지나간 순간에 불과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떠올릴 수 있다.
내가 지어준 이름이 불릴 때마다 나를 돌아보느라 흔들리던 그 까만 머리카락을.
코 끝을 떠나지 않는 매캐한 냄새에 잠 못 이루던 밤, 나를 토닥이며 내어주던 그 무릎 베개를.
중심을 잃지않고 쉴새없이 돌아가는 팽이를 구경하며 신이 나 반짝거리던 두 눈을.
이불보를 뒤집어쓰고 몰래 책을 읽어주던 날, 내 옆에 몸을 딱 붙이고 앉아 뒷이야기를 재촉하며 책장을 꼼질꼼질 넘겨대던 그 손가락을.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빗어줄 때면 얌전히 몸을 맡기고도 움찔거리던 그 눈꺼풀을.
나의 아픈 기억들을 매만져주며 처음으로 들려주었던 그 목소리를.
길고 긴 너의 시간 속에서 티끌만큼도 되지 않을 그 찰나에도, 어느새 나와 같은 속도로 자라나있던 그 애의 시간을.
그러니 사실 답을 알고 있다. 나 역시 너에게 위로를 주는 존재였음을.
우리의 매 순간, 너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리 답해주었음을⋯⋯.
슬픔에 젖어있지만은 않겠다. 두려움이라는 잿더미를 걷어내고 그 안에 파묻혀있던 불씨를 태울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구하고자 한 치의 주저함 없이 온몸을 불살라 피워낸 그 불꽃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다.
학교로 돌아가, 재영이 형의 죽음을 낱낱이 밝혀낼 것이다. 마땅히 되찾아야 할 것을 위해 싸울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도망치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것이다.
더는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겠다.
어느새 사람들을 가득 실은 버스가 시동을 걸었다. 흔들리는 창가 너머로 서목산이 멀어져 갔다.
품 안에서 만년필을 꺼냈다. 이따금씩 이름 쓰는 연습을 해보라며 불티의 손에 쥐여주던 펜이었다.
둥근 끝을 매만지다 코 끝에 가져다 댔다. 미약하게 나는 잿가루 냄새를 몇 번이고 맡았다. 서울에 가거든 담배를 배워볼까 싶다. 매캐한 연기같은 건 더는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폐부 가득 들이키고 머금고 싶었다. 사무치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그 타는 냄새를⋯⋯.
불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고 했다. 다만 서목산 저 어딘가에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때까지 웅크려 숨을 고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주어진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지내다 보면 언젠가 다시 얼굴에 새카맣게 잿가루를 묻힌 그 애를 마주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한들 마음 한 켠이 뻥 뚫린 듯 허전한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사실 나는 말이다, 네가 보살펴 키운 이 산마을 전체가 갑산괴에 놀아난대도 내 품에 안고 어르던 너 하나가 더 아깝고 중했단다.
이런 내가 미련하다 한들 어쩌겠니. 인간이라는 것이 본래 이리 어리석은 존재인걸⋯⋯.
찬바람과 함께 눈발이 휘날렸다. 그것은 형산강 너머 서목으로부터 불어왔다. 문득 깨닫는다. 그러니 나는 끝끝내 어리석다 못해 오만하기마저 했던 것이다.
내가 불티에게 사랑을 주고 인간 사이에 섞여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배운 것은 나였다.
우리 집 아궁이에 살던 불티가 있었기에 나는 사랑을 주고 누군가를 귀하고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을 배웠다. 나와 같은 속도로 자라나 준 불티가 있었기에 나는 단단히 여물어 두 발로 온전히 땅 위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서목의 것이라면 아주 작은 잎사귀 하나조차 당산신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듯 나의 생을 가꾸고 피워내는 것 역시 불티였던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알겠다. 서목에서 나고 자란 것들 하나하나 모두 네가 아닌 것이 없었음을.
강을 건너 날아온 눈꽃이 눈앞에서 팔랑 춤을 춘다. 그것이 차창에 슬며시 내려앉는 것을 본다. 이건 그러니까 네가 나에게 보내오는 인사로구나.
내가 숨을 들이마시면 몸 안을 간질이고 빠져나가는 이 찬 공기가, 차창 너머로 손을 뻗어 내 뺨을 보듬는 이 노란 볕이, 나를 묵묵히 지켜보는 저 겨울산의 적막한 녹음이 모두 너로구나. 이 혹한의 겨울에도 여전히 생을 움트게 하는 세상의 이 모든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너인 거구나.
그러니 우리는 절대로 헤어질 수 없겠구나. 내가 무엇을 보고 어디에 있든 나는 너를 느낄 수 있겠구나.
너에게서 태어나 너의 숨을 마시고 네가 싹 틔운 것들을 먹으며 자라나는 동안, 그렇게 내 몸에 흠뻑 스며든 너의 사랑은 영원히 내 안에 살아 숨을 쉬겠구나⋯⋯.
불티야.
너를 설명하는 말이 많고도 많다.
그러니까 너는 말이지.
당산집의 요물이자 저 서목의 주인.
내 유일한 형제이자 벗.
나의 연인아.
우리 찬 겨울을 견디어 봄으로 건너가자꾸나.
평생을 마음 다해 그리워할 아이야.
귀하디 귀한 원빈아.
내가 사랑한 불티야.
어느 날 당산집에 불쑥 나타났다던 아궁이의 요물. 잘못 건드렸다간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화로 속 불똥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 부엌간에서 탄 음식 받아먹으며 살던 구박데기. 누구도 반기지 않았던 천덕꾸러기.
그러나 뉘의 눈에는 새봄마다 열흘 피고 지는 모란꽃보다도 한없이 고와 보였던 얼굴. 콧등에 실컷 묻힌 잿가루. 데룩데룩 눈치를 보며 굴러가는 큰 눈. 새카만 것이 잔뜩 묻은 발바닥. 코를 찌르는 숯검댕 냄새. 그래. 바로 그 애.
結